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지난 여름 하이데거 별장 여행기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지난 여름 하이데거 별장 여행기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1.05.04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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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경이로운 공장 캠퍼스
한 예술애호가의 헌신으로 탄생한 바이엘러 뮤지엄
하이데거 별장으로 가는 길(사진=김윤정)
하이데거 별장으로 가는 길(사진=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나는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안막 커튼을 걷으면서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록다운 현상 속에 생긴 그냥 새로운 습관 중 하나다. 지금처럼 멀리 어딘가를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다지 하루 일과가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하루의 날씨를 점치게 되고 날씨에 따라 그날을 어떻게 보낼지 대충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서는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네덜란드, 두 시간이면 벨기에, 두 시간 반이면 룩셈부르크, 세 시간이면 프랑스에 갈 수 있다. 독일은 이 외에도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 폴란드, 덴마크까지 아홉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역마살을 타고난 나로서는 내 천성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이 독일 생활의 큰 즐거움이다. 다행히도 함께 살고 있는 독일 파트너 역시 워낙 호기심이 많고 한 군데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어서 우리는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닌다.

틈만 나면 독일을 벗어나 자유롭게 다니던 우리는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발이 묶였고 여행이 가능한 독일 안으로 더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올해는 독일 내 여행도 불가하다. 프랑스처럼 외출 거리가 제한되거나 외출 금지시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여행의 목적으로 호텔에 묵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만 해도 독일은 유럽에서 코로나 상태가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번져갈 즈음에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은 앞으로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가 미국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고 독일도 처음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심각한 상황을 보도하면서 정작 독일이 이렇게 나빠질 거라고 예상치 못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검은숲으로 가는 중 들른 함바허성 오르는 길에서(사진=김윤정)
검은 숲으로 가는 중 들른 함바허성 오르는 길에서(사진=김윤정)

우리는 늘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그저 현재에 국한되어 현상을 말할 수 있는 인간일 뿐이다. 아무튼 코로나 상황이 지금 같지 않던 작년 여름, 우리는 그나마 가장 안전한 독일 안에서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검은 숲(Schwarzwald, 슈바르츠발트)이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였다. 우선 하이데거의 별장이 있는 토트나우, 그리고 비트라 가구박물관이 있는 바일 암 라인, 그리고 거기서 국경이 붙어 있는 스위스 바젤의 에드워드 호퍼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는 바이엘러 뮤지엄을 돌아보기로 했다. 단지 지리적으로 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전혀 연계성이 없어 보이는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 하이데거, 에드워드 호퍼라니!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떠났다. 그야말로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듯한 여행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사실 우리들 인생도 꼭 개연성 있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듯이 말이다.

하이데거 별장이 있는 토트나우

하이데거가 머물며 사유하고 글을 쓰던 별장이 있는 토트나우(Todtnau)는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되는 검은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라고 불리는 이 숲은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인 라인강을 따라 가로 60km, 세로 200km의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같은 나무들이 들어선 숲이다. 거의 햇살이 들어올 틈도 없이 거대한 침엽수들이 빽빽히 들어찬 숲길을 달리며 왜 검은 숲이라 이름 지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중간중간 아름다운 호반을 지날 때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깊은 숲이지만 벌목 차량이 언제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놓여진 길들은 운전하기에 너무 좋았다.

검은 숲이 보이는 토트나우 호텔에서(사진=김윤정)
검은 숲이 보이는 토트나우 호텔에서(사진=김윤정)

드디어 해발 1천m에 있는 작은 마을 토트나우의 숙소에 도착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창문마다 버베나 꽃들이 피어 있고 수영장이 딸린 호텔이 있다니 신기했다. 우리 방은 한 칸 지하로 내려가는 듯 싶더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탁 트인 마당이 있고 구불구불 대자연이 멀리까지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되면 쏟아질 듯한 하늘의 별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자연 속에 안겨 있는 듯 안락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호텔 저녁을 먹고 해가 지는 작은 마을 주변을 가볍게 돌아봤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맑은 저녁 공기를 마시며 굽이굽이 보이는 언덕 사이로 난 길들을 걸었다. 아스라히 지는 햇살이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는 풍경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극적인 평화가 느껴졌다.

하이데거 산책길에 놓인 거대한 전망대의자(사진=김윤정)
하이데거 산책길에 놓인 거대한 전망대 의자(사진=김윤정)

다음 날 우리는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아침을 먹고 본격적으로 걸을 준비를 하고 지도를 들고 나섰다. 차도가 없는 산길을 걸어서 걸어서 하이데거 산책로로 진입하는 순간 설레이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공기는 그야말로 숨을 쉬는 매 순간순간 “아 산소의 맛이 이런 거로군“ 하고 느껴질 정도로 특별했고, 꽤 높은 지역이므로 아래로 굽이굽이 보이는 작은 마을들과 이름 모를 들꽂들이 피어 있는 산책로는 어찌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냥 숲길이었다. 쨍쨍히 내려쬐는 햇살 속에 생각보다 꽤나 멀고 깊숙히 걸어들어가니 하이데거 별장이 멀리 보이는 지점에서 더 이상은 통행이 금지되는 사유지라고 쓰여 있었다. 그 작은 오두막 같은 집이 바로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를 오가며 머물면서 산책하고 사유하면서 글을 쓰던 곳이었다.

