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숙 개인전 ‘프로토타입_기억공간_몸 소리 문’
이연숙 개인전 ‘프로토타입_기억공간_몸 소리 문’
  • 이미우 기자
  • 승인 2021.11.05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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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원주민 마을의 문화체험 모티브

'프로토타입-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스테인리스 스틸, 모터, 깃털, 40X40X150cm, 2021)

[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대안공간 루프는 11월 5-14일 <이연숙 개인전; 프로토타입_기억공간_몸 소리 문PROTOTYPE_Memory Space_Body Sound Door>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호주 원주민 마을에서 경험한 원초적 문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8일 저녁 7시에는 퍼포먼스도 준비돼 있다.

이번 작업은 작가의 호주 원주민 마을 체험에서 시작됐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그대로 보존된 6만 년의 기록이 원주민예술(Aboriginal art)과 같은 전통예술과 구전 등 고전 매체에서 카메라, 아이패드 등 디지털 문명으로 전환되었다. 전통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며 재창조된 자연의 기록은 세대를 넘어 여전히 그들의 감각으로 기록된다. 작가는 특정 장소를 기억하는 개인의 감각을 물리적 장치로 옮겨와 공적인 공간, 다수의 감각으로 확장시키는 실험을 한다. 가상현실이 아닌 실재와 기억 사이의 경계를 오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들고자 한다. 전시는 호주 원주민 여성들의 춤을 재해석한 무용수의 퍼포먼스 영상 작업 <드림 타임>과 달의 움직임과 빛, 흔들리는 깃털 등으로 연극적 풍경을 구성한 설치작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만인의 달> 등으로 구성된다.

'프로토타입-만인의 달'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 모터, 가변설치, 2021)

작가 이연숙(1976-)은 일상의 경험과 장소기억, 인식의 변화를 주제로 공간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전작에서 소용을 다하고 버려진 일상적 오브제를 통해 개인의 기억을 특정 사건과 결합, 사회적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냈었다. 이후 장소특정적 프로젝트와 다수의 개인전에서 그 관심사는 사적 공간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장소가 보여주는 건축적 공간과 축적된 개인사적 내러티브에 주목하는 작가는 영상, 조각, 공간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구체적 사건이나 사회현상 속에 존재하는 개인의 삶에 대한 공감각적 서사구조를 만들어내는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가 노트

나는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을 하면서 그 장소에서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즉각적 반응을 보이는 작업과 퍼포먼스를 종종 시도하였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며 과거의 특정 시간을 떠올리는 것처럼, 과거로의 시간이동의 매개체로 시각 이외의 감각에 더 적극 반응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따라서 버려지거나 과거의 기억이 담긴 장소특정적 설치에서 사용한 빛, 소리, 냄새 등은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이 기억의 확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또한 장소에 대한 상징이나 은유적인 표현보다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이 다양한 의미로 재해석되는 것을 보면서, 관람객의 적극적 참여를 위한 ‘움직임’을 신작으로 제작하고자 한다. 추후 좀 더 발전된 형태로 프로젝트 영상과 퍼포머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의 연출과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때의 공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We in Wonderland' (사진제공=대안공간 루프)

이번 아이디어 기획과 구현에서는 공간설치 작업의 구성 요소를 하나씩 모형 제작을 해보고 기술을 시현해본 후 추후 사람이 들어가서 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10여 년 전 호주 원주민 마을 레지던시에서 대자연과 그들의 원초적 문화를 경험하였다. 오염되지 않고 보존된 자연과 수 만 년 전의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는 모습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삶과 자연에 순응하며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사하는 태도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을 내어주고 품어주는 자연, 그것은 바로 기억이 축적된 그 공간 자체라고 생각한다.

수 만 년의 시간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자연을 표현하는데 그 대상인 자연은 하늘(달과 별), 바람과 살랑대는 사물이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은 빛으로, 달은 세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만인의 달’로, 그리고 바람은 깃털이 움직이는 것을 구동할 수 있는 키네틱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자 한다. 프로토타입을 개발한 후 차기연도에 대량으로 제작하여 직접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계획하며 퍼포먼스 공연의 다원예술 발표를 위한 기획준비를 하고 있다.

1. “YOUA(YES)” “You are my Family.”

우리는 하늘의 허락과 땅의 환대를 받으며 붉은 땅과 파란 하늘이 맞닿은 곳에 내렸다. 행운을 상징하는 낙타가 앉은 땅, 검은 야생마 무리 속에서 본 백마, 10여 년 만에 만개한 노오란 들꽃, 그리고 청명한 날씨는 환대이자 프랭크가 말한 ‘You are my Family’가 되는 허락이었다.

비교적 기온이 낮은 시기에 방문하였지만, 호주의 사막은 무척이나 덥고 입술이 바짝바짝 갈라질 정도로 건조하였다. 필립(DESART CEO_Phlip Watkins)은 수분 섭취를 강조하며 빨간 튜브에 든 포포 크림을 건네주었다. 은박지에 든 생수와 포포 크림은 호주 여정 내내 사막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품이 되었다.

