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금융인' 김병효의 '품어야 산다'
'시 읽어주는 금융인' 김병효의 '품어야 산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6.27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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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
'개인적 품어주기'에서 '사회적 품어주기'로
김병효 시인의 '품어야 산다'(사진=
김병효 에세이집 '품어야 산다'(사진=사람과 나무사이)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전 세계에 밀어닥친 코로나19로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밀집, 밀폐, 밀접 등 ‘밀’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은 속속 노란 딱지를 받았고, 접촉, 접근 같은 어휘들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대로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 같은 용어가 권장되며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언뜻 보면 이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은 책이 나왔다. 김병효의 <품어야 산다>. 정부는 연일 (사회적/생활 속)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밀집된 공간을 두려워하며 서로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시점에 ‘품어야 산다’라니! (누군가를) 품는 행위는 접촉 중에서도 가장 밀도 있는 접촉이 아닌가!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물리적 접촉이 아닌 정서적 접촉이다. 이른바 ‘언택트’, 즉 비대면 사회에서 물리적으론 어쩔 수 없이 서로 거리를 두더라도 정서적으론 적극적으로 터치하고 소통하고 거리를 좁히며 온기를 만들어내야만 개인적으로든 사회적, 국가적으로든 이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소중한 공동체를 지켜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품어야 산다>는 어미닭이 둥근 알을 품듯 세상을 보듬는 책이다. 이웃을, 가족을, 작가 자신을 품는다. 닭이 알을 품는 행위보다 더 포근하고 따스한 행위가 있을까? 어미닭이 품어주지 않으면 병아리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생명을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품는 행위’는 생명이 탄생하는 출발점이며 그 자체로 가장 숭고한 일이다.”— 유재우(변호사)

<품어야 산다>는 ‘시를 사랑하는 금융인’ 김병효가 세상을 품고 보듬으며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써 내려간 26편의 가슴 따뜻한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많은 이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안겨주었던 첫 번째 에세이집 <봄날이었다>에 이어 2018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영남일보 칼럼 <경제와 세상> 코너에 연재한 글을 모아 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책이다.

저자의 글에는 언제나 따뜻한 시선과 온기, 그리고 사람의 향내가 진하게 스며 있다. 전작 <봄날이었다>에서 가족과 친지,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을 향했던 그 시선과 온기와 향내가 이번에는 이주민, 보호아동, 다문화가정 사람들, 장애인, 빈곤한 노인 등 사회적 이웃에게로 확장하고 진화하며 퍼져나간다.

책 뒤에는 본문에 인용된 27편의 시 전문을 실어 놓았다. 일종의 부록이자 독자에게 선사하는 ‘작은 시집’인 셈이다. 주옥같은 시들은 꽃가루를 대기에 퍼뜨리는 벌처럼, 꽃향기를 세상에 흩날리는 바람처럼 독자의 일상에 작지만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다.

지은이 김병효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마산중학교와 서울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한국 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우리은행 부행장을 거쳐 우리 아비바생명 대표이사, 우리프라이빗에퀴티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우리자산신탁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평생을 금융인으로 살아오면서도 시와 문학을 멀리한 적이 없었다. 주변 지인들은 그가 앉은 자리에서 수 십 편의 시를 줄줄이 암송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스트레스 강도가 유달리 높은 금융 분야에서 삶의 여유와 품격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는 문학의 역할이 컸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글로 쓰인 저자의 인생 자취가 명시들과 한데 어우러져 책의 풍격(風格)을 더해준다.

본문 속으로
-당시 사람들의 키가 그토록 작았을까.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 문을 왜 그렇게 낮게 만들었을까. 알레포의 방은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문틀에 머리를 부딪칠 수밖에 없다.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경솔함과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견지하려는 상인의 지혜가 담겨 있는 듯하다.

-판사는 이어서 그동안 잘 먹으며 편히 지내온 자신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벌금을 내겠다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냈다. 또 배고픈 이웃을 돌보지 않은 방청석의 주민들도 일부 책임이 있다며 각각 50센트씩 벌금을 물리고 돈을 걷었다. 방청객 누구도 항변하지 않고 판결에 따랐다. 그 자리에서 걷힌 돈은 벌금으로 쓰였고 남은 돈은 흐느끼는 노인의 손에 전해졌다.

그 판사는 몇 년 뒤 뉴욕시장으로 선출됐다. 뉴욕시장을 세 번 연임한 피오렐로 라과디아다. 그는 정파를 초월하여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는 뉴딜정책을 지지했고, 취임 첫날 라디오 연설에서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는 그 막강한 조직의 집요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켰다. 시민의 안전한 삶과 존엄성을 지켜낸 결과 뉴욕 시민들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뉴욕의 신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 지었다. 참된 공복(公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이 생전 처음 바깥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던 그 식당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추억 어린 음식점이 한두 군데쯤 있을 것이다. 입학이나 졸업식 날, 온 가족이 함께 찾아가 식사하던 음식점. 난생 처음 밖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있는 그 식당.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었던 추억 속 그 집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잘 있을까. 변치 않는 그 맛으로 여전히 우리를 반겨줄까.

-금융권은 미래 고객도 중요하지만 노년층의 금융서비스 권리를 찾아주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중략)...창구를 찾는 노년층을 위한 전담창구나 도우미를 배치하여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수익만 추구하기보다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과나무사이, 224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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