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간 '보결춤'
뉴욕에 간 '보결춤'
  • 이강희 객원기자
  • 승인 2019.05.2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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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춤을 춘 필연'

[더프리뷰=뉴욕] 이강희 객원기자 = 필자는 대학시절 춤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종교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현재 최보결의 춤의 학교 연구원이며 기획홍보팀장이다. 무용을 전공하지도 않은, 무용계에서 보면 '일반인'일 따름인 내가 어떻게 현대무용가인 최보결 대표와 인연을 맺게 되어 이 글을 쓰고 있을까.

누구의 삶인들 고난이 없을까마는 그 고난을 풀어가는 방식에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늦둥이로 허약한 체질을 타고 나서인지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어릴 때부터 꽤 익숙한 편이었다. 내 나이 열 살에 책으로 만난 ‘어린 왕자’와 슈바이처는 몸에 대한 관심에 호기심과 연민을 버무려주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나’를 따라 사회운동을 하고 몸이 많이 상했을 때 기천무라는 전통무예로 다시 회복을 하고 숨을 쉬듯 노래를 했다. 시집살이가 몹시 힘들었을 때는 몸이 하는 경고를 듣고 춤을 찾아 나섰다. 재즈, 발레, 힙합, 현대무용, 커플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취미로, 벗으로 함께한 세월이 15년이다.

아이들이 제법 성장하며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마음 먹었을 때 찾은 것이 비폭력 대화였다. 사람들이 내게 자꾸만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어주고 싶었다. 대화 기법으로 제법 구조화가 잘 되어 있었지만 내 몸이 갑갑함을 느낀다고 말해왔다. 몸으로 공감하면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내 삶에 들어온 이가 작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서 처음 본 그녀 최보결이었다. 그녀가 고안한 힐링 커뮤니티 댄스 지도자 자격과정 2급, 1급을 수료하는 동안 그녀의 메소드에서 내가 느낀 것은 ‘연민 그리고 자비’였다.

그녀는 대학시절부터 예술을 하기 위해 자신을 해체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고 했다. 그런 그녀는 왜 다른 예술가들처럼 ‘무대 위의 예술’에 자신을 온통 투자하는 대신 나 같은 일반인들을 인도하는 데 자신의 열정과 시간을 쓰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녀가 고안한 메소드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녀의 춤을 접한 이들은 이구동성 '커뮤니티 댄스'라는 말에는 그 춤을 다 담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녀의 춤을 그래서 '보결춤'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육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정신이라 불리는 것은 작은 이성이다.” - 니체

보결춤은 니체 철학을 근간으로 한다. 최보결 대표는 니체가 말한 작은 이성으로 살아온 시대가 이제 커다란 이성을 쓰도록 요청하고 있음을 일찍 알아차렸다. 몸을 재료로 하는 무용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늘 하는 말이다. 몸에 모든 역사가 있으니 고고학자처럼 몸을 발굴하라고 독려하면서 ‘진정한 나’, 그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쉽고 재밌게 밟아가도록 안내한다. 어린 아이처럼, 삶을 전쟁터가 아닌 놀이터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주사위를 던져 어떤 숫자가 떨어지든 그것을 그저 변화로 여길 수 있도록, 호기심을 갖고 그 변화에 리듬을 타며 놀이하듯 창의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몸지성’을 개발할 수 있게 안내한다.

과정은 쉽고 재밌고 가볍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매우 깊다. 놀이하듯 몸을 이완하게 돕고 이완을 통해 감각을 깨운다. 보결춤을 ‘감각소생술’이라 부르게 된 이유는 그 과정이 마치 죽은 심장을 살리는 심폐소생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각이 살아나는 과정에서 내적 감각에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고 이것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도록 안내한다. 감정에 빠져 춤을 추는 대신 감각으로 춤을 추게 하고 감정은 다만 표현의 자원으로 사용하도록 안내한다. 이 과정에서 상상이 일어난다. 이 상상이 삶에 변형을 가져온다. 예술이 삶에 창의적인 변형을 가져오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미 이 비밀을 알고 자신의 삶을 창의적으로 변형시키며 살아온 자이다. 최보결 그녀도 분명 이 비밀을 아는 자이다. 다만 이 비밀을 극소수만 누리는 것에 유독 안타까움을 느낀 사람이다. 그녀는 누구나 춤출 수 있다고, 우리 몸은 춤을 잊지 않았다고 말한다. 춤으로 예술로 누구나 삶에 상상을 불러오고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나 같은 ‘일반인’에게 그녀의 메소드 ‘보결춤’은 아이처럼 놀이하듯 쉽고 재밌게 나를 찾아가게 돕는 따뜻한 안내자이며 나도 예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힘을 지닌 안내자이다. 실제 나는 작년 11월 전문 예술가들의 행사인 창무예술원 주최 공연무대에 섰고, 올해 3월 고도원의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교육, 예술, 명상 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열린 힐링창작캠프 참가자 일반인 80명은 그녀의 작품 <봄의 정령>을 두 시간만에 배워 무대 위에 올라 공연했으며 4월 27일 '평화인간띠잇기'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안무한 ‘평화의 춤’을 유투브를 통해 배우고 함께 추었다.

