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다양성과 공공성을 확보한 춤의 향연, 부산국제무용제
[축제리뷰] 다양성과 공공성을 확보한 춤의 향연, 부산국제무용제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06.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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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현장 제18회 부산국제무용제
​쿰댄스컴퍼니 서연수의 '집속의 집 ver3' (사진=하봉걸)​
​쿰댄스컴퍼니 서연수의 '집속의 집 ver3' (사진=하봉걸)​

[더프리뷰=부산] 김혜라 춤비평가 = 부산의 대표적 무용축제인 부산국제무용제(운영위원장 신은주)가 지난 6월 3일에서 5일까지 해운대 해변 특설무대와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에서 펼쳐졌다. 해가 지며 시시각각 변하는 해운대 바닷가의 매력적인 무대에서 선보인 11개국 66편의 다양한 작품들은 춤과 예술이 소유가 아니라 공유될 때 가치가 있음을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미세하게 다른 파도 소리와 바람결, 여기에 노을과 해무가 선사하는 자연 조명은 무대의 환경과는 또 다른 감성을 자극하며 춤을 추는 무용수도 관객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4-5시간 여의 장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들고 나며 사진을 찍고 담소하고 차 마시며 즐기는 축제였다.

AK21 안무가육성 경연무대 (사진제공=하봉걸)
AK21 안무가육성 경연무대 (사진=하봉걸)

올해 18회를 맞은 축제는 ‘희망의 춤 부산에서 하나 되다’라는 주제로 기존의 프로그램 틀을 유지하면서도 지역적 한계를 넘어설 프로젝트로 확장하고자 노력한 점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재능 있는 젊은 안무가를 발굴하여 국제무대로 진출시키려는 창구인 AK(Art Korea)21 안무가 육성경연(5월 15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는 다섯 안무가(한창호, 김동윤, 신원민, 정건, 김병규)를 선발하였고, BIDF(Busan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라운드 테이블과 Dance Planning(5월 16-17일)을 열어 ‘AK21 안무가와 함께하는 국제교류 미래에 관한 전망’과 ‘부산춤 공연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특히 올해는 극장을 오지 않는 관객을 찾아가는 기획이 이전의 축제와는 차별화된 행사이다. 가장 부산답지만 낙후된 지역의 구청을 돌고, 중구 유라리 광장(6월 3일)과 부산시민공원(6월 5일, 우천으로 하늘연극장으로 변경)으로 찾아가 해운대까지 오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모바일댄스는 어린 친구들의 참여로 요즈음 재조명을 받고 있는 스트릿 춤과 방송춤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였다.

동래학춤 공연 (사진제공=하봉걸)
동래학춤 공연 (사진=하봉걸)

부산국제무용제의 프로그램은 지역의 대표적 전통인 부산 동래학춤과 부산 농악을 포함, 토속적이며 민속적인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아시아 춤부터 스페인의 플라멩코, 이스라엘과 프랑스의 모던댄스, 발레와 스트릿 댄스 그리고 컨템퍼러리 춤에서 주목 받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3일 개막식 초청 공연(하늘연극장)에서는 이성훈 <동래학춤> 보유자의 춤이 인상적이었다. 고고한 선비의 지조와 학의 이미지가 녹아든 멋스러운 춤이었다. 특히 한국 전통춤의 한 특성인 군무에서도 즉흥성과 자발성이 발휘되는 일률적이지 않은 부분으로 덧배기 춤에서 더욱 자유로움이 공력을 더했다.

프랑스 '제임스 B를 기다리며 Waiting for James B' (사진=하봉걸)
프랑스 '제임스 B를 기다리며 Waiting for James B' (사진=하봉걸)

프랑스의 아르 무브 무용단(CIE ART MOUV’)의 <제임스 B를 기다리며 Waiting for James B>는 평균연령 60을 넘나드는 고령의 무용수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힙합 베이스에 활력 넘치는 동작을 접목하여 음악적 변주에 맞춘 능숙한 춤이었다. 김용걸댄스시어터의 <라 스트라바간자 La Stravaganza>도 비발디의 곡에 맞춰 5명 댄서들의 음악해석력이나 기교가 우수하였으며, 클래식 발레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모던 발레의 색다른 경험을 선보였다.

스페인 ‘알렌토와 케렌시아 1’ (사진제공=하봉걸)
스페인 ‘알렌토와 케렌시아 1’ (사진=하봉걸)

개막공연에서 가장 환호를 받은 콤파니아 안토니오 나하로(COMPAÑIA ANTONIO NAJARRO)의 <알렌토와 케렌시아 발췌 EXTRACTS OF ALENTO AND QUERENCIA I)는 스페인 국립발레 예술감독을 역임한 안토니오 나하로의 무용단으로 발레 기초가 탄탄하게 갖춰진 댄서들의 기량에 스페인 색채의 정취와 표현력이 돋보였다. 말하자면 스페인의 전통적인 플라멩코는 물론이거니와 살롱이 아닌 프로시니엄 극장의 스펙터클에 적합한 안무와 스토리를 갖춘 춤이었다. 의상과 의자를 이용한 일체감 있는 동작 구성과 빠른 발놀림은 박진감을 더했고 적절한 감정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수작이었다.

차킬 스쿼드 아트 커뮤니티 '그레지드 니아위지 Greged Nyawiji' (사진=하봉걸)
인도네시아 차킬 스쿼드 아트 커뮤니티
'그레지드 니아위지' (사진=하봉걸)

4일에 선보인 해외 공식초정 공연 중 인상적인 작품은 다음과 같다. 필리핀의 세인트 루이스 대학 댄스 그룹(Saint Louis University Dance Troupe)의 <파나그 아니 Panag ani(Kalinga)>는 조상신께 제례를 지내는 토속적 종족춤의 성격으로 풍요로운 수확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원시적인 기원의 춤 현장을 추적해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차킬 스쿼드 아트 커뮤니티(Chakil Squad Art Community)의 <그레지드 니아위지 Greged Nyawiji>는 전통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연극적 성격의 총체극이었다. 화려한 색감의 가면과 의상으로 족자카르타 사람들의 화합을 묘사한 춤극이나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해변무대에 설치된 화면에서 대사를 통역해서 보여주는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베트남 ‘사계절과 포크댄스’ (사진=하봉걸)
베트남 ‘사계절과 포크댄스’ (사진=하봉걸)

베트남의 아라베스크 베트남 댄스 컴퍼니(ARABESQUE VIETNAM DANCE COMPANY)의 <사계절과 포크댄스 4 SEASONS AND FOLK DANCE>는 베트남 농업공동체의 노동 일상을 묘사한 작품으로 베트남 전통의상과 음악에 댄서들의 서구적 테크닉이 잘 융합된 표현력을 갖춘 작품으로 계절의 변화를 의인화시켰다. 특별히 계절감이 강조된 작품의 성격상 바다 바람에 날리는 의상과 동작이 절묘하게 야외무대에 적합하였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오디드 로넨 무용단, 홍콩의 티에스 크