하이데거의 집은 후손들이 관리 중이며 관광지가 아니어서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었고 하이데거가 걸어다니던 산책길을 걸어 보자고 온 여행이었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별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검은숲을 뒤로하고 멀리 보이는 하이데거 별장(사진=김윤정)
검은 숲을 뒤로하고 멀리 보이는 하이데거 별장(사진=김윤정)

유년기의 질문들과 실존주의

잠시 여기서 내가 이해한 하이데거 이야기를 감히 해보려 한다. 단순하고 어줍지 않은 나의 이해가 용서되길 미리 바라면서 말이다.

나의 유년 시절은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어떤 언어적 사고나 개념도 머릿속에 없었지만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불합리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품게 만들었다. 이십대까지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과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로 은밀하게 정신적인 방황(?)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사회적 성공과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공부를 하고 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들로 가득한 교육을 받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며 우리들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나에게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만났다. 연극을 하던 동생을 통해 알게 된 카프카, 카뮈, 싸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니체를 만나면서 또다른 관점의 세상을 보게 되었고 철학은 그저 우리들 현실과는 무관한 관념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들 삶에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실존주의 작가들이 나에게 던져준 의문의 실마리를 풀게 해 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생은 원래 부조리하고 의미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이데거 길' 표지판(사진=김윤정)
'하이데거 길' 표지판(사진=김윤정)

실존주의 철학자, 문학가들의 사상에 근간이 되어주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보면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라고 한다. 인간은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이 그저 세계로 던져진 존재다. ‘내던져짐(Geworfenheit)’에는 거룩한 신의 섭리도 정해진 운명도 없이 오직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만 맡겨진 자리, 오로지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밝혀지는 자리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으로 공허 속에 놓이기도 하고 불안 또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실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세상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기획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 것인가, 세상 사람으로 살 것인가? 실존할 것인가, 전락할 것인가? 본래적 삶을 살 것인가, 비본래적 삶을 살 것인가? 하이데거는 그런 질문들을 통찰하며 많은 저서에서 왜 인간은 불안하며 고독한가에 관해 말한다. 사실 하이데거는 독일 사람들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일 철학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하이데거의 사상들을 보면 동양철학의 깊은 이해와 사유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시 독일인들에게 그의 철학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독일어로 쓰여 있지만 독일인들의 사고에는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동양철학을 가장 철저하게 사유하고 소화한 20세기 사상가로서, ‘서양의 노자’로도 불릴 만큼 그의 심층부에서는 동양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삶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지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이데거는 그것이 다름아닌 도에 내재하는 길의 성격이라고 했다.

무지개가 뜬 라인폭포(사진=김윤정)
무지개가 뜬 라인폭포(사진=김윤정)

또한 ”과학은 생각하지 않는다(Wissenschaft denk nicht)“라는 명제로 하이데거는 기술이 동서양 구별 없이 인간을 점점 더 지구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고속 문명 발달의 시기에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서양철학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구와 사유는 사실 신에게서 인간을 따로 떼어놓고 연구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라는 개념은 진정한 인간의 탐구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전에는 독일의 많은 철학가, 사상가들이 군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철학과 문학의 꽂을 피우게 되었고 군주나 왕은 신이 내린 존재이므로 (그렇게 믿었으므로) 신을 부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이로운 비트라 공장의 건축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비트라 뮤지엄(Vitra Museum)이 있는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으로 가는 길에 라인강의 보석이라 불리는 스위스의 작은 중세 마을 슈타인 암 라인(Stein am Rhein)에 들르기로 했다. 11세기에 지어져 14세기에 증축된, 그러니까 지어진 지 천년이 되는 세인트조지 수도원을 들러 라인폭포까지 둘러보았다. 콘스탄츠(Konstanz) 호수가 흘러들어가는 라인강, 중세시대 그대로 유지되는 목조 가옥들을 끼고 흐르는 라인강이 독일에서 보던 라인강하고는 사뭇 다른 그림같은 정경이었다. 수심도 얕고 물도 깨끗해서 유유자적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으며, 색색깔로 예쁘게 꾸며진 옛날식 보트를 타고 와인을 마시며 마치 중세의 남작들처럼 여유롭게 세일링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심지어 라인강 줄기에서 유일하게 다이빙이 허락된다는 목조 다리 위에서는 아이들이 강가로 신나게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물속으로 잠시 들어가 부드럽고 따뜻한 물결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리고 라인강에도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스위스 쉬타인 암라인의 세인트조지 수도원(사진=김윤정)
스위스 슈타인 암 라인의 세인트 조지 수도원(사진=김윤정)