최보결 대표와 연구원들의 이번 뉴욕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2급 지도자 과정 3기가 진행되는 과정에 잠깐 짬이 난 시기를 이용, 뉴욕에도 보결춤을 전하고 싶은 그녀의 욕구가 불러온 행보였다.

“그 ‘알 수 없음’을 춤추세요. 지금 그냥 당신의 춤을 추세요. 결점을 드러내면 그게 오히려 자원이 됩니다.”

어떻게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그녀가 늘 하는 말이다. 얼핏 이게 무슨 말인가 할 법도 한데 실제 현장에서 목격해보면 이 말은 묘하게도 듣는 이에게 대개는 힘을 북돋아주어 발을 떼게 만든다.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삶을 경험하고 불투명한 미래가 던지는 알 수 없는 불안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 그녀의 말이 자극이 되는 것일까.

“뉴욕에 같이 갈 사람?”

한 달 전 그녀가 춤의 학교 연구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손을 든 이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5월 9일부터 14일까지로 일정을 잡은 이번 뉴욕행 역시 ‘알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뉴욕에 있는 어떤 북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보결춤 워크숍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게 일정의 전부였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았다. 센트럴 파크에 있는 존 레논 메모리얼과 9.11 광장에서 ‘이매진 써클댄스’ 와 ‘평화의 춤’을 추고 싶다는 우리들의 욕구만은 확실했지만 서울에서 미리 알아본 뉴욕의 날씨는 우리가 그곳에서 보낼 시간 동안 흐리거나 심지어 비가 올 예정이었다. 이럴 때 우리는 그녀에게 배운 대로 ‘알 수 없음’을 춤춘다. 워크숍을 위해 포스터를 만들었다.

시간과 장소 등을 비워둔 채 포스터를 만들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유니온 북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북클럽 박영숙 회장이 운영하는 맨해튼 소재 반주(Barn Joo) 식당에서 1,2차 워크숍을 갖기로 일정이 확정되었고 뉴욕행을 하루 앞둔 날 라디오 방송 인터뷰가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뉴욕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유니온 북클럽 1차 워크숍, 촬영 : 최보결 (춤의 학교 대표)
유니온 북클럽 1차 워크숍 (사진=최보결)

5월 9일 최보결 대표와 연구원 한 명이 먼저 출발하고 다음 날 한국 일정을 마친 연구원 3명이 출발해 유니온 신학대 숙소에서 만났다. 당일 1차 워크숍을 마친 최 대표는 얼굴에 피곤한 기색도 있었지만 수업을 마친 후 늘 그렇듯 그녀의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진 듯 보였다. 뉴욕의 첫 워크숍은 어땠을까?

"뉴욕, 뉴저지 지역 한인여성들의 독서모임 유니온 북클럽이...‘평화의 춤’을 만든 현대무용가 최보결 박사를 초빙해 워크숍을 개최했다."

다음 날 10일 중앙일보 ‘사람사람’ 섹션에 이미 기사가 났다. 워크숍에 참가했던 유니온 신학대학 정현경 교수와 뉴저지 훈민학당 원혜경 교장을 통해 미술 큐레이터, 감리교 목사, 음악디렉터, 요리연구가, 한의사, 대학교수, 여행사 사장 등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된 북클럽 멤버들이 얼마나 신났는지, 요즘 한창 재밌게 공부하고 있는 동의보감이 이론이라면 보결춤은 마치 몸으로 익히는 의서 같다며 그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전해 들으며 K 라디오를 향해 출발했다. 약 30분 정도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며칠 뒤로 예정됐었던 방송은 어찌된 일인지 당일 바로 나갔다. 라디오 방송사 관계자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사진 : K 라디오 인터뷰, 촬영 : 최병일 (춤의 학교 연구원)
K라디오 인터뷰 장면 (사진= 최병일 춤의 학교 연구원)

