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 오페라로 부활한다
최양업 신부, 오페라로 부활한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1.11.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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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작곡가 박영희 오페라 ‘길 위의 천국’ 세계 초연
박영희 오페라 '길 위의 천국' 포스터(제공=최양업 신부 탄생2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가경자’ 최양업 신부(1821-1861)의 삶이 재독 작곡가 박영희의 오페라로 재탄생한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카톨릭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삶을 기리는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을 청주와 서울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최양업 신부는 15세에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며 서양학문과 문물을 접했다. 그는 일찍이 서양음악을 접하고 동료들과 교회노래와 성가들을 배웠으며 서양음악의 화성에 눈을 떴으며 후일 4.4조 노래인 천주가사를 성가에 적용, 서양음악을 토착화시키려 했다. 또한 한자를 모르는 일반 신자들을 위해 한문 교리서, 기도서 등을 한글로 번역했으며 천주가사를 보급했다.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속에서 궁핍하게 생활할 때도 먼 길을 걸어 오가며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등불이 되어주었으며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우려 노력했다.

'가경자' 최양업 신부
'가경자' 최양업 신부(출처=missionsetrangeres.com)

그는 초인적인 사목활동으로 인한 과로와 병으로 1861년 선종했다. 한국 카톨릭에서는 그를 ‘땀의 순교자’로 부르며 공경하지만 그의 죽음은 ‘순직’이기에 성위에 오르지는 못했다. 다만 2016년 로마 교황청은 최양업 신부에게 시복(諡福) 후보자에게 잠정적으로 부여하는 가경자(可敬者, venerable) 칭호를 선포했다.

브레멘 음대 교수를 역임한 박영희(75, Younghi Pagh-Paan)는 독일에서 활동중인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그녀는 지난해 1월 베를린 예술대상을 수상했다. 1948년 시작된 베를린 예술대상은 독일 예술계 최고 권위의 예술상으로 음악, 순수미술, 건축, 문학, 공연예술, 영화 등 6개 부문을 대상으로 수여한다. 매년 6개 부문에서 예술상을 선정하는 한편 6년 주기로 1개 부문에서 대상 수상자를 결정한다. 박영희 작곡가는 베를린 예술상 역사상 전 부문에 걸쳐 최초의 동양인 수상자이자 6년 주기인 음악 부문에서 여성 최초로 대상 수상자가 됐다.

재독 작곡가 박영희(사진=korea.net)
재독 작곡가 박영희(사진=korea.net)

이번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은 최양업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됐다.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궁화홀에서 열린 <길 위의 천국> 제작발표회에서 박영희 작곡가는 “15년 전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집을 읽고 최 신부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됐고, 음악을 바쳐서 나의 사랑을 돌려드리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작곡가는 2005년 우연히 서한집을 읽은 후 인간의 욕심과 명예욕을 온전히 비운 최 신부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박 작곡가는 “신부님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졌지만, 곡을 쓰면서는 오히려 순간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조금 멀어지려고 했다”고 밝혔다. 박 작곡가는 “우리말이 갖는 특징을 노래에 얹어서 조금 다른 형태로 청중들이 듣게 하는 게 목표였다”며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서 벗어나 포기하는 것을 배우면서 소박한 음을 들려주려고도 노력했다”고 말했다.

<길 위의 천국>의 노래들은 오케스트라 연주로 이뤄지지만 ‘한국만의 가락’을 담았다. 서양의 화성에서 탈피한, 말하는 듯한 선율이 주를 이룬다. 박영희 작곡가는 “화성학의 근간을 이루는 3화음과 피아노 반주를 배제한 성악가들의 노래를 창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길 위의 천국>은 기본적으로 오페라지만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예술형식들이 녹아있다.

'길 위의 천국' 무대 모습.
'길 위의 천국'의 '시공초월' 무대.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동일선상에 있는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한다.

지휘를 맡은 지중배 예술감독은 “음악적 표현이 많았던 박영희 선생님의 기존 작품과 달리 이번 오페라 곡은 ‘여백의 미’가 두드러진다”며 “절제된 음악을 통해 삶의 드라마가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양업 신부의 삶은 팬데믹 시대에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박영희 작곡가는 “최근 2년간 세상은 사람들에게 ‘서로 가까이하지 말라’며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배척해 왔는데, 낮은 자세로 남을 껴안았던 최 신부의 삶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종교음악 작곡가가 아니라 종교를 주제로 곡을 쓰는 사람”이라며 “’길 위의 천국’은 현 시대의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음악”이라고 덧붙였다.

최양업 신부 역에 테너 김효종, 여성 민초를 상징하는 바르바라 역에 소프라노 장혜지, 최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역에 메조소프라노 양계화 등이 출연한다. 해설자 역은 배우 이윤지가 맡으며 지중배 지휘, 디토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는다.

11월 12일(금) 오후 7시, 13일(토) 오후 2시 : 청주 예술의전당
11월 20일(토) 오후 2시, 7시, 21일(일) 오후 5시 :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11월 23일(화) 오후 7시 30분 갈라콘서트 :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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