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는 공연기획하면 안됩니까?” - 임효정 ‘더무브’ 편집장께
“평론가는 공연기획하면 안됩니까?” - 임효정 ‘더무브’ 편집장께
  •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
  • 승인 2020.08.04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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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비평론가‘보다는 자질과 윤리의식의 문제
공연계 매체들의 광고행위에 대해서는 좀더 현실감있게 들여다보시길
시댄스 2020 포스터(사진=시댄스)
시댄스 2020 포스터(사진=시댄스)

[더프리뷰=서울]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 = 임효정 편집장님, 오랜만입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토마스 한 초청 강연회 때 만난 걸 제외하면 정말 오랫동안 못 뵈었네요. 여전히 왕성한 활동 펼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날 강연회가 끝난 후에 토마스를 따로 만나신 모양이지요? 그에게서 유럽에서는 평론가들이 축제나 행사를 하는 경우가 없다는 얘기도 들으셨구요? 글쎄, 제가 아는 유럽의 평론가들 중에서는 축제나 플랫폼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던데요(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려놓으신 글을 말미에 달아놓겠습니다).

문제는 그런 평론가들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몇 명이나 되느냐가 아니라 아마도 윤리의 문제겠지요. 편집장님이 페이스북 게시 글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평론가가 특정 예술가를 자신의 글을 통해 띄워놓고나서 자신이 운영하는 축제 무대에 세운다면 분명 지적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런 거북한 경우도 봤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우려가 있다 해서 평론가가 주도하는 모든 행사를 매도한다면 그것도 결코 옳은 일은 아닐 겁니다. 현장예술가나 예술교수들이 직접 조직하는 행사는 훨씬 더 많은데, 그들은 알게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없다고 보십니까? 물론 ‘글을 통한 영향력’에 국한한다면 평론가보다 덜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영항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즉 그건 직종의 문제가 아니라 각 개인의 도덕적 품질 수준의 문제라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저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를 시작한 1998년 이후 공연리뷰는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편집장님 말씀대로 축제감독과 평론가의 역할이 윤리적으로 상충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기도 하고(토마스가 예로 들었다는 프랑스 여성 비평가의 처신에 절대 공감합니다), 한편으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축제를 운영하는 일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너무도 힘든 상황에서 글까지 쓴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탓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제가 몸담고 있던 춤평론가 모임에서 탈퇴할 생각도 몇 차례 했지만 리뷰를 쓰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의 발언을 통해 평론가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현재까지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9 창무국제예술제 포스터(사진=창무국제예술제)
2019 창무국제예술제 포스터(사진=창무국제예술제)

편집장님은 평론가들이 하는 축제는 부당한 영향력 행사의 소지가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면서, 아울러 그들의 축제가 받은 공공지원금 액수도 친절하게 소개해 놓으셨던데, 그건 무슨 의도에서인지요? 설마 평론가들이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받아낸 금액이라는 말씀을 하시려 했던 건 아닐테고(잘 아시겠지만 요즘 평론가들 힘 없습니다!)... 궁금하네요. 참고로 제 경우를 설명해 드리지요. 시댄스는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에서 3억4천만원을 받았었는데 이듬해인 2019년에는 ‘매우 석연치 않은 심사과정’을 거쳐 2억원으로 확(42%) 줄었고, 2020년 지역대표예술축제에 대한 지원이 아르코에서 서울시로 이관된 뒤에도 같은 금액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아마도 서울시로서는 처음 하는 심사라서 전년도 액수를 기준으로 큰 변동 없이 배정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2019년에 저는 아르코에 심사경위를 밝히라는 요구와 함께 당시 심사위원진 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아르코 옴부즈만위원회는 겨우 심사위원 가운데 1명이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같다는 식으로 제 주장을 애매하게 부분 시인하는 데 그쳤습니다(아르코 심사 제도와 관행의 어불성설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아울러 작년과 올해에 받은 2억원이란 액수는 시댄스를 한 번 치르는 데 소요되는 예산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네요. 물론 몇 해 전부터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도 받고 있어 상황이 좀 나아졌지만 이 둘을 합쳐도 전체 행사비용의 절반 정도를 충당할 뿐입니다. 유사한 성격, 유사한 규모의 다른 축제들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액수라는 걸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기왕에 지원금 액수를 밝히시려면 그런 이야기들도 함께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편집장님과 저 사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편집장님이 어렵게 시댄스를 꾸려가는 저에게 늘 안쓰러운 표정으로 격려해주시고 언젠가는 <더 무브>에 무료광고를 실어주신 일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유료광고 게재를 요청해 오셨을 때 응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늘 미안하고 민망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수 억 원 규모의 행사를 하면서 그까짓 광고비 몇 푼 가지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댄스의 재정형편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제가 일 욕심이 많은 탓에 무리하게 행사 규모를 크게 잡다보니 주변에서는 저희가 엄청난 액수의 지원금을 받는 줄 알더라구요.

