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8, 공연과 베르테르 효과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8, 공연과 베르테르 효과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8 1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포스터 이미지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포스터 이미지

안타까운 동반자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주로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동반자살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이자 경제적 양극화의 슬픈 자화상이다.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인간에게는 삶의 충동과 함께 죽음충동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각각 에로스와 타나토스라고 불렀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원래 상태인 무기물로 돌아가려는 경향, 신비스러운 자기학대의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대해 많은 반론이 있었지만 프로이트는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자살은 어느 지역이나 어느 시대에나 있다. 아주 비천한 사람에서부터 높은 학식을 가진 문인이나 철학자,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자살을 그렇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경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살은 매우 이기적인(?) 행위다. 같이 살던 가족, 친구, 이웃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건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고 치명적인 고통으로 남는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중 최고수준이고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한다. 경제적 부는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어둠은 걷히지 않고 있다.

문학에는 자살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보바리 부인>이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근대소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나 유리피데스의 <히폴리투스> 등의 그리스 비극에 등장한다. 세익스피어의 <오델로>, <로미오와 줄리엣>,<리어왕> 등과 프랑스의 코르네이유와 라신느의 작품에도 나온다. (Wagner and Suicide, 165~166). 그런데 자살이나 죽음이 문학이나 예술의 소재가 되면 각색 과정을 통해 미화되거나 순치된다. 예술은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여기에 새로운 시각을 보태고 때로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이를 낭만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살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베르테르 효과

1774년에 발표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8세기의 마지막 25년동안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괴테는 하룻밤 사이에 온 유럽의 유명인이 되었다. 출간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라이프치히 대학 신학부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것은 판매부수와 명성을 더욱 키워 주었다. 그러나 그런 괴테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영국에서 괴테의 명성을 세우는데 가장 크게 이바지한 사람은 1824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영어로 옮긴 토마스 칼라일이었다. 매슈 아놀드, 조지 엘리엇, 조지 헨리 루이스 등이 모두 괴테에게 탄복했고 루이스는 다른 어느 언어보다도 먼저 영어로 완전한 괴테평전을 썼다. 프랑스어로도 번역되었고 그 뒤에 희곡으로도 각색되었다. 1779년에는 이 책을 영어로 읽을 수 있었고 그 후 20년동안 영어판 일곱 종이 더 나왔다. 1800년에 이르면 대부분의 유럽언어로는 물론 중국어로도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1808년에 괴테가 나폴레옹을 만났을 때 중심화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고 황제는 그 책을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해적판이 나돌았다(유럽문화사 1권 318-319).

이 소설은 ‘베르테르 효과’라는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유럽의 많은 젊은 남녀들이 동반자살을 하였다. 무려 2천쌍 이상의 동반자살 사건이 있었는데, 베르테르처럼 권총자살을 흉내낸 모방자살도 많았다고 한다. 1974년 데이비드 필립스는 1947년부터 1968년까지 있었던 미국의 동반자살 사건을 조사한 결과 , 매스컴에서 유명인의 자살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뒤 2개월 사이에 자살이 급격하게 늘어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명명했다.

오페라에도 자살은 많이 등장한다. 푸치니의 <토스카>나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등에서 여주인공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을 특히 많이 다룬 오페라 작곡가는 바그너였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탄호이저>,<트리스탄과 이졸데>, <로엔그린> 그리고 링 사이클에 자살이 등장한다. 바그너는 심한 조울증 증세가 있었다. 그는 낭비벽이 매우 심해서 늘 빚에 시달렸다. 여러 스폰서들, 심지어 루드비히 2세까지 나서 그의 빚을 갚아 주었지만 그의 병적인 낭비벽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1883년 사망 당시 그에게는 큰 빚이 남겨져 있었고 이는 아내 코지마를 괴롭혔다. 이런 조울증 때문인지 그는 늘 자살을 생각했다. 특히 창작의 시간에는 죽음충동이 강해졌다. 그는 계속 잠을 자고 싶어했고, 마침내는 영원한 잠에 빠지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죽음을 통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주제는 많은 문학작품과 오페라에 등장한다. 그러나 오페라의 자살장면이 실제 자살을 부추겼다는 기록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연극에서의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은 일본의 연극에서였다.

 

무리신쥬

1680년대 이후 일본 에도시대에는 젊은 남녀들의 정사(情死, 동반자살)사건이 빈발했다. 이를 무리신쥬(無理心中)라고 부른다. 신쥬(心中)는 타인에 대해 의리를 세운다는 뜻에서 전이되어 남녀간의 사랑을 끝까지 지킨다는 뜻으로 사용되게 된 말이다. 당시 무리신쥬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어 에도막부는 이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이 규제의 계기가 된 것은 3대 정사사건이라고 부른 세 건의 동반자살 사건, 그리고 가부키의 정사극이었다.

