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차진엽 ‘원형하는 몸: round 1 & 2’
[공연리뷰] 차진엽 ‘원형하는 몸: round 1 & 2’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01.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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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 탐구력으로 몸의 사유를 확장시킨 작업
콜렉티브에이의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1' 공연 장면 (제공=류진욱)
콜렉티브A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round1' 공연 장면 (c)류진욱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콜렉티브A의 예술감독이며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차진엽이 2년여의 과정을 거쳐 선보인 <원형하는 몸: round1&2> 연작은 몸의 본질을 전방위적 시각으로 치밀하게 탐구한 작업이다. 차진엽은 몸의 세계를 포괄적이면서도 미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리적인 원형(圓形)으로의 순환성과 정신의 근원적인 원형(原型)으로서 몸을 탐색한다. 

<원형하는 몸: round1>(2021.11.13.-14,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물의 순환과정을 통해 원형과 변형 속에 반응하는 몸으로서 파장을 수렴해가는 과정이, <원형하는 몸: round2>(2021.12.23-26, 플랫폼 엘)에서는 신체의 미생물과 부산물의 주체적 존재를 깨닫는 과정에서 몸의 새로운 가치를 일깨운다. 빛과 소리는 움직임을 깨우고 그 움직임은 출렁이는 영상 속 가상 세계를 점유하며 몸의 사유가 발생한다. 자연의 생성과 순환(round1), 생성과 소멸(round2)이라는 명제가 물리적 토대에서 춤으로 구체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콜렉티브에이의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1' 공연 장면 (제공=류진욱)
콜렉티브A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round1' 공연 장면 (c)류진욱

얼음이 물방울로, 다시 수증기로 변하는 물의 섭리와 동일선상에서 몸의 원리를 연합한 <원형하는 몸: round1>은 처음 파라다이스 아트랩(2020.10.23-11.1)에서 솔로로 선보였고, LDP 정기공연에서 군무(<원형하는 몸: Round1-1> 2020.12.13, 아르코예술극장)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따라서 여러 번의 손을 거쳐 안무가의 의도가 적확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다듬어졌다.

공연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대 중앙 차갑고 딱딱한 얼음 덩어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의 청명함이 댄서의 움직임에 호흡을 넣는 듯하다. 빛의 파열 속 댄서(차진엽)의 일렁거리는 움직임은 태초를 알리는 생명의 몸짓이자 ‘생성’되는 에너지를 상상하게 한다. 유리 볼에서 퍼지는 물의 파동처럼 무대바닥 그래픽의 파동에 몸은 순응하며 확장된 신체성과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이 증폭된 파동 속에서 댄서는 자궁 속에서 부유하는 태아 같기도 하고, 웜홀에서 무중력 상태에 놓인 생명체 같기도 하며 관객의 감각적 호기심을 촉발시킨다. 무대 양쪽에 설치된 거울은 한 명의 댄서이나 네 명이 움직이는 듯 원형 공간의 착시를 의도한 혼합현실이다. 거울에 비친 댄서의 형상과 춤추는 현실이 병존하며 물의 순환적 변형과 맥을 같이하는 안무로 진전한다. 

콜렉티브에이의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1' 공연 장면 (제공=류진욱)
콜렉티브A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round1' 공연 장면 (c)류진욱

군무진의 반복적인 턴 동작으로 무대의 에너지가 고조될 즈음 다시 물방울 소리에 집중하게  안내된다. 얼음을 깨먹는 소리와 함께 얼음을 상징하는 무대 그래픽 안에서 댄서들은 고체가 액체로 녹는 과정을 대체하는 실체로서 바닥에 밀착된 채로 움직인다. 전반부와 확연하게 달라진 냉랭한 공기에 반응했던 몸들은 점차적으로 컬러풀한 빛으로 바닥에 궤적을 남기며 온기의 파동으로 채워간다. 유사한 패턴의 장면이 흐른 뒤 다시 불분명한 흑암이 가득한 공간에 수증기가 자욱하게 깔리며 어떤 전환을 감지하게 한다. 이내 하늘극장 천장이 열리며 푸르고 맑은 하늘과 공기로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게 된다. 이로서 무대는 얼음과 물과 공기가 공존하는 장이자 삶의 공간으로 해석될 근거를 주었고 댄서들은 움직이던 자리에서 누워 이를 수용하는 듯하다. ‘순환’, 또 다른 시작을 시사한다. 