또 한 가지, 평론가가 아닌 분들이 만드는 축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지원금 액수를 밝혀놓으셨던데 그건 무슨 의중이신지요? 창무국제예술제(예술감독 김매자)나 춘천아트페스티벌(예술감독 장승헌)은 평론가가 하는 축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올리신 글 전체의 문맥을 요모조모 살펴보아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참고로, 창무국제예술제는 위에서 말씀드린 2019년의 ‘매우 석연치 않은 심사과정’을 통해 지원금이 전액 삭감됐다가 올해 겨우 조금 되살아난 경우이고, 춘천아트페스티벌은 모든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재능기부로 출범, 해를 거듭하면서 그 성과를 인정받아 나중에 조금씩 지원금을 받기 시작한 경우입니다.

평론가 모임이 운영하는 매체들의 광고 유치 노력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고 계신 것같은데,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요즘같은 시대에 광고 유치를 위한 노력을 하지 말라는 건 자진 폐간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도 과거 오랜 기간 기자생활과 평론가 활동을 하면서 광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1980년대 전두환 독재 시절에는 동료 기자들과 모이면 으레 나오는 얘기가 권력의 압박과 자본(광고주)의 압력 중 어느 편이 그나마 언론에 덜 해로운가 하는 서글픈 논쟁이었고, 선후배 평론가들과는 무용가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얘기였습니다.

<춤웹진>(한국춤비평가협회 발행)이나 <댄스포스트 코리아>(한국춤문화자료원 발행) 같은 매체들은 공공 지원금이나 광고가 아니라면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까요? <춤웹진>의 경우 모 정부 산하기관이 특정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광고를 끊은 일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다보니 공연광고도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요즘 모두들 비슷한 형편이겠지요.

편집장님도 광고 유치를 위해 열심히 다니시는 걸로 아는데, 평론가 출신이 아니시니까(사실 편집장은 넓은 의미에서 이미 평론가이기도 합니다. 개별적 공연평은 쓰지 않는다 해도 잡지를 편집한다는 행위가 적어도 ‘평론가적 기능’을 띤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광고를 받아도 괜찮고 평론가들이 운영하는 매체는 광고를 받으면 안된다는 말씀인가요? (공식적으로) 평론가 출신이 아닌 편집장님은 <더 무브>에 광고를 게재할 때, 전혀 광고주의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존경 받으실만한 일이지만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편집장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평론가냐 비평론가냐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와 광고주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영향력과 그를 둘러싼 윤리의 문제로 봐야 할 것입니다. 즉 평론가 출신 축제감독이나 편집장이 평론가라는 지위를 이용해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다면 마땅히 비판해야겠지만 축제나 행사, 매체를 운영한다는 사실만으로 문제 삼는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2020 춘천아트페스티벌 포스터(사진=춘천아트페스티벌)
2020 춘천아트페스티벌 포스터(사진=춘천아트페스티벌)

끝으로, 평론가들이 축제감독을 하거나 행사연출을 하는 사례들에 대해 ‘이러한 국내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라고 하셨는데, 아이구 편집장님, 그건 아닙니다. 유럽,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 공연계에서,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종종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요구사항과 여건이 다른데 유럽을 절대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토마스 한도 편집장님께 말했다듯이, 유럽의 평론가들이 축제에 대한 자문, 프로그램 북에 글쓰기, 무용단을 위한 드라마투르기 등등 각종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축제의 직접적 운영은 아니지만 이미 일종의 영향력(좋든 나쁘든) 행사 아닌가요?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이 모든 것은 각 개인의 능력과 자질, 윤리의식에 달린 일이지 직종에 따라 가부를 판정할 일은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뜻밖의 일로 편집장님께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게 됐네요. 다음 달에도 알차고 멋진 <더 무브> 기대합니다.

2020년 8월 4일 이종호 드림

 

(아래 글은 임효정 편집장이 지난 7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입니다)

한국의 춤 비평가들과 저널들은 사업을 동시에?

유럽에서는 없는, 놀라운 일!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근 유럽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 현대무용 비평가 토마스 한이 한국춤비평가협회 초청으로 내한해 강연을 한 이후, 무브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무용 비평가 그룹과 무용 관련 일부 저널들이 직접 사업을 주최하는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유럽과 해외에서도 사례가 있는지? 비평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래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경탄할만한~ 놀라운 일"이라고요 ~!

"유럽에서는 비평가가 동시에 페스티벌의 주최자나 예술감독이 된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엔 이론과 실제에서 너무 많은 모순이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요.