1703년, 21살의 하츠라는 젊은 여성과 25살의 도쿠베라는 남성이 오사카의 소네자키라는 마을의 숲속에서 동반자살을 하였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도쿠베의 숙부가 그를 다른 여성과 결혼시키려고 하자 동반자살에 이르게 된다. 이 사건은 1개월 후에 치카마쯔 몬자에몽( 近松門左衛門 )이라는 작가를 통해 <소네자키신쥬(「曽根崎心中)>라는 분라쿠 작품으로 탄생한다. 치카마쯔몬자에몽은 분라쿠( 인형극 - 人形浄瑠璃文楽), 가부키등의 극작가로서 매우 인기있는 작가였다.

<소네자키신쥬>는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고, 이를 통해 정사극(心中物)이라는 가부키 양식까지 태어나게 된다. 치카마쯔 몬자에몽은 1720년에는 신쥬덴노아미지마< <心中天網島) 라는, 또 다른 정사사건을 다룬 분라쿠 작품을 비롯해 1703년부터 20년간 8편의 정사극을 쓴다. 문제는 이들 공연이 젊은이들의 동반자살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에도막부는 1722년 정사극 공연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소네자키신쥬는 막부에 의해 몇 번이나 공연금지를 당했지만 가부키의 한 장르를 형성하게 되고 현대에까지 이어진다. 막부는 동반자살한 사체를 가혹하게 처리하였다. 동반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사체를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들개나 새들이 먹도록 내버려 두었고(이를 유해취체라고 하였다), 자살에 실패한 남녀는 대중들 앞에 세워 신원을 공개한 다음 신분을 박탈하였다.

막부가 정사극을 금지하자 작가들은 극의 내용을 자살에 이르게 하지 않고 고뇌와 갈등을 해결하고 해피엔딩에 이르는 결말로 바꾸었다. 그러나 막부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무리신쥬는 확산되었고, 자살을 미화하는 사회풍조마저 생겼다. 1704년에는 동반자살자의 내역을 적은 ‘ 자살대감’(心中大鑑)이라는 책까지 발간될 정도였다. 최근 ‘자살예방백서’가 발간되는 것처럼 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제작한 책이었다.

일본에는 셋푸쿠(切腹) 또는 하라키리라고 불리우는 무사들의 자살전통이 있었다. 사무라이들의 명예가 더럽혀졌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자결하거나 자결을 명령받는 것이다. 유명한 셋푸쿠는 1703년 47명의 사무라이들이 주군을 죽인 사무라이에게 복수하고 이로 인해 자결을 명령받은 아코사건(赤穂事件)이다. 이 사건은 <츄신구라 忠信藏>라는 제목으로 분라쿠와 가부키의 작품소재가 되었다. 이런 무리신쥬나 하라키리의 전통때문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많은 자살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문인중에도 자살한 작가가 많다. <설국>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일흔이 넘어 자살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는 애인과 무리신쥬를 하였고 아쿠다카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역시 무리신쥬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자살하였다. 가장 센세이셔널한 자살사건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사건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고, 소설, 평론, 수필, 연극대본 집필등 많은 분야에서 활약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공연 매니아로서 가부키에 심취해서 가부키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미시마는 황국주의자로서 평화헌법에 반대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친 극우주의자였다. 그가 셋뿌쿠를 한 곳도 자위대로서 자위대 주둔지에 돌입하여 간부를 인질로 잡고 자결하였다.

자살을 보는 시각들은 동서양이 비슷해서 유럽에서도 자살을 범죄로 인식했다. 자살은 그리스도교 사회가 형성되자마자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서기 452년에 열렸던 아를르 회의는 자살을 범죄로 선언하고 자살은 오직 악마적인 광기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563년에 열린 프라하 회의에서부터 자살자는 형벌적인 규제를 받게 된다. ‘ 보르도에서는 시체를 거꾸로 매달았으며 아베비유에서는 시체를 담아 거꾸로 끌고 다녔고 릴에서는 남자의 시체는 네거리에 매달고 여자의 시체는 불에 태웠다.’ 1823년까지도 자살자의 시체를 거리로 끌고 다니고 시체를 꼬챙이에 꿰어서 장례식도 없이 길가에다 묻어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살은 중죄였다( 뒤르켐 자살론, 351-352).

21세기 우리나라에서 무리신쥬와 유사한 동반자살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반자살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던 남녀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알게 되고 자살에 이르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 가족이 집단적인 동반자살에 이른다는 점이 더욱 문제가 된다. 이런 현상은 미국 교민사회에까지 전이되어 한국교민 자살률이 타민족에 비해 월등히 높다(헤럴드 경제 미주판, 2019년 5월 3일)는 보도도 있다. 이민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좌절하는 건 다른 민족도 마찬가지일텐데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 것일까? 2018년 우리나라 사망통계를 보면 10~30대 사망원인중 1위가 자살이고, 40~50대는 2위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았다. 다행히 최근에 약간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작년의 통계로는 10만명당 23명에 달했다. 이는 33. 8명에 달했던 2009년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 수치이고 26.7명이 자살하는 리투아니아에 비해서는 적지만 터키의 2.1명에 비하면 무려 10배가 넘는 수치다.