물의 물리적 변화 과정을 콘셉트로 한 <원형하는몸: round1>은 자칫 당연하고 상식적인 원리를 기술적인 협업으로 세련되고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이 작품의 공신은 그래픽 디자인으로 탁월한 공간감을 조성하였고, 무엇보다 관습적인 동작을 걷어내고 턴 동작의 무한 반복적 재생으로 원의 상징적 의미(순환, 무한함, 우주적 섭리 같은)를 점철시킨 점이다. 결과적으로 몸짓이 음향과 영상으로 극대화된 표현성을 획득하되 기본적인 움직임(돌기, 기어다니기, 미끄러지기 등)을 행하며 몸의 의미를 되묻게 했다. 허나 물을 빗대어 삶을 반추하려는 안무가의 고민은 시각적 테크닉에 압도되어 쉽사리 짐작하기까진 어려웠다. 그럼에도 변형 속 원형(原型), 원형(圓形) 속 원형(原型)이란 추상적 관념이 녹아든 작품은 효율적인 융·복합으로 괄목할 만한 선례를 보여주었다. 

콜렉티브에이의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1' 공연 장면 (제공=류진욱)
콜렉티브A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round2' 공연 장면 (c)류진욱

<원형하는몸: round1>이 물의 성질과 몸의 상관관계 속에서 삶을 반추해 보려는 거시적인 관점이었다면, <원형하는 몸:  round2>는 미시적인 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것도 짚신벌레 같은 미생물과 각질 같은 몸의 부산물을 현미경의 눈으로 확장시켜 탐구한다. 현미경 렌즈 안이란 설정으로 출발한 작품은 미세한 미생물의 세포가 분열되고 진화하며 분리되는 과정이 묘사된다. 하얀 벽면 영상에서는 미생물의 촉수가 움직이고 바닥에서는 이와 동일시되는 움직임을 모방하는 댄서들의 꿈틀거림이 한참 동안 진행된다. 손가락 그림자 형태로 구현되는 형상모방은 촉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측면과 함께 무관심했던 내 몸 안의 작은 생명체를 생각해 보게 한다.

다채로운 조명을 배경삼아 둥근 렌즈 안에서 홀로(차진엽) 움직이는 몸짓이 이어진다. 머리카락과 각질을 털어내는 행동을 하는 댄서의 입장과는 달리 이 부산물들은 자기 발언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제안된다. “나는 머리카락입니다” “나는 각질입니다”라는 언표가 그것으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또 다른 구성체임을 인지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몸속에서 자체적 활동으로 생겨나서 떨어져 나가는 피지, 코딱지 같은 부산물들의 자기 존재성을 안무자는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평상시 한 번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신체 부산물들의 반란! 한 마디로 신선하다. “모든 생물은 다 움직이며 안무에 영감을 준다”는 오스트리아 안무가 크리스 해링도 카메라로 미생물을 찍으며 그 생명체를 환영적인 부분과 연결시켰다(<Deep Dish>). 반면 차진엽은 미생물의 사실적 운동성에 주목, 그것들의 주체적 활동에 의미를 부여한 차별점이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콜렉티브에이의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1' 공연 장면 (제공=류진욱)
콜렉티브A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round2' 공연 장면 (c)류진욱

차진엽은 <원형하는 몸: round1&2> 연작을 통해 몸의 변화 과정 안에서 나의 모습(원형)을 찾고자 하는 입체적인 시각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판단된다. 안무자는 그간 형식적으로 공간 활용과 융·복합적 기술을 선도하는 측면이 있었다면 이번 연작을 통해서는 몸에 대한 사고가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최근 들어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몸을 새롭게 탐구하는 작업들이 발견된다. 몸의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했던 신체 기관을 움직임의 영역(안무)으로 진입시켜 새롭게 인식하게 한 황수현의 <검정감각>(목소리의 수행적 탐구)과 이윤정의 <설근체조>(혀와 혀뿌리의 움직임 탐구)가 대표적이다. 차진엽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몸의 부산물까지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일부이며 존재임을 일깨웠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부산물들 어느 하나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주체적 생명체라는 몸 인식을 제시한 점이다. 

콜렉티브에이의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round1' 공연 장면 (제공=류진욱)
콜렉티브A 예술감독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round2' 공연 장면 (c)류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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