우리 무용계의 비평가 그룹, 현재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호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은 시댄스(서울세계무용축제)를 23회째 운영해오고 있죠. 올해도 서울대표공연예술제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축제 지원 예산 2억을 지원받아 진행합니다.

또, 무용지 <댄스포럼>도 23회째 '크리틱스초이스댄스페스티벌'을 직접 주최하며, 올해는 5천 5백만원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춤웹진 전 편집장을 지내고 현재는 한국춤비평가협회 운영위원으로 있는 장광열 예술감독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17회째로 진행하며 올해는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선정으로 3천 3백만원의 지원금으로 진행했습니다.

또, 사단법인 텐스푼의 장승헌 감독(기획자)은 '춘천아트페스티벌'의 운영위원(프로그래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용 웹진 <댄스포스트 코리아>를 발행하는 한국춤문화자료원(이사장 최해리)은 최근 웹진을 리뉴얼 하며 광고를 안내하고 있는데,....

비평가그룹이 운영하는 <춤웹진>은 이미 국.공립기관을 비롯한 민간 무용단체들의 광고를 유치하고 있는 터이고....

또, 비평의 영역은 아니지만, 김매자 원로 무용인이 창단한 창무회에서 발단된 창무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 주최로 26회째 창무국제공연예술제가 올해는 서울문화재단 지원금 3천만원을 받아서 진행되는 등.....

이러저러한 무용계 비평가 그룹과 춤 비평지 들이 제각각 사업(페스티벌)을 운영하는 것 또한, 비평가의 경제적 위치와 존립 등 현실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는 한편으론 "비평의 올바른 자리매김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양면적인 측면에서.. 의문이 남습니다.

더우기 최근에 무용계 뿐만 아니라 국악계의 저명한 평론가도 직접 작품을 연출하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니, 이 또한 공정한 비평의 영역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내에서만 가능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지?

"경탄할만한 일"로 지속되는 것이 우리 예술계의 비평의 지평과 미래적 방향으로 괜찮은 것인지?,,,,

이해의 충돌, 신뢰성의 혐의,
비평의 역할과 임무,
토마스 한은 말합니다.

"유럽에서는 비평가가 동시에 페스티벌의 주최자나 예술감독이 된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엔 이론과 실제에서 너무 많은 모순이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요.

비평의 자리가 점점 좁아져 가고 있고,, 유럽에서도 일간지의 비평란이 사라지고 전문지로 이동해가고 있는 오늘날,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비평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Fabian Thomé 'Entre Sombras'
파비앙 토메(Fabian Thomé)의 '그림자 사이(Entre Sombras)'(사진=창무국제예술제)

[interview] 춤, 세상의 변화와 어떻게 만나는가?_토마스 한(Thomas Hahn)
http://www.ithemo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0
#비평 #비평가 #페스티벌 #비평의가치와역할 #비평가의임무 #신뢰성 #시댄스 #한국춤비평가협회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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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한국의 춤 비평가들과 저널은 직접 페스티벌을 주관하며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해외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있는가요?

두 가지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룬다면 경탄할 일입니다. 유럽에서는 비평가가 동시에 페스티벌의 주최자나 예술감독이 된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엔 이론과 실제에서 너무 많은 모순이 있지 않겠습니까.

상상해 보세요, 어느 비평가가 한 특정 단체와 작품을 호평하고 나중에 이 작품을 그의 페스티벌에 초대한다고. 그렇게 되면 그 비평가는 당장 그의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비평을 썼거나 아니면 다른 식으로 이해의 충돌 때문이라는 혐의를 받을 겁니다. 비평가로서의 그의 신뢰성이 무너지게 되고요.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례가 하나 있는데요. 오늘날 파리에서 페스티벌을 (직접 창립하고) 주최하는 여성 비평가가 있는데, 얼마 전에 이미 프랑스에서 비평 게재를 중단했더라고요. 어쨌든 앞서 언급한 의구심은 그대로 둔다 해도, 페스티벌 지도부를 새로 구성할 때 경쟁자들 가운데서 생존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미 극장이나 페스티벌, 다른 조직체를 이끈 경험 있고 그래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는 인물들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새로운 페스티벌을 독자적으로 창립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엄청난 개인적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기사를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무용 전문기자들이 – 비평가들과의 형식적 구분이 프랑스에는 없습니다 – 페스티벌의 예술고문으로서 활동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며, 몇몇 경우에는 실제로 그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프로그램북에 글을 쓰고 공연 라인업의 콘셉 개발에 기여합니다. 또한 드라마투르그로서 단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흥미진진하지요, 그리고 정치가들에게서 기금을 모금하는 것에 비하면 좌절감이 훨씬 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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