[춤과 베트남 에피소드-10] 춤추는 엄마, 무용수 터흐(Thu)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10] 춤추는 엄마, 무용수 터흐(Thu)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3.08.08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연 후 Thu와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공연 후 터흐(Thu)와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늘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소녀 같았던 그녀. 자신의 춤 사진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던 그녀. 그런 모습은 가끔 다른 어린 무용수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점프를 많이 이용하는 움직임 콤비네이션을 함께 하던 날이었다. 그녀는 가슴을 두 팔로 감싸안고 점프를 하며 연신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젖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어려 보여 미혼인 줄 알았던 그녀에게 100일이 조금 넘은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그녀를 “mama Thu”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무용수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고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모유수유 중에 생기는 신체현상, 젖으로 부풀어 오르며 가슴에 생기는 통증을 참으면서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출산 후 100일이 넘은 몸을 그렇게 움직인다는 것, 가슴에서 흐르는 모유를 천으로 동여매고 춤을 추기 위해 연습실로 나와 수업을 한다는 열정과 그 성실함에 나는 감동했다. “무엇이 너를 춤추게 하니?”라는 나의 질문에 춤을 추는 순간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며 큰 눈망울이 금세 촉촉해지는 그녀를 보았다.

대부분의 여성은 결혼과 출산을 삶의 통과의례로 겪는다. 여성 무용수라면 여성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결혼 그리고 출산이 동반되고 그 후 육아와 춤을 유지하는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 여기서 어떠한 방법으로 춤을 자신의 삶과 함께 영위하는가 또는 하지 않는가는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 힘든 육아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이루어 내는 움직임과 감각을 연결하며 자신의 존재의 집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무용수 엄마 터흐를 통해 읽는다. 우리는 자신이 결정하는 삶으로 스스로를 이끌어가며, 내가 나를 판단하고, 나의 특정한 소망과 감정에 위치하기를 바란다. 다른 예술과 달리 춤의 표현 도구가 주체적인 자신의 몸이기에 그 긴밀한 감정과 감각의 상태가 몸과 연결되는 경험을 기억하고 기억된 몸을 찾는 것이다. 춤은 복잡한 삶에서 자신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외딴 섬으로 이동시켜주는 수단이 된다. 춤을 출 때 열리는 무한한 공간과 자유로운 사상의 여행, 그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즐긴다. 타인과 얽혀 많은 관계를 맺어온 삶에서 떨어져나와 홀로 되는 나만의 섬,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가장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우리의 행동과 감정, 소망에 있어 그것을 방해하는 어떤 무엇하고도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모습을 향해 춤출 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임신 후 낯설게 변해가는 몸, 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고 우유를 먹을 때 생기는 그 동물적인 느낌,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신비로움과 다른 이분법적 대립의 느낌이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이것은 여성의 몸 안에 숨겨진 능력(임신)과 몸의 현상들이 출산하는 육체를 통해 발견되고 다시 춤추는 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춤을 통해 그녀의 이름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누구의 터흐가 아닌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찾는 순간을 위한 시간, 춤으로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나온 지친 얼굴에서 그녀를 읽는다. 성실하게 춤추며 행복해하는 그녀를 읽는다. 비록 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행동을 통해 나는 생각한다. 춤을 추며 느껴는 자기존재성, 자기 몸의 주체가 되어 춤을 생각하고 인지하는 주체적 행동의 기쁨들이 춤추는 몸에 가득했다. 춤을 추는 동안 우리는 사색하는 사람이 된다. 춤을 사랑하는 터흐, 그녀는 더 이상 'mama Thu'가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터흐 도안(Thu Doan)이다. 잊지 못할 열정 많은 친구였다. 결혼한 여성의 몸으로 어린 무용수들 사이에서 열심히 춤에 임했던 그녀를 보며 어쩌면 나는 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격려해 주고 싶었다. 가정을 유지하며 아이를 키우며 춤을 지속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춤의 세계에 입문하여 이제는 40대 후반에 시간에 살고 있는 나는 춤을 향한 감춰진 외사랑을 담은 마음에 바람이 스쳤다.

Melting 출연 _Thu (사진제공=임선영)
'Melting'에 출연한 터흐(Thu) (사진제공=임선영)

지난 4년 베트남에서 보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춤을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며 감춰진 나의 열정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뜨거운 대륙의 열기만큼이나 강렬했던 베트남 친구들과의 우정을 기억한다. 해안에서 바라보던 지평선을 가득 채웠던 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 소란스럽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무리들, 베트남 아줌마가 만들어주던 쌀국수, 천국과 지옥의 맛을 지녔다는, 내가 좋아하던 두리안, 연꽃을 사서 꽃 봉우리가 잘 열리기를 기도하듯 기다리던 시간들, 노을을 바라보며 아이와 걸으며 맡았던 저녁 냄새... 이방인의 이름으로 낯설게 바라보던 베트남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춤과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글을 연재하면서 기억의 저장고에 이름표를 걸고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나의 과거를 현재로 마주하며 즐거워하던 순간들을 늘 기억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한 바다 (사진제공=임선영)
아이와 함께한 바다 (사진제공=임선영)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