뮤지컬 '잭 더 리퍼' 포스터 이미지
뮤지컬 '잭 더 리퍼' 포스터 이미지

잭 더 리퍼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예술이 자살을 미화하고 낭만화하는 것처럼 미디어는 자살을 정당화하고 때로는 신화화한다. 예술이 새로운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처럼 미디어도 유명인의 자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자살자들에게는 누구나 사정이 있고 그럴만한 상황에 처해 있을 거라고 말하거나 이를 특별한 볼거리로 만든다. 미디어는 이런 스펙터클을 먹고 산다 . 또한 미디어는 사건을 좆는 속성이 있다. 유명인의 자살은 미디어로서는 큰 사건이고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켜서 시청률을 올리기 좋은 소재다.

뮤지컬 < 잭 더 리퍼>는 1888년 런던에서 발생한 5명의 매춘부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뮤지컬이다. 이 때 영국의 신문구독률이 급격히 올라갔고 조악한 3류 신문과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이들 삼류신문들은 살인사건등 사건에 의존했다. <스타>라는 싸구려 신문은 1888년 9월, 19만 명이던 구독자수가 애니 채프먼 살인사건(5명 매춘부중의 한명)이 터지자 26만 명으로 증가했고 사건이 잠잠해지자 다시 19만 명으로 감소했다가 10월에 또 다른 잭 더 리퍼 살인사건이 터지자 3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신문사와 경찰로 많은 편지들이 쇄도했고 일부는 수사에 도움을 주려는 선의의 편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경찰은 수사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신문들은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독자들을 자극하고 마치 현장을 본 것처럼 기사를 작성하였다. 많은 신문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였다. 이런 것을 미디어 프렌지(Media Frenzy)라고 부르는데, 잭 더 리퍼는 미디어 프렌지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잭 더 리퍼는 소설, 영화등의 소재가 되었고 1960년대 이후 하나의 산업이 되어서, 리퍼학(Ripperology)과 리퍼문학(Ripperature)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였다(Jack the Ripper and the London Press, p27). 뮤지컬 잭 더 리퍼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잭 더 리퍼와 같은 연쇄살인사건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를 중요한 사건으로 만든 것은 미디어였다.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과 미디어 프렌지에 의해 잭 더 리퍼는 ‘ 신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디어는 사건을 먹고 자란다. 사건이 발생하면 미디어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데, 유명인의 자살도 거기에 속한다.

자료사진 = 만들어진 살인마 MBC방송화면
자료사진 = 만들어진 살인마 MBC방송화면

 

미디어와 베르테르 효과

많은 연구들은 대중매체의 보도가 동반자살을 부추기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특히 유명인의 죽음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는 대중매체의 보도에 의해 더욱 강해지는 현상을 보인다. 스타의 죽음은 상당기간 동안 미디어의 중요한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보도는 자살의 방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유포되는 무분별한 자살정보들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는 자살사이트가 설치되기도 하고 자살희망자를 모집하기도 한다. 자살을 미화하는 보도도 있다. 자살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거나, 자살자에 대한 동정 등이 그런 예들이다. 유명인을 모방하는 자살은 대개 관련보도가 집중되는 10일 이내에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는 유명인 자살의 모방과 매스컴의 영향이 높은 상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명인의 말과 행동은 대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유명인은 미디어 자체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장국영의 자살 이후 이를 따라하는 모방자살이 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최진실 자살 이후 모방자살이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미디어는 사건을 좆기 때문에 유명인의 자살은 미디어로서는 큰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WHO는 자살보도 준칙을 마련하고 있다. 선정적인 보도, 자살을 정당화하는 보도, 사진의 사용, 자극적인 헤드라인, 유명인 자살보도 등에 대한 자제와 자살자 주변의 친구와 가족에 대한 배려등을 담고 있다. 우리의 언론은 이런 준칙들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인가?

한편 미디어는 자살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자살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이를 파파게노 효과라고 부른다. 이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가 사랑하는 연인 파파게나가 사라지자 자살을 시도하지만 세 요정이 나타나 노래를 들려주자 마음을 돌린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용어다 .

발자크는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소설에서 자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인간은 자신을 경멸하는 날, 자신이 경멸당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날 , 삶의 현실이 그가 바라는 바와 일치하지 않을 때 자살을 하고 그의 미덕이나 명성이 없어진 상태로 있기를 원치 않는 그 사회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뭐라고 말하든지 무신론자들 중에는 (기독교는 자살에서 예외가 되어야 한다) 비겁한 사람들만이 불명예스러운 삶을 수락한다. 자살에는 세 종류가 있다. 먼저 오랜 질병의 마지막 발작에 지나지 않는 그래서 분명히 병리학에 속하는 자살이 있다. 다음으로는 절망에 의한 자살이 있고 끝으로 추론의 결과 도달하는 자살이 있다. (잃어버린 환상 704).

발자크는 자살을 개인적인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인 연관성이 있는 행위로 보았다. 그는 자살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소외되는 데서 발생하는 이기적 자살, 오히려 사회에 강하게 통합되어 사회의 요구에 따라 자살하는 이타적 자살, 개인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 약화와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로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 등이다. 어떤 경우든 자살은 사회통합의 약화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IMF사태 이후 급격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살은 높아진다. 동반자살, 모방자살 등은 개인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대변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 사회는 분명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살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