인터뷰를 마친 후 이 광장 저 광장에서 ‘평화의 춤’을 추려 했던 우리에게 비를 뿌리던 뉴욕이 천천히 비를 거두기 시작했다. 뉴저지 성공회 원호길 신부님의 안내로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를 찾아갔다. 그 많은 광고판들이 서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들고 남에 묘한 리듬이 있어 한참을 바라보게 하는 매력에 끌려 넋을 놓고 걷다가 흘러들어간 어느 골목, 두어 걸음 지나쳤다가 이상한 끌림에 다시 찾아들어간 공간이 있었다. 세인트 메리 성당이었다.

사진 : 세인트 메리 성당, 촬영 : 이강희 (춤의 학교 기획홍보팀장)
세인트 메리 성당 (사진=이강희)

성당에 들어가 초를 밝히고 무릎을 꿇으니 절로 기도가 나왔다. 원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그 성당은 노숙자들도 많이 오는, 모든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연 그런 성당이라 한다. 기도가 끝나고 그 공간에서 ‘평화의 춤’을 추고 싶은 마음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조용히 성당 안을 맴돌기 시작한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성당 바닥을 유리알처럼 깨끗하게 유지하는 장본인, 성당 청소부였다.

“I don't want to make you feel bad."

우리의 뜻을 전했을 때 그가 한 첫 마디였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지만 우리가 다시 한 번 부탁하자 그는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의 대답은 ‘No'였다. 그러나 그는 정말 어떻게든 우리의 뜻을 존중하고 싶어했다. 지나가는 성당 관계자를 붙잡고 다시 물었고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다시 걸었고 결국은 음악을 틀지 않는 조건으로 ’평화의 춤‘을 추도록 허락을 얻어주었다.

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우리는 9.11 광장을 향해 또 길을 나섰다.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 있고 그 아래로 끝없이 흐르는 물결, 그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 광장에 서서 ‘평화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듯, 흘러라, 흘러라.

사진 : 9/11 메모리얼, 촬영 : 최병일 (춤의 학교 연구원)
9/11 메모리얼 (사진 = 최병일 춤의 학교 연구원)

5월 11일에는 유니온 북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2차 워크숍이 있었다. 1차 때 몸이 많이 열린 회원들이 2차 워크숍을 맞이하는 마음은 기대와 설렘이었다. 날이 아주 청명했다. 오전 워크숍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모두 햇볕을 가득 쬐며 길 건너 몇 미터를 걸어 유니온 광장을 찾아갔다. 우리끼리 ‘평화의 춤’을 한 곡 추고 나자 원 바깥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Would you like to join us?"

손길을 내밀면 바라만 보던 이들이 하나 둘 손을 잡았다. 원이 조금씩 커졌다. 그들과 함께 ‘평화의 춤’을 추었다. 한 여인에게 초대에 응한 이유를 물으니 보는 동안 어떤 에너지를 느꼈다고 했다.

“It means a lot to me."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동안 그 여인이 귀에 속삭인 말이다.

키가 아주 큰 한 청년은 최보결 대표를 가만히 꼬옥 안고 인사를 하고는 가던 길로 향했다.

평화의 춤이 끝난 후 펼쳐진 광장에서의 ‘더하기 빼기’. 이 춤이 이 여인들을 어떤 시간대로 데려갔는지는 여인들의 표정이, 바닥도 마다하지 않고 접촉하는 몸짓이 말해주었다.

사진 : 유니온 광장에서 더하기 빼기를 하는 워크숍 참가자들, 촬영 : 최병일, 이경화 (춤의 학교 연구원)
유니온 광장에서 더하기 빼기를 하는 워크숍 참가자들 (사진= 최병일, 이경화 춤의 학교 연구원)

햇볕 가득한 광장에서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아이처럼 신나게 놀고 오후 워크숍을 맞은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사람은 즐겁게 놀면 저절로 몸이 이완된다. 몸을 이완시키려고 술을 마시거나 다른 약물에 의지할 필요도 없다. 저절로 몸이 열린다. 보결춤 메소드가 지닌 힘의 핵심이다.

