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18) - 소중한 나의 한 표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18) - 소중한 나의 한 표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2.03.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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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로이몬드시 축제에서 필자(사진제공=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지난 주(2월 23-28일) 재외국민(부재자) 투표가 시작되어 본(Bonn)에 있는 영사관에 가서 투표를 하고 왔다. 후보자들이 다 맘에 안 든다는 것이 주변의 반응들이지만 '선거는 차악'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는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왔다. 

부끄럽지만 한때는 정치는 나 개인하곤 별개라 여기며 무관심했었다. 언젠가부터 정치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과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지구 먼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나와 무관한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독일에서 내가 느끼는 주변 사람들의 정치관과 한국에서 느껴지는 주변인들의 정치관을 조금 비교하자면 독일은 정치를 개인의 삶의 이익보다는 국가 전체의 균형과 이익을 따져 보는 시각인 반면, 한국은 각자 개인적 이익에 따라 정치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물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양쪽 지인들을 바라본 작은 의견이다. 독일보다는 한국 친구들이 그러니까 나에게 무언가 득이 되면 좋은 정권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정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더 있는 것 같다. 

나는 박근혜 탄핵 사태 때 나와 정치관이 너무 다를 뿐더러 내가 보기에는 편협하고 심지어 비상식적인 사람들과의 소모적인 토론을 포기하고 급기야 에스엔에스 친구들을 끊어버린 적도 있었다.

독일 파트너가 그렇게 너와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어떤 이유에서든 견딜 수 없다고 끊어 버리면 본질적으로 너도 그 사람들과 똑같다고 했을 때, 나는 반 농담처럼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라고 했었다. 나는 늘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한참 부족한 나 자신을 느낀다. 

로이몬드시 축제 모습(사진제공=김윤정)

독일은 갑자기 큰 돈을 벌거나 갑자기 망하는 일도 드물듯이 정치도 갑자기 신데렐라가 되어 떠오르기는 힘든 구조다. 독일 정치가들은 대부분 20대부터 정당에 가입해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주의회와 주정부를 거쳐 성장하고 연방의회와 정부에서 일하다 총리 자리에 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은 잘못된 역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끝까지 찾아서 처벌하고, 그 반대로 잘못한 대상에게는 사과하고 물리적 보상도 하는 책임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정당에서 총리가 되어도 그 위치와 전문 분야에 능력있는 적임자다 싶으면 정당과 계파와 사상을 따지지 않고 직책을 맡긴다. 그리고 결정이 되면 전체를 위해 화합한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하면 자기보다 무지한 자들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했다. 아무튼 나는 나의 한 표를 소신대로 던졌고 어차피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지난 미국 선거에서 예상치 못하게 트럼프가 당선되고 모두들 부정적인 여론이 나올 때 나의 독일 파트너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면서 아무리 오바마의 인기가 좋았어도 트럼프는 오바마의 결과라고 했다. 내가 표를 던진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지만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의식의 반영이라는 걸 상기하면서 결과를 기다려 본다. 

반전시위 그리고 카니발 

우리 인류의 역사는 크든 작든 전쟁은 언제나 현재진행중이다. 믿을 수 없지만 말이다. 

독일은 도시마다 반전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이웃 나라 네덜란드는 카니발 행렬로 들썩이고 있다. 최근 나는 코로나 정책이 독일보다는 느슨해진 옆나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 그것도 아주 제대로 분장을 하고 거리에서 즐기는 인파의 축제 분위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같은 시간 어디서는 전쟁 중이고 또 그에 힘을 보태고자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또 누군가는 자기들의 문화를 즐길 권리를 찾아 축제 중이다. 과거 9.11 사태의 모습이 재난영화 속 한 장면 같았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언젠가 프랑스의 세당(Sedan)이라는 도시에서 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병사들의 공동묘지를 방문했을 때 끝없이 들판을 덮고 있는 무덤 위 십자가들을 보고 숨이 막힐 듯했는데 지금 21세기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 세상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전쟁이란 어떤 대의명분이 있다고 해도 너무나 꽃다운 나이의 젊은 사람들, 그리고 무죄의 서민들이 피를 흘리는 비극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프랑스 세당의 군인묘지(사진제공=김윤정)

나에게 9.11 사건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일단 그 이유, 원인 또는 역사를 보지 않고 벌어진 현상으로만 판단을 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어쩌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친미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미국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자란 나에게 9.11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좋은 나라(?) 미국의 이미지에 대해 9.11 사건은 새로이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아, 어느 누군가에게는 자살폭탄을 해야 할 만큼 미국은 악이고 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세계의 여론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힘의 원리는 우리가 만든 정의의 가치나 국가간의 약속 따위는 그냥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이 일으키는 폭력은 테러라는 이름으로 규정되고 국가간에 무기로 살상하는 대학살은 어떤 대의명분을 붙인 전쟁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나는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 안에서는 미국이 이라크의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전쟁을 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이 과연 내 자식, 내 가족의 목숨과 바꾸고 싶은 게 있을까? 라며 반론을 제기했었다. 나는 그때부터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이상적인 틀을 쓴 자본주의의 위험과 그 권력의 파급력, 그리고 부조리함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론 이라크전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 가졌던 나의 반감, 그리고 우리가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반감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미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선한 사람들이란 걸 나는 또 알고 있다.  

서재에서 필자(사진제공=김윤정)

러시아-우크라이나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정치적 입장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 하는, 서로 죽이고 죽는 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개인이 국가라는 전체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비극일 것이다. 

우연히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하던 여성 앵커의 방송을 들었다. 그녀는 역사에대한 판단은 알람시계를 어느 시점부터 울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람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알람을 새벽 다섯시에 맞추면 밖은 어두울 것이고 일곱시에 맞추면 환한 아침이 될 것이고 또 다른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보면 비가 오거나 해가 뜨거나 다른 현실이 보인다는 것이다. 시간을 어느 시점부터 보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지금의 전쟁도 알람을 2020년에 맞추면 푸틴의 잘못이고 2014년에 맞추면 나토의 잘못이고 2008년에 맞추면 미국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반전시위중인 나의 친구(사진제공=김윤정)

세상이 점점 진실은 요원해지고 사실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지켜지고 보여지고 존재하는가는 생각보다 아주 복잡한 문제인 듯하다. 역사와 과정은 없어지고 결과에 대해서만 우리는 잣대를 들이대고 반응한다. 나는 현재 국제사회가 결과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도 참여와 연대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함께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이상하게 역사와 과거에서 배우기보다는 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국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전체를 보는 힘을 잃어가는 것도 문제다. 이유가 어떻든간에 더 이상 국가라는 이름 아래 희생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전쟁이 종식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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