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자율적인 삶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하여
[공연리뷰] 자율적인 삶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하여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1.07.26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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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정의 <매스? 게임!Vol.2.5>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br>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춤으로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을 실천하는 안무가 장은정은 <매스? 게임!Vol.2.5>(7월 3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획일화된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안무가는 주체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유 내지는 환경(사회)을 ‘매스(mass)’로 규정하면서, 그 거대한 매스의 실체에 억매여 있는 우리에게 ‘생존 게임’ 같은 일상의 터전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자고 얘기한다.

장은정은 2019년부터 <매스? 게임!> Version 1, 2, 2.5 세 작품을 해마다 발표하며 ‘매스’에 천착하고 있다. Vol.1에서는 ‘매스’의 원인을 외부의 통제와 지배로, Vol.2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나’로, 그리고 Vol.2.5에서는 나의 심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모습까지도 들여다본다. 궁극적으로 안무가가 말하는 ‘매스’로 포획된 사회에서 자율적인 삶이란 다양한 군상들이 수용되어 공존하는 세상이다. 작품의 주제는 추상적이고 범위가 포괄적인 듯하지만 실상 무대는 안무가의 의도를 짐작할 장치들(오브제)로 인해 작품 내용이 어렵지 않게 포착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음악과 조명의 색감은 개인의 심리 상태를, 오브제들은 사회적 상징을 나타낸다. 여기에 집단적이고 일률적인 동작이 매스를 은유하다가 자유롭고 신나는 춤으로 바뀌며 숨통이 트이는 통쾌한 쾌감이 전달되는데, 이것은 춤으로만 경험 가능한 감각적인 메시지다. 

공간과 오브제 배치 측면에서 분석해 보자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후반부까지 열어 놓은 무대는 일반적인 무대의 두 배가 되는 바닥공간을 확보한다. 전면과 후면 바닥에 놓인 긴 루프와 시계, 그리고 우측 무대에 놓인 중절모를 쓴 인형은 이 작품의 주요 메타포이다. 전작에서 권력의 상징인 인형이 획일화된 매스의 집단적 목표였다면(Vol.2), 이번 2.5버전에서는 루프 안에 도사린 나의 욕망과 욕심이 오늘의 매스임을 강조한다. 더불어 길게 늘어뜨려진 루프는 사고의 경계를 암시한다. 루프를 기준으로 그 주위를 규격화된 동작으로 이동하는 군무진은 홀로 고뇌(방황)하는 여자 댄서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스로 설정된다. 허수아비 같은 붉은 가운을 입은 군무진은 적극적으로 루프를 조이며 여자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 한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규정하는 집단성과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여성과 대비되는 설정이 전반부 주요 장면의 핵심이다.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

또한 중반부 무대에 등장하는 확성기는 말과 미디어에 얽힌 잘못된 정보로 우리의 일상이 소모적인 게임으로 소진되어 감을 은유한다. 가십거리가 풍선이 되어 누군가를 구렁텅이로 몰기도 하고 상처로 돌아오는 요즈음의 세태가 ‘매스’의 현장임을 각인시킨다. 자기 몸보다 큰 의상을 벗어내는 과정과 루프에 갇힌 상태에서 부자유한 몸은 서로 엉키기도 하며 격한 갈등을 표현한다. 루프에 치렁치렁 감긴 댄서는 혼란과 균열을 자초한 나를 옭아맨 매스가 자신임을 재확인하게 한다.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

이어서, 건조함과 격렬함이 교차하며 분주했던 분위기는 점차 차분하게 바뀌어 푸른빛과 흰색의 무대를 형성하며 댄서들의 내면과 마주하는 듯하다. 반복되는 군무진과 여성의 갈등이 해소될 전조를 여자 솔로가 루프를 자발적으로 조절하는 적극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명확한 지시는 없지만 북과 꽹과리 같은 소리가 나지막하게 퍼지며 여자의 내적 힘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여자는 한국 춤사위의 단호한 동작과 디딤으로 자신감 있는 주체적인 나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 사이 무대 후면에 루프로 탑을 쌓아 노는 댄서들이 보인다. 어느새 자신의 모습을 찾은 댄서들은 루프 위로 점프하고 보란 듯 휘돌며 무대는 어느새 강박증에서 벗어나 해방된 공간이자 놀이터로 변해 있다. 여기에 무대 한쪽에 있던 인형도 여자의 리모컨에 조정되어 무대를 활보한다. 이제 더 이상 무대는 초반에 옴짝달싹 못했던 억압의 실체들(오브제)은 사라지고 연대하여 자유롭게 즐기는 장(場)으로 탈바꿈되어 마무리된다.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
'매스? 게임!Vol.2.5' 공연 사진 ⓒSang Hoon Ok

3년 동안 세 가지 버전을 통해 장은정이 추적한 <매스? 게임!>은 집단적인 획일성을 내포한 사회 시스템에서부터 매스의 실체인 나의 욕망까지 들추어보며 자정능력이 발휘되길 바라는 소망의 공간으로 해석된다. 장은정이 희망하는 사회는 치열한 생존 게임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언제나 리셋 가능한 디지털 게임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신나고 자유로운 춤이 출렁이는 <매스? 게임!Vol.2.5> 무대는 나와 상대의 면면(面面)을 수용하며 축제 같은 일상의 회복을 바라는 장은정이 꿈꾸는 세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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