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우리가 김부장이다”
[공연리뷰] “우리가 김부장이다”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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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김부장의 죽음>
소극장 창작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공연모습(제공=예술의전당)
창작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공연장면(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1965년생인 김부장은 출세를 위해 달려왔다. 회사 일에만 전념하며 20여 년을 살았더니 아내와 자녀들은 그를 소외시키고 그는 현금인출기 신세가 되었다. 지방에 있다가 상무 라인을 타고 서울 본사로 왔고, 한강변에 근사한 아파트를 마련해서 식구들에게 우쭐한 것도 잠시, 몸에 이상이 생겨 투병하다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던 회사 동료들은 곧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할까 관심을 기울이고, 가족 역시 위로금이나 회사 차원의 보상 등 현실적인 문제로 슬퍼할 겨를이 없다.

지난 4월 6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개막작 <김부장의 죽음> 6일, 10일, 15일에 공연되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원작으로 신영선이 대본을 썼고 오예승이 작곡한 작품으로, 지난해 창작산실 공모 당선작이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김부장이 있다. 아니, 내가 바로 김부장이기도 하다.

김부장은 젊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 광장에서 성공을 다짐하고, 끝까지 오를 것 같은 마음에 앞만 보고 달려왔다. 책임을 져야 할 말은 가능한 한 피하며 몸을 사렸고, 상무에게 아부도 해가며, 회식과 골프에 참여하느라 가족과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쓰러진 김부장은, 치료에 대한 확답은 피하면서 기계적으로 희망적인 소리만 하는, 그러면서 동의서에 서명만 재촉하는 의사들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본다.

소극장 창작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공연모습(제공=예술의전당)
<김부장의 죽음> 공연장면(사진제공=예술의전당)

“나도 저랬던가, 거래처 사장들에게. 아무 내용도 없는 얘기를 아무도 탓할 수 없도록 친절하고 무심하게 늘어놓았던가.”

윤부장은 김부장의 친구이자 동료다. 김부장이 죽어가는 것을 안쓰러워하지만, 김부장의 젊을 때 꿈을 공유하며 추억을 더듬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와 나의 인생은 다를 거야’라고 선을 긋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오래된 말은 이럴 때 떠오른다.

김부장은 자신이 거짓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고 후회하다가도, 또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스스로 위안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갈 것 같다.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다가도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김부장. 어느 순간 답을 찾은 듯하다가도 다시 답이 아닌 것 같아 괴로운, 고민의 미로를 헤맨다. 작가는 죽음을 통증의 소멸로 표현하는데, 이때 김부장은 가까스로 죽음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리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

작가는 세이킬로스의 비문으로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김부장이 깨달은 진리는 죽음에 묻혀 결국 현실의 가족과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은 이들은 생전의 김부장과 똑같이 치열하게 어리석은 삶을 살아간다.

​소극장 창작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공연모습(제공=예술의전당)​
​<김부장의 죽음> 공연장면(사진제공=예술의전당)​

아리아라고 할 만한 노래가 많지는 않았다. 연극적 느낌이 강한 무대였다. 그러나 작곡자 오예승의 음악은 난해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이지도 않은, 그 경계를 절묘하게 지켜가면서 70분을 이어나갔다. 김부장과 아내의 첫만남 장면의 듀엣이라든가, 의사들의 중창, 그리고 간병인의 노래 등 주목할 만한 노래들이 있었다.

바리톤 임희성은 김부장 역할에 온전히 스며들었다. 자신만만한 김부장이 아주 잘 어울리는 목소리인데다, 당당했던 김부장이 죽음 앞에서 스러져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과거를 성찰하며, 가족을 원망하면서도 끝내 가족을 위하는 가장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소극장 창작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공연모습(제공=예술의전당)​
<김부장의 죽음> 공연장면(사진제공=예술의전당)​

아내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향은과 윤부장 역의 테너 석정엽, 간병인 역의 소프라노 오예은 역시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작품에 눈여겨볼만한 장치들로는 목수와 나무. 목수는 창조자 혹은 생명의 관리자를 의미하고, 나무는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인공의 또다른 자아로 노숙자가 등장한다. 김부장과 윤부장, 노숙자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윤부장은 김부장의 유사인물, 그리고 노숙자는 김부장의 절망과 패배감을 담은 자아였기 때문이다. 또 무대 시작과 끝으로 한 어린이가 등장하는데, 어린이는 삶과 죽음 앞에서는 여전히 미성숙한 인간들을 의미하고 있다.

소극장 창작오페라 '김부장의 죽음' 공연모습(제공=예술의전당)​
<김부장의 죽음> 공연장면(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연출자 정선영은 한국적 정서의 오페라를 많이 연출해왔다. 공감과 소통을 강조하고,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의 기억으로 감동을 공유하고자 시도해왔다. 김부장 역시 우리 주위의 그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캐릭터로 그려냈다. 작품에 부제를 붙이자면 ‘삶과 죽음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고.

원작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탄탄한 대본과 음악, 연출자의 고민이 합쳐져 묵직한 여운을 남긴 무대였다.  

'김부장의 죽음' 공연모습(제공=예술의전당)
<김부장의 죽음> 커튼콜(사진제공=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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