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좋아하는 만큼 보입니다” -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북리뷰] “좋아하는 만큼 보입니다” -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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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용의 아트내비게이션' 책 표지
'김찬용의 아트내비게이션' 책 표지 (사진제공=북21)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루브르에 가서 모나리자 앞에 서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숨결이 깃든 이 작품에 감동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두꺼운 방탄유리 안에 있는 이 작품을, 2m 이상 거리 밖에서 수많은 이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는 가운데 스쳐 지나가면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마틴 파의 <루브르의 모나리자>(2012)에서는 모나리자를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사진에 담고 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 인증샷을 찍고 만족하는 나를 미술애호가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허세를 채운 관람객(관광객)에 지나지 않을까?

후자라도 괜찮다! 대한민국 1호 도슨트 김찬용이 펴낸 책 <김찬용의 아트내비게이션>(arte)에서는 인증샷을 위한 관람도 미술 감상의 좋은 시작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알고 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 자체를 보고 즐기는 재미를 느끼라고 권유한다. 첫 장에 나오는 미술애호가 테스트부터 용기를 북돋워주니 한 번 해보시라.

2007년 1월 12일 오전, 워싱턴 D.C의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 청바지 차림으로 야구모자를 눌러쓴 채 바흐의 <샤콘>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었다. 그가 바이올린으로 여섯 곡을 연주하는 45분 동안 1천97명의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갔다. 그의 연주에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 사람은 고작 7명이었고, 그의 동전통에 쌓인 돈은 32달러였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기획한 이 몰래카메라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미술계에서도 있었다. 2013년 10월 13일 뉴욕 센트럴 파크, 노인 배우를 고용해 자신의 포스터를 60달러에 판매한 아티스트가 있었다. 이 포스터는 오후 3시 30분이 돼서야 처음 팔렸고,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포스터는 저녁까지 겨우 8점만이 팔렸을 뿐이었다. 총 매출액은 420달러였다.

그날 얼굴 없는 괴짜 아티스트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이 그림들을 직접 그리고 있는 본인의 동영상이 올라갔다. ‘작품이 정말 10억 원의 가치가 있다면 왜 미술관이나 경매장이 아닌 거리에서는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뱅크시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근현대 미술사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안내서

미술 감상의 길은 그래서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작품을 보고 감동하거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사실상 미술사적인 가치나 경제적 가치 때문일 확률이 높으니까. 그러나 저자는 그런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나의 경험과 감정, 나만의 시각에서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저자가 안내하는 미술 여행의 길이다.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근현대미술사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주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19세기 카메라의 등장이 빚어낸 인상파의 태동, 마네와 모네를 구별하는 법, 드가를 잊게 한 쇠라와, 쇠라를 잊게 한 고흐의 등장, 그 유명한 고흐와 고갱의 갈등, 쇠라·고흐·고갱을 뛰어넘은 세잔의 다시점, 세잔을 추종한 야수파와 입체파의 탄생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면 책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저자의 유튜브 ‘아싸티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비유하자면 마티스는 색채에 집중해 야수파를 탄생시켰고, 피카소는 형태에 집중해 입체파를 탄생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 p.101

이 책은 현대미술 쪽에 무게를 많이 싣고 있다. 20세기 미술사 시작점의 두 별, 마티스와 피카소부터 영국의 예술가 리처드 롱의 대지미술까지의 이야기가 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세기의 경쟁에 대해서, 추상미술의 아빠와 엄마가 누구인지, 뒤샹의 변기가 쏘아올린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초현실주의를 마주했을 때 자유롭게 상상하는 감상법을, 이 책은 즐겁게 안내한다.

저자 김찬용은 이제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공연장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만큼 많은 러브콜을 받는 전시해설가다. 그는 “제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작품들은 동시대 미술입니다”라고 말할 만큼 현대미술에 대한 애정이 크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청소년 시절에는 애니메이터를 꿈꾸었고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만화를 배우기도 했다. <아기공룡 둘리>와 <모노노케 히메>에 매료된 만화가 지망생 소년은, 미술대학에 다니면서 당시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직업으로 여겨지지도 않던 ‘도슨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도슨트는 한 달 내내 해도 50만 원을 받기 어려운 아르바이트였는데, 이 도슨트를 어떻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혹시 블루 오션이라는 촉이 왔던 것일까.

