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면 아내에게도 충실해야 하오”
“성공하려면 아내에게도 충실해야 하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8.08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내 사랑 이야기
"지속적 사랑의 비결은 한결같음과 헌신"
엔니오 모리코네와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사진=youtube.com)
엔니오 모리코네와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사진=youtube.com)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유명인들이 장기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유명 연예인들의 경우는 그들의 바뀐 배우자들을 일일이 다 따라가기 어려운 때도 많다. 하지만 한 여자와 결혼해서 70년을 산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까?

이탈리아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한지 한 달이 흘렀지만 그에 대한 애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추모 연주회가 열리고 있는 것은 물론, 지난 달 17일 로마 시의회는 모리코네가 음악가로서 대부분의 활동을 했던 파르코 델라 무지카 음악당(Auditorium Parco della Musica)을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당(Auditorium Ennio Morricone)으로 개명하기까지 했다. 시의회는 이 개명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모리코네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마음을 깊이 적시는 서정적이고 경이로운 그의 멜로디를 떠오르게 한다. 그의 이러한 재능은 아주 단순하고도 확고한 가족의 사랑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다.

2차대전 중이던 소년시절, 밖에 폭탄이 떨어질 때 그는 어머니의 묵주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애착은 이렇게 시작된 것 같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만들려면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갈 플롯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는 신 앞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영원토록’이라고 약속하는 확신에 찬 시선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면서 결국 세간의 관심은 그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로 향한다. 추모 기간 모리코네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거명된 사람은 그의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Maria Travia)이다.

그들은 1956년에 결혼, 네 자녀를 두었고 70년간 모리코네는 그의 아내에게 깊이 헌신하고 충실했다. 오늘날 유명 연예인들에게 이는 각별한 선언과도 같다.

모리코네에게 그녀는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주인공의 행위를 받쳐주고 강조하는 기둥이듯이 평생의 동반자인 마리아는 엔니오에게 힘과 보살핌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사망하기 전 자신이 직접 쓴 부고에서 그는 그녀를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으로 설명하면서 “그녀에게 나는 매일 새로운 사랑을 느꼈으며 그녀를 남기고 떠나기가 정말 싫다. 이제 가장 가슴 아픈 작별을 고한다.”라고 적었다.

아내이자 진정한 동반자였던 마리아
그들의 부부로서의 삶을 완벽히 나타내 주는 일화가 있다. 모리코네는 영화음악 외에 대중가요도 썼는데 1962년 가수 미나(Mina)가 부른 <Se telefonando>가 크게 인기를 끈다. 모리코네는 아내와 함께 가스비를 내려고 줄을 서 있다가 이 곡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는 모리코네 자신이 한 책에서 확인해 준 사실이다. 마리아는 유명인의 그늘에 가려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요란하게 과시할 필요도 없는, 늘 곁에 있는 그의 아내였다.

좋은 동반자와 있을 때 평범한 것을 넘어서는 직관이 떠오르는 일상의 순간들이 있다. 영원한 것은 우리가 가스비를 낼 때도 나타난다. 누군가,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에게 오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도 나타나는 것이다.

모리코네가 2007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받았을 때 그의 수상소감은 단순했다. “이 오스카를 나를 사랑하는 나의 아내 마리아에게 바칩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녀를 사랑합니다. 이 상은 또한 그녀의 것입니다.” 2016년 영화 <헤이트풀8>의 음악으로 마침내 오스카상을 받았을 때도 역시 아내를 언급한다. “이 상을 나의 아내이자 멘토인 마리아 트라비아에게 바칩니다”

마리아 트라비아, 2007년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사진=youtube.com)
마리아 트라비아, 2007년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사진=youtube.com)

이는 어떤 수사도 없는 단순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는 가깝지도, 친밀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 앞에 자신들의 사랑을 과시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자신들의 사생활을 카메라 앞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과묵함 속에는 가족을 돌보고 자신이 음악을 만들도록 도와주며 그의 재능을 꽃피워 준 한 여인에 대한 깊은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마리아는 그의 뮤즈였다.

마리아는 <시네마 천국>의 노래들을 작사하기도 했고 남편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사운드트랙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모리코네는 그녀에 관해 무덤덤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한 여자와 70년을 살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분명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질문은 내 아내한테 해야 할 거요. 그녀는 나를 아주 잘 받아줬소.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과 사는 건 쉽지 않소. 군인처럼 엄격한 스케줄에 따라, 때로 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도 있었소. 나는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아주 보채는 성격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을 거요. 성공하려면 분명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작업과 경험,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무엇보다 성실함(loyalty)이 있어야 하오. 아내에겐 물론 예술에도 말이요. 나는 늘 최선을 다한다는 규칙을 세웠소. 늘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요”

병실 안에도 천국이
모리코네의 마지막 순간에는 온 가족이 곁을 지켰으며 모리코네는 끝까지 맑은 정신을 유지했고 아내에게 말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이 병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신비롭고도 감동적이다. 그들은 50년대에 처음 만났다. 마리아는 모리코네 누이의 친구였다. 그는 그녀를 처음부터 좋아했지만 그러나 그들을 정말로 한데 묶어준 것은 그녀가 당한 자동차 사고였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심한 자동차 사고를 당해서 아버지와 함께 입원했고 목부터 허리까지 깁스를 하고 있었다. 모리코네는 그녀 곁을 지키면서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 “그녀는 매우 아파했고 난 그녀 곁에 머물렀다. 그녀는 날마다, 조금씩 나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라고 모리코네는 말했다.

사랑과 예술의 비밀은 '한결같음'
한 번에 음표 하나씩, 음악을 쓰듯 그는 사랑을 써 내려갔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와 같은 러브 스토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현실에 굴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현대인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단어, ‘헌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리코네와 마리아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것은 사랑의 열정뿐 아니라 서로에게 충실한 연인이다.

사랑은 늘 함께 하는 것...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어찌 보면 서로 아프고 연약한 두 연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손을 잡고 인생을 나아가려는 사랑의 다짐을 한 것이다. 많은 웹사이트들이 모리코네가 말한 사랑의 정의를 인용하고 있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는 한결같음(constancy)이 가장 중요하다. 첫 만남에 사랑이나 초자연적 직감같은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관됨, 진지함, 지속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의 마리아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는 오랜 지속이라는 헌신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현대와 같이 무슨 일이든 단거리 질주로 끝낸 후에 똑같은 단거리 질주를 찾아다니는 시대에는 의미 있는 모범이 될 것 같다.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너무도 빨리 코스를 바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