우리는 밤늦은 시간 바일 암 라인에 도착했다. 독일은 여름이면 밤 열시가 되어도 환해서 하루 해가 꽤나 길다. 그래서 특히나 자동차로 여행 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돌아볼 비트라 캠퍼스 가까이에 있는 아주 모던한 디자인 호텔에 며칠 묵기로 했다. 호텔 내부는 전부 비트라 디자인의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다음날 비트라 캠퍼스를 돌아보는 데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전시와 스케일에 놀랐다.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인 프랑크 게리, 안도 타다오, 자하 하디드, 알바로 시자, 에르조그 & 드 뫼롱(자크 에르조그 Jacgues Herzog와 피에르 드뫼롱 Pierre de Meuron), 렌초 피아노의 건축물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 건축의 비트라 하우스(사진=김윤정)
에르조그 & 드 뫼롱 건축의 비트라 하우스(사진=김윤정)

더구나 산업가구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중요한 건축물로 꼽히는 이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이 프랑크 게리가 유럽에서 설계한 최초의 건축물이라고 하니 이 가구회사의 재력과 안목이 대단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이런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큰 캠퍼스에 퍼져 있는 비트라 공장과 전시관 등의 건축물들이 마치 거대한 예술 조각품들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가구 디자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1천800여 점의 컬렉션은 나 같은 가구 문외한조차도 단박에 빠져들게 했다.

오십년 이상된 비트라의 모던한 의자들(사진=김윤정)
오십년 이상된 비트라의 모던한 의자들(사진=김윤정)

워낙 건축물과 디자인을 좋아하는 나의 파트너 베안트의 설명을 들어보니 비트라 가구는 전속 디자이너 없이 전설적인 론 아라드, 필립 스탁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디자이너들의 개성을 살려 비트라 가치를 높이는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가구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구 지속성에 가치를 둔다고 한다. 비트라가 그렇게 출시한 500여개의 가구들 중에 다수가 미국의 모마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영구 소장품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특별하게 흥미로웠던 발견은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는 자크 타티가 감독하고 직접 출연한 <나의 아저씨 Mon oncle>라는 영화에 나오는 초현실주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실제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이었다. 1958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지금 봐도 모던한 최신식 영화 세트들이 한몫을 하는 영화로, 물질만능 시대를 풍자하는 무성영화로 몇 번이나 재미있게 봤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거대한 비트라 캠퍼스를 돌면서 참으로 문화충격적인 것은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도 않는 가구공장과 물류센터를 세계적인 명건축가에게 의뢰하고 지은 경영자의 마인드가 대단하다는 사실이었다.

캠퍼스 중간에 쉬어갈수 있는 재미있는 소파(사진=김윤정)
캠퍼스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재미있는 소파(사진=김윤정)

바이엘러 뮤지엄의 에드워드 호퍼

다음 날 우리는 호텔에서 몇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뮤지엄(Beyeler Foundation Museum)으로 향했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30도가 넘는 꽤나 더운 날씨였기에 자동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사실 나는 내심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에 간밤에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 인상주의로 평가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평범한 듯하지만 그 신비한 고독 속에서 교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늘 포스터나 사진으로만 보던 호퍼의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이 뮤지엄은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라는 한 예술애호가의 열정으로 지어진 사립 미술관이다. 바이엘러가 소장했던 피카소, 모네, 칸딘스키, 자코메티, 클레 등의 작품들이 소장된 뮤지엄으로 바젤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한 예술애호가의 열정이 한 도시의 문화를 이끌게 한 것이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초 피아노의 설계로 지어진 바이엘러 뮤지엄은 전시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건축물을 최소화하는 그의 철학답게 정말 군더더기 없이 그림에 집중하게 만드는 뮤지엄이었다. 최대한 자연광을 살리기 위한 유리 천장과 통유리들은 밖에 아름다운 정원을 담고 있어 그 자체로 작품 같기도 했다. 그리고 뮤지엄 입구에서부터 전시관까지 조성된 공원도 깔끔하고 멋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뮤지엄 공원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보니 그조차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 '올리언스의 초상'(사진=김윤정)
에드워드 호퍼 <올리언스의 초상> (사진=김윤정)

우리는 아주 천천히 한 작품 한 작품 멀리서, 가까이서 감상을 했다. 그의 그림들에는 대도시에 던져진 고독한 현대인들이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연극의 한 장면 같은 그림들이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카페에서 거실에서 아름다운 집의 발코니에서 심지어 정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저릿하게 느껴져오는 고독이 묻어난다. 그림 속 인물 뿐만 아니라 친숙한 사물과 공간들조차 쓸쓸함으로 채우는 마력 같은 게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으로 의미를 담고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그림들이 감성을 건드린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쉬웠지만 그 여운은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케이프 코드의 아침(호퍼의그림속 여자는 모두 부인이다)
에드워드 호퍼 <케이프 코드의 아침> 호퍼의 그림 속 여자는 모두 그의 아내다 (사진=김윤정)

여행을 계획할 때는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던 여행이 마지막 날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면서 하이데거의 내던져진 존재들의 처연함이 묻어나는 그림들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다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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