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바로크식 유머의 이유 있는 변신, 부천아트센터의 ‘귀족되기 대작전’
[공연리뷰] 바로크식 유머의 이유 있는 변신, 부천아트센터의 ‘귀족되기 대작전’
  •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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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되기 대작전' 포스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7월 1일 부천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귀족되기 대작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작은 규모의 콘서트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원작은 17세기 프랑스 작곡가인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의 코메디 발레 <서민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으로, 당대의 최고 극작가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의 희곡 대본으로 작곡된 것. 1670년 10월 14일 샹보르 궁전에서 루이 14세 앞에서 초연을 가진 바 있는 이 작품은 무용과 연극, 음악이 완벽히 통합을 이룬 극으로 지난 350여년 동안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공연이 되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관객들은 몰리에르의 희곡이 주는, 그 시대를 초월한 즐거움에 만족해왔는데,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친숙한 이유는 <왕의 춤>이나 <세상의 모든 아침>과 같은 음악에서 주제곡처럼 등장하는 <터키 의례 행진곡> 덕분이다.

귀족되기 대작전 실황 사진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귀족되기 대작전' 공연 모습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돈 많은 중산계층인 주르댕씨가 귀족생활을 흉내내며 신분상승을 꿈꾸는 과정에서 허영심과 속물근성을 실랄하게 꼬집는 풍자극으로서, 주르댕의 딸인 뤼실이 애인을 귀족으로 변장시켜 결혼에 성공한다는 해피엔딩까지 매 장면이 즐겁고 통쾌하며 코미디로서 일말의 교훈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바로크 음악 공연단체인 더 뉴 바로크 컴퍼니의 반주와 엄숙정의 연출에 의해 소극장 스케일로 재구성된 버전이 사용되었다. 오리지널 작품으로부터 흥미로운 요소들을 떼어와서 한국의 정서에 맞게 장면과 내용, 무대를 적절하게 각색한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이 너무나 성공적인 시도였다.

귀족되기 대작전 실황 사진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귀족되기 대작전' 공연 장면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중요한 장면들을 중심으로 6명의 성악가들이 수시로 배역을 바꿔가며 극을 이끌어가는데, 연극 부분에서의 장소와 대사, 표현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에 꼭 맞아떨어지게 바꾸었음(예를 들자면 귀족사회로 설정된 비사이로막가 골프클럽 같은 경우)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건너뛴 인간군상의 공통된 특징과 유머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더불어, 축약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무용수를 기용하여 사실상 이 작품의 중요한 축인 무용까지를 고스란히 소화했다는 점에서 원작에 충실하고자 한 기획의도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가운데 무용수들이 직접 관객석으로 내려와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이벤트는 극에 대한 친연성을 높이기에 아주 훌륭한 장치라고 생각되었다.

이날 관객석에 앉아있던 성인은 물론이려니와 어린이 관객에게까지 몰리에르의 유머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단히 고무적으로, 이에 대한 공로는 응당 성악가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 같다. 많은 대사와 희극적인 연기를 몸을 사리지 않고 소화해내어 SNS로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보는 듯한 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연극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르댕씨의 코믹한 연기가 돋보였고 음악, 무용, 검술 선생의 감초 역할도 두드러졌는데, 이들의 노래 또한 발군이었다. 후작부인의 솔로 아리아와 음악선생과의 2중창, 카운터테너와 테너의 2중창, 마지막 합창 등이 특히 돋보였다.

귀족되기 대작전 실황 사진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귀족되기 대작전' 공연 장면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이러한 매력적인 음악을 뒷받침한 더 뉴 바로크 컴퍼니의 반주 또한 일품이었다. 감바의 그윽한 울림과 쳄발로의 낭랑한 터치가 눈에 띄게 아름다웠고 감바와 오보에의 2중주를 비롯한 바로크 악기들의 합주 또한 륄리 음악의 매력을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리코더와 트라베르소, 바로크 오보에의 사운드는 이 옛 음악의 정취를 한껏 자아내며 청중에게 시대악기로서의 거리감을 성공적으로 없앴다. 또한 무대 중앙으로 나와 성악가들과 함께 동선을 그리며 연주를 하는 역동적인 연출은 매우 극적인 장면으로 부각되었다.

'귀족되기 대작전' 공연 장면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매력적인 웃음과 해학의 묘를 선사한 이 <귀족되기 대작전>이 공연된 소극장의 음향과 컨디션 또한 대단히 훌륭했다. 여느 소극장과는 달리 적절한 울림과 선명한 직접음이 잘 포착되어 내추럴 어쿠스틱의 매력을 잘 전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객석 의자도 접이식이 아니라 비교적 편안하고 튼튼했다. 대극장보다 더 많은 용도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음악공간으로서 부천아트센터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될 것 같다. 보통 기존의 소극장 오페라들은 19세기 부파 혹은 20세기 소극장용 작품을 많이 선택하는 편인데 이렇게 17세기 작품으로 현대적인 연출과 흥미진진한 연주를 선보이며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편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사실. 더 뉴 바로크 컴퍼니와 부천아트센터의 이 성공적인 합작품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리바이벌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다른 새로운 흥행작을 만들어내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새로움을 안겨줄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귀족되기 대작전' 공연 모습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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