호주의 사막 (사진제공=대안공간 루프)
호주의 사막 (사진제공=대안공간 루프)

처음 경험한 건조하고 높은 기온과 대지에서의 모든 감각은 나의 몸에 저장되어 붉은 사막의 장소기억이 되었다. 즉 세대와 다음 세대의 경험이 그대로 전달되어 몸에 저장된 감각의 땅이자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그 곳은 곧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장소가 된다. 또한 노마딕에서 정주의 삶을 살면서도 오염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자연과 6만 년 전의 문화를 통해 나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알게 되었다. 구전으로 기억된 장소기억이 부모 세대에서는 그림(Aboriginal art)으로 기록됨과 동시에 아이패드와 카메라를 손에 든 다음 세대의 디지털 저장방식은 전통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며 재창조되고 여전히 그들의 감각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살짝만 발을 내딛어도 부드러운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의 붉은 땅, 녹이 슨 철처럼 붉고 결이 고운 흙과 각종 허브, 그리고 사람들의 체취는 그 땅, 내가 서 있었던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곳을 기억한다는 것은 마치 나의 온 몸에 저장된 모든 감각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나는 그 장소에서 발현되는 모든 감각을 재료로 가상과 물리적 상징 오브제 설치를 통해 장소기억을 재현하고자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특정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을 하는 것처럼 그곳의 냄새와 바람, 그리고 빛을 매개로 내가 경험한 장소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2. 파푼야와 이쿤지 작가들의 답례 ‘Women’s dance’

나는 그곳에서 ‘Transplant 이식’을 주제로 풍선을 이용한 상상 속의 이식된 식물을 만들었다. 광활한 사막의 붉은 땅과 대조적인 이식된 인공적인 식물은 수 만 년의 전통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현대문명을 받아들인 그들의 삶과 같다고 생각했다. 야외 설치를 준비하던 중 아트센터 내부에 설치된 식물을 인상 깊게 본 원주민 작가들이 답례처럼 여자들의 이야기와 춤을 보여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아트센터 안쪽 여러 겹의 천에 싸여 보관된 신성한 깃털을 꺼내서 온전한 의식처럼 여인들의 노래와 춤(Women’s song & dance)를 보여주었다. 여러 겹의 천에 싸여 있던 깃털은 그들이 의식을 할 때만 꺼내고 타인(그들의 가족이 아닌)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신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성한 사물이고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힘이자 그들의 드리밍(Dreaming은 삶의 근간, 정체성 또는 주쿠파로 해석됨)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상징인 하얀 깃털을 재료로 내가 그곳에서 본 대자연과 비가시적인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한다. 무자비한 백인의 약탈과 문화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켜낸 그들의 전통이 강한 바람에 맞서 꺾이지 않고 바람의 방향에 몸을 내맡긴 채 흔들리는 들판의 풀 같았다. 궁극적으로 각각의 감정을 가진 풀의 움직임을 바람이 아닌 외부의 기계 움직임으로 제어해보는 프로토타입은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더불어 80여개의 아트센터마다 그 고유의 언어와 표현하는 예술이 다르지만, 언어 이상의 소통이 가능하고 각각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몸의 소리와 그 경계를 이어주는 문에서 비롯된 장소기억의 재해석이다.

밀란 쿤데라 소설의 제목에서 가져온 작품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거운 역사 속에서 개인 존재의 가벼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줄다리기와 같은 우리의 인생, 즉 우리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를 오가는 삶을 살며 그것을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기계의 동작은 동시에 미묘한 공기의 흐름과 깃털의 움직임으로 가시화되며 메모리 액티비즘으로 확대될 수 있다.

3. 왜 나는 8년 전의 시간과 장소의 기억을 떠올리는가?

오래 전 계획한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며, 장소에서 경험한 감각이 어떻게 되살아나는 지와 타인에게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 내가 경험한 시간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구현하여 가상현실이 아닌 실재와 기억 사이의 경계를 오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었다. 즉 이번 전시 <기억 공간_몸 소리 문>은 몸의 감각을 통해 기억의 확장을 도와주는 장치인 프로토타입 제작이다. 이 장치를 통해 실재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상징적 이미지로 과거와 현재의 장소를 넘나들면서 시간을 품은 풍경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호주 사막에서의 경험을 재현하기 위한 각각의 장치는 추후 공연을 위한 원형극장이자 공감각 체험형 설치로 확장되어 몸에 기억된 감각이 공간에서 장소로 전환되는 매개가 된다. 1층 전시공간은 여인들의 춤을 해석한 퍼포먼스 영상으로 무용수의 몸에 기억된 원초적 감각과 감정의 표현이다. 타악기와 가장 단순한 리듬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아토’의 곡은 원주민 마술(Aboriginal magic)과 같은 정신적 근간과 치유의 힘이다. 성소(Sacred site)에서의 의식인 노래와 춤에서 기인한 장소의 기억은 원주민 작가들이 그린 <My father’s country> <My mother’s country> <My mother’s favorite flowers>처럼 이미지가 되어 차곡차곡 기록되고 저장된다. 퍼포머는 이뮤, 도마뱀, 캥거루, 부쉬, 애벌레, 꿀개미 등 그곳의 자연을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을 시작으로 감각한다. 마치 원주민 예술가가 그림으로 구전된 전통을 표현한 것처럼 퍼포머 역시 분절된 동작의 언어적 기술을 통해 저장된 기억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지하는 추후 다원예술을 위한 프로토타입 전시이자 장소를 기억하는 장치의 전시공간이다. 각도와 속도가 다른 달의 움직임은 빛에 의해 공간을 변화시키고 축적된 시간을 보여준다. 냄새와 바람, 그리고 흔들리는 깃털은 연극적인 풍경으로서 사적 내러티브로 구현된 사진처럼 포착된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영혼과 몸의 경계 사이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바로 ‘Family’(가족의 범위는 우리의 대가족과 같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가족, 나의 근간인 어머니와 아버지, 그 이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수 만 년 동안 전달된 세대 간의 기억인 것이다. 따라서 장소의 기억은 감각으로 몸에 기록되어 세대를 연결하고 삶의 근간이 된다.

이연숙 개인전 포스터
이연숙 개인전 포스터(제공=대안공간 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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