사진 : 유니온 북클럽 2차 워크숍, 촬영 : 이강희 (춤의 학교 기획홍보팀장)
유니온 북클럽 2차 워크숍 (사진 = 이강희)

두 번째 워크숍이 끝나고 북클럽 멤버들은 벌써 심화워크숍을 계획하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5월 12일은 Mothers' Day이자 부처님 오신 날.

한국 조계사와 공연 이야기가 오가다가 무산되었는데 미국에 와서 결국은 공연을 하게 될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공연에 쓸 음악을 하루 전 날 달리는 차 안에서 고르고 밤늦게 편집을 하고 공연 당일 숙소 좁은 방에서 리허설 한 번 한 게 고작이지만 심지어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공연할 장소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데도 누구 하나 걱정하는 이가 없었다.

사진 : 불광선원 봉축대법회를 마치고, 촬영 : 이강희 (춤의 학교 기획홍보팀장)
불광선원 봉축대법회를 마치고 (사진 = 이강희)

“Believe in yourself."

이날 법회를 위해 불광선원에 찾아온 현각스님의 봉축법어를 들으며 전치사 ‘in'이 새롭게 들어왔다. 내 안에 있는 참 self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가 전치사에 들어 있었다. 에고가 만든 경계가 녹아내리면 그 self와 우주가 결국 하나임을, 춤이 결국 시공에 참여하는 우주적인 놀이임을 그녀에게 배우며 그녀의 춤을 접하며 얼마나 많이 느끼고 있는지.

법회를 마치고 공양을 하러 찾아간 야외 천막, 바닥으로 시냇물처럼 빗물이 흐르는 그곳에 있는 아주 작은 간이 무대, 그곳이 바로 우리가 공연을 할 장소였다.

사진 : 불광선원 봉축대법회 공연 ‘I Love Budda’와 ‘The Soul of Peace', 촬영 : 원혜경 (뉴저지 훈민학당 한국학교 교장)
불광선원 봉축대법회 공연 ‘I Love Budda’와 ‘The Soul of Peace'. (사진 = 원혜경 뉴저지 훈민학당 한국학교 교장)

그리고 우리는 불광선원에서 마련해준 무대를 넘나들며 확장된 공간에서 춤을 추었다. 마치 흐르는 빗물도 두런두런 말소리도 풍겨오는 음식 냄새도 모두 다 무대인 듯이. 공연을 마친 후 주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모두 마음 속에 꿈을 품었다. ‘이곳 불광선원에서, 따끈한 방도 있는 이곳에서, 보결춤 지도자 과정을 열고 싶다!’

거의 무계획으로 왔는데 다음 날 13일에도 일정은 또 있었다. 한인동포회관(Korean Community Center)에서 열린 워크숍. 너무나 급하게 잡은 일정이라 참여인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덕에 우리 연구원들도 합류해서 함께 어울려 즐겁게 놀면서 한 숨 고를 기회를 가졌고 가장 먼저 도착한 마을 주민 ‘김 선생님’의 얼굴이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장난끼 많은 소년의 얼굴로 변해가는 모습에 우리 모두 즐거워했다. “다음에 또 오실 때는 미리 좀 알려주세요.” 김 선생님의 당부였다.

사진 : KCC 한인동포회관 홍보물과 워크숍 후에 난 기사, 촬영 : 이강희(춤의 학교 기획홍보팀장, 원혜경(뉴저지 훈민학당 한국학교 교장)
한인동포회관 홍보물과 워크숍 후에 난 기사 (사진 = 이강희, 원혜경)

이제 하루 남았는데, 센트럴 파크에 있는 존 레논 메모리얼에 가서 'Imagine'에 맞춰 써클댄스도 추고 ‘평화의 춤’도 추고 싶은데 뉴욕에 내리는 비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춤을 출 수 있을까?

5월 14일 마지막 일정은 속닥이던 유니온 북클럽 멤버들의 열망이 담긴 심화과정 ‘원 무브먼트 리추얼’ 워크숍이었다. 최보결 대표가 매일 운동처럼 명상처럼 하는 일상의 몸풀이로 만든 무브먼트라서 리추얼이라 명명했고 ‘원’에는 한자어로 圓, 源, 願 즉 둥글다, 근원, 원하다 등 중의적인 의미에 zero 즉 아무 것도 없음의 의미도 담았다. 이 리추얼을 여럿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넓은 마루가 필요했기에 뉴저지 성공회 성당에 있는 훈민학당 한국학교를 찾아갔다. 우리가 떠난 후에도 그녀들이 매일매일 자신과 깊이 만나고 자신의 삶을 그저 내맡길 수 있는 무언가를 꼭 전하고 싶었던 최보결 대표의 열망과 배움의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잡고 싶었던 그녀들의 열망이 만나서 이루어진 워크숍이었다.