“2007년 <노벨 사이언스 체험전>이라는 과학전시회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뉴욕전>에서 전시장 지킴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기획인데도 전시를 비하하는 몇몇 관람객이 안타까워 작품과 전시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전시기획자가 도슨트를 제안해 왔습니다. 제 첫 도슨트의 기억입니다.”

뜻하지 않게 도슨트를 경험한 저자는 ‘내가 배운 것들을 활용해 미술을 좀더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블루 오션, 레드 오션을 떠나 아예 그 바다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곳을 잘 파내려가다 보면 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생존할 수 있는 우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은 때가 2010년 경이었습니다.”

마크 로스코, 르 코르뷔지에, 알베르토 자코메티, 야수파전, 툴루즈 로트렉전, 앤디 워홀전에 이르기까지 국내 굵직굵직한 전시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관람객들이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늘 블랙 수트를 입는다. 전시회에서 도슨트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세상으로 스며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술의 힘

책은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추상미술이 무엇인지, 캠벨수프나 코카콜라를 그리고 낙서(그래피티 아트)로 보이는 미국의 팝 아트가 왜 의미가 있는지 친절한 설명과 사례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보다 계속 확장되어가는 현대미술의 끝없는 한계를 보며 놀라게 될 것이다.

"뒤샹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라면 자신의 감각을 연마해 미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장인이 되려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선택된 사물에 개념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게 하는 철학자적 면모를 더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감상자인 우리는 예술가가 선정한 그 사물을 마주하며 기존에 알고 있던 의미가 아닌 새로운 개념 아래 고뇌하게 되고 이와 같은 사유의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제 예술가들은 ‘어떤 물감을 사용할까? 어떤 돌을 깎을까?’에 대한 고민 대신 ‘무엇을 예술로 고를까?’ 하는 훨씬 폭넓고 철학적인 고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 p.130

"그가 상상한 미래가 바로 우리의 현재죠. 백남준은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이를 예측한 선각자였습니다." - p.197

책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많은 예술가들이 나온다. 보이는 것 너머를 표현한 항망막 예술의 시대를 연 뒤샹, 20세기의 마티스가 되리라 선언하고 미국 팝 아트를 주도한 워홀,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끌어올린 바스키아, 그리고 1인 1TV 시대가 올 것을 예견한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이들이 꿈꾸던 미래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익숙한 것들의 재배합을 통해 낯선 감상을 전달했듯이 보이스는 익숙한 것(나무)과 익숙한 것(돌)의 조화만으로도 진보와 보수, 아이와 어른, 삶과 죽음 등 무한한 해석과 감상을 할 수 있는 문학적 작품을 남겨준 것입니다." - p.192

"이처럼 요동치는 미술사의 흐름 속에 많은 예술가가 꿈꿔온 미의 대중화는 21세기의 중심 화두가 되어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기존의 미술관이 가지고 있던 시스템적인 고정관념은 깨졌고, 미술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며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죠." - p.226

누구도 살 수 없지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예술. ‘공공미술’은 특권층이나 자본주의를 위한 것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예술이다.

저자는 요셉 보이스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소통하고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모두의 삶 속에 존재하는 예술,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가 첫 장에서 밝힌 이 책을 쓴 이유가 ‘많은 이들이 미술감상을 즐기게 하는 것’인 것도 어쩌면 공공미술의 한 부분이리라.

“저는 미술을 통해 삶을 달리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각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면 나의 세상이 더 넓게 확장되는 것을 깨닫게 되거든요. 미술은 그런 각성을 이끌어내는 좋은 매체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미술을 즐기고 감상하고 고민함으로써, 나의 일상과 생각을 새롭게 또 깊이 관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뒷장에 쓰여 있는 문구에 시선이 갔다.

넓고 넓은 미술세계의 많고 많은 작품 중에 내 취향은 어디 있을까 궁금할 때, 그냥 그림과 걸작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할 때,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미술관 데이트를 앞두고 있을 때, 몇 년 전에 사두고 포기한 미술사 벽돌 책에 먼지가 3mm 이상 앉았을 때, 낙서 실력이 심상치 않아 스스로가 예술가가 아닐까 의구심이 솟을 때, 이 책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좋아하는 만큼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담 없고 행복한 미술감상의 길에 기꺼이 <아트 내비게이션>이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 김찬용 사진(사진제공=북21)
도슨트 김찬용 사진(사진제공=북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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