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 ‘트리플 빌’ 공연
유니버설발레단 ‘트리플 빌’ 공연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1.06.1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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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트리플 빌 공연 포스터
UBC '트리플 빌' 공연 포스터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최근 <돈키호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장 문훈숙, 예술감독 유병헌)이 18일(금)부터 20일(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트리플 빌 Triple Bill>을 올린다. 제11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초청작인 <트리플 빌>은 UBC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UBC의 <트리플 빌>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 중에서도 분노(愤), 사랑(愛), 정(情)을 주제로, 색다른 매력의 네오클래식 발레로 구성됐다. 먼저 <파가니니 랩소디>는 미로와 같은 삶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고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번뇌와 희망을, <버터플라이 러버즈>는 중국 고전설화를 바탕으로 이루지 못한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코리아 이모션>은 한국인의 대표적 정서인 정을 아름다운 몸의 언어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이번 3부작의 핵심은 개별 작품들이 한 무대에서 서로 다른 뉘앙스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동시에 각각의 작품들이 하나의 시퀀스로 잘 연결될 수 있도록 구현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무대장치를 최소화하는 대신 영상과 조명 디자인의 차별화로 리듬감을 부여했다. 안무에서도 모든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관객들에게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표현적 접근에도 신경을 썼으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무대로 모아질 수 있도록 연출했다.

유병헌 예술감독은 “예술을 매개로 현대인의 억눌린 감정을 직관적으로 표출함으로써 공감과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愤: 파가니니 랩소디 Paganini Rhapsody

첫 번째 작품 <파가니니 랩소디>는 2003년에 발표됐던 작품이다. 주제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작품 속에 투영해 쓴 라흐마니노프의 협주적 작품으로, 안무가 역시 작곡가의 철학적 사색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이 작품은 ‘분노’라는 감정에 집중한다.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놓지 못하는 애틋한 몸부림을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생동감 있는 기교와 변주에 맞춰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역동적으로 그렸다.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표현력을 보완했고, 전체 구성을 더 풍부하게 변화시키는 등 안무와 연출에 변화를 주었다. 명랑하고 서정적인 느낌에서는 즐거운 과거에 대한 회상을, 절망과 분노와 희망까지 24번의 변주곡처럼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고난도 무브먼트가 쉼없이 이어진다.

'愤 : 파가니니 랩소디' 연습장면 (사진제공=UBC)
'愤 : 파가니니 랩소디' 연습장면 (사진제공=UBC)

愛: 버터플라이 러버즈 The Butterfly Lovers

영국에 <로미오와 줄리엣>, 한국에 <춘향전>이 있다면, 중국에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버터플라이 러버즈(일명 나비연인)>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비극적 죽음을 맞은 후에 나비로 환생해 사랑을 이어간다는 중국 4대 민간설화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춘향 이야기처럼 경극(京劇]), 월극(越劇), 천극(川劇) 등 중국의 전통극이나 드라마, 영화, 발레,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었다. 조선시대 때 <양산백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기록도 남아 있다.

유병헌은 이 슬픈 사랑 이야기를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절도 있는 안무로 연출, 아름다운 발레로 재탄생 시켰다. 이미 발레 <춘향>을 안무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클래식 발레 위에 중국적 색채가 잘 살아날 수 있도록 손끝의 쓰임과 시선 처리에 중점을 두었다. 마치 경극을 보는 듯한 절도 있는 군무는 서정적인 발레 동작과 대비되면서 더욱 역동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바이올린 협주곡 나비연인 Butterfly Lovers’ Violin Concerto>은 중국 작곡가 허잔하오(何豪)와 첸 강(陈钢)이 1959년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를 오케스트라로 작곡한 음악이다. 이 협주곡은 중국 정부의 제재로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에는 숨겨진 명곡으로 남아있었다. 이후 1970년대 말부터 알려지기 시작, 지금은 전 세계에서 자주 연주될 정도로 유명한 곡이 되었으며, 지난해에는 뉴욕필하모닉이 링컨센터 신년음악회에서 이 곡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이 협주곡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슬픈 연인의 감정을 오가는 일종의 가사 혹은 노래 역할을 맡는다. 애초에 솔로 바이올린은 여주인공 축영대를, 첼로는 연인 양산백을 상징해서 작곡했기 때문. 중국 고전설화를 모티브로 탄생한 만큼 멜로디 전반에 중국적 색채와 특색이 오케스트레이션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며 동양의 선율미를 풍긴다. 처음 듣는 사람도 친숙해질 수 있는 아름다운 곡이다.

'愛 : 버터플라이 러버즈' 연습장면(사진제공=UBC)
'愛 : 버터플라이 러버즈' 연습장면(사진제공=UBC)

情: 코리아 이모션 Korea Emotion

마지막 작품 <코리아 이모션>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유의 정서인 ‘정’을 발레로 담은 작품이다. 정은 인간의 가장 복잡한 감정 중 하나로, 미움이나 증오와 정반대인 듯하면서도 분리하기 어려운 양면성을 갖고 있는 감정이다.

유병헌 예술감독은 마지막 작품 <코리아 이모션>에 한국인 특유의 감정인 '정'을 투영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감수성이 뛰어나고 감정적으로 섬세하다. 그가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가장 깊이 느낀 점이 한국인은 미운 정, 고운 정 등 다양한 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저력도 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 대비를 한국인의 정을 모티브로 삼았고, 음악 역시 국악 크로스오버로 선택했다.

음악과 안무 모두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표현방식 만큼은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한류 드라마 OST의 대가인 지평권의 앨범 <다울 프로젝트>(2014)에서 아름다운 국악 크로스오버(미리내길, 달빛 영, 비연, 강원 정선아리랑 2014) 네 곡을 발췌 사용했으며, 발레에 한국 무용의 색채를 아름답게 녹여냈다. 먼저 '미리내길'은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반대로 '달빛 영'은 죽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그리움을 형상화했다. ‘비연’은 네 쌍의 남녀 무용수가 등장해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지치지 않는 인간의 기상과 의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곡 <강원 정선아리랑 2014>는 국악, 성악, 클래식과 발레가 함께 어우러지는 대향연으로 이번 공연에서 가슴 뭉클한 대미를 장식하도록 배치했다. 이날치 밴드 멤버인 국악인 권송희와 소프라노 신델라, 판소리 정주희가 피처링을 맡았다.

'情 : 코리아 이모션'을 연습중인 수석무용수 이동탁과 단원 마라 바로스. (사진제공=UBC)
'情 : 코리아 이모션'을 연습중인 수석무용수 이동탁과 단원 마라 바로스. (사진제공=UBC)

<트리플 빌>을 통해 안무가 유병헌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위로와 희망이다. 실제로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감정과 치유에 주목했다.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직관으로 마주함으로써 그 감정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불가항력의 재난 속에서도 인류는 희망을 찾아 나아가기 마련이니까요. 이것이 이번 작품의 안무 의도이기도 합니다.”

또 문훈숙 단장은 "올해가 한러수교 30주년, 내년은 한중수교 30주년입니다. 여러 정치외교 현안들로 국가 간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문화예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대표 예술단체로서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 장르간 융합과 하모니로 진일보된 예술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라고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문훈숙 단장은 “보고 듣기만 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번 공연에 많은 기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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