최보결 대표는 땅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바닥에 오랜 시간 누워 리추얼을 정성껏 시연했다.

“가슴에 남아 있던 마지막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연구원들의 안내에 따라 리추얼을 두 번 반복하고 난 후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며 타인의 욕구에 영감을 받아 ‘더하기 빼기’를 하며 몸으로 조각상을 만들어가던 멤버들 누구에게서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나 걱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냥 그 시간과 공간에 현존했다.

사진 : 뉴저지 훈민정음 한국학교에서 열린 심화워크숍, 촬영 : 이강희, 최병일, 박성희 (춤의 학교 연구원들)
뉴저지 훈민정음 한국학교에서 열린 심화워크숍 (사진 = 이강희, 최병일, 박성희 춤의 학교 연구원)

우리가 뉴욕에 올 때 지녔던 꿈을 얘기하자 그들은 모두 센트럴 파크를 향해 길을 함께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꿈 많은 중학생 소녀 같은 느낌이어서 그 모습이 더 이상 숨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와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센트럴 파크 존 레논 메모리얼.

사진 : 최보결 대표와 평화의 춤 (센트럴파크 ‘존 레논 이매진 메모리얼’에서), 촬영 : 이강희 (춤의 학교 기획홍보팀장), 원호길(뉴저지 성공회 신부)
센트럴 파크 존 레논 이매진 메모리얼에서 펼쳐진 평화의 춤. (사진 = 이강희, 원호길(뉴저지 성공회 신부)

비가 오는 공원에서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든 후 'Imagine'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원에 들어와 그 공간에서는 더 이상 원이 커질 수 없을 만큼 확대되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같이 흔들흔들 바람에 나부끼는 풀처럼 저절로 함께 움직였다, 저절로.

센트럴 파크에서 춘 ‘평화의 춤’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나눈 뜨거운 피드백을 끝으로 뉴욕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자정 무렵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알 수 없음’으로 시작한 뉴욕행은 그보다 더 치밀하게 계획할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채워져 나갔고 그 결과물도 우리를 맞이한 그들 안에 또 그들의 환대를 받은 우리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알 수 없음’을 춤추라는 최보결 대표의 말은 지금 이 시간과 공간에서 ‘너의 춤을 추라’는 말과 같다. 우주의 리듬을 타라는 말과도 같다. 그녀는 함께 춤을 추면서 그런 방식을 움직임으로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몸에 체화해서 삶에 이어지게 한다. 미리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호기심으로 열렬히 삶을 사랑하도록 안내한다. 이번 뉴욕행은 그녀의 그런 춤이 뉴욕이라는 또 뉴저지라는 시공간으로 확장된 것일 뿐. 그녀가 자신에게 몰입해 그녀의 춤을 추면 자신의 춤을 추고 싶은 이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반응한다. 뉴욕 일정은 그런 반응의 연속으로 확대되어갔다. 자신의 춤을 추고 싶은 이들의 열망, 이것이 우연을 필연으로 가져간 힘이었다.

1,2차 그리고 심화 워크숍 참석자 모두가 들어 있는 단톡방에는 보결춤을 접한 이후 이들이 이 춤을 삶에 어떻게 초대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소식이 매일 올라온다. 매일 원 리추얼을 하며 자신을 만난다는 얘기, 유명한 큐레이터라는 한 여인이 창작의 긴장에 시달리는 작가들에게 보결춤을 전하고 바닷가에서 아이처럼 놀았다는 얘기, 뉴욕에서 정식으로 지도자 과정을 열자는 제안, 마침 한국에서 미국에 들어오는 딸과 함께 듣겠다는 모성, 20명은 너끈히 모을 수 있다는 호기, 순례 일정을 늦추고 지도자 과정부터 하겠다는 열정, 어떤 방식이 더 좋겠는가 하는 아이디어들이 단톡방에 넘쳐난다.

뉴욕 2차 프로젝트가 펼쳐질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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