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음악은 진보하는가? 전통과 혁신에 대한 대답 - 런던필하모닉 부천 공연
[공연리뷰] 음악은 진보하는가? 전통과 혁신에 대한 대답 - 런던필하모닉 부천 공연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17 1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부천시 승격 50주년 기념 특별음악회
- 2023년 10월 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부천아트센터가 런던 필하모닉과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를 초청, 마련한 특별 콘서트는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스마트 문화도시 부천의 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로 더할 나위 없었다. 런던필은 1932년 거장 토마스 비참에 의해 창설되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전통에만 기대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해 왔다. 특히 2021년 수석지휘자에 취임한 에드워드 가드너와 함께 쇄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전 내한 연주에 비해 세련되면서도 정갈하고 한층 예리해진 사운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연주는 멘델스존의 걸작 <핑갈의 동굴> 서곡으로 시작했다. 감정의 일렁임이 몰아치는 낭만적인 해석과 진한 음향적 특성에 익숙해진 청각에 낯선 느낌이 들었다. 과장되지 않은 말쑥한 음향과 밋밋하지만 신선한 느낌으로 전개했다.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와 성부 간의 선명함이 강조되었다. 목관과 금관악기의 예리한 소리가 귀를 확 잡아 끌었다. 하지만 이내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갑작스레 강력한 어택이 훅 치고 들어왔다. 총주의 찬란한 쾌감이 홀 사운드와 어우러져 극치감을 더 했다.

에드워드 가드너와 런던 필하모닉(사진제공 = 부천아트센터)
에드워드 가드너와 런던 필하모닉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테츨라프는 이제 완전히 무르익어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 칭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특히 그의 브람스 연주는 협주곡뿐 아니라 동생 타냐와 함께한 이중 협주곡, 그리고 얼마전 작고한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그트와 함께한 트리오 연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의 연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악보를 하나하나 해체하여 자신만의 음악으로 완전히 새롭게 제시했다. 풍성하면서도 쓸쓸한 브람스가 아니라 깔끔하고 세련되었으나 어딘가 충동으로 가득한 그것이었다. 도입부부터 놀라웠다. 템포, 톤, 액센트 그리고 프레이징마저 송두리째 바꾼 음악이었다. ‘과연 이것이 브람스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정교하기 그지없는 고음역에서 맑고 차디찬 샘물 같은 울림은 경지에 이른 솜씨였고, 빠른 패시지에서 흔들림없는 보잉과 운지는 녹슬지 않은 최정상급 연주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마지막 악장에선 벅차오르는 감정을 발까지 구르며 표현했다. 온몸으로 부여한 활기와 역동성이었다. 앙코르로 들려준 바흐 <무반주 소나타 2번 ‘안단테’>에서도 진취적이고 강력한 주법을 선보이며 해석에 있어서는 깊은 내면을 담담히 고백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예술가와 청중이 진심으로 통하는 순간이었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사진제공 = 부천아트센터)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런던필의 메인 프로그램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7번>. 이들은 이 곡의 연주에 있어 확고한 전통을 확립한 오케스트라다. 1976년 거장 줄리니와 함께 레코드 역사에 남을 명반(EMI)을 남겼다. 저 높은 창공을 향해 끝없이 비상하는 찬란한 연주를 남긴 바 있어, 과연 우리 무대에서는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기대를 모았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 7번, 런던 필하모닉,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 EMI ASD 3325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 7번' 런던 필하모닉,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EMI ASD 3325

미스테리한 도입부의 무드를 명쾌하고 세련되게 묘사하며 시작했다. 가드너는 저역과 고역의 상쾌한 대비와 목관악기로부터 청신한 연주를 이끌어 밝은 에너지로 충만한 리드를 했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전원적인 제2악장에선 앞선 연주와는 사뭇 다른 낙천적이고 유유자적한 해석을 들려줬다. 섬세하고 산뜻하면서도 약동하는 감성으로 가볍게 터치한 제3악장을 지나 마지막 악장에선 오케스트라의 비르투오지티가 빛났다. 지휘자의 드라마틱한 리드에 정교한 합주력으로 충실하게 반응하며 아름다운 노래로 마무리했다. 복잡한 악곡을 명쾌하고 선명하게 표현한 무척 현대적인 연주였다. 드보르자크 하면 연상되는 보헤미아풍의 흙냄새가 아닌 도회적인 접근이다.

앙코르는 너무나 사랑스런 엘가의 <사랑의 인사>.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몸짓이 소담스러우면서도 친근했다. 이들의 화끈한 화력을 기대했으나 소박한 마무리였다. 무엇인가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공연 포스터(사진제공 = 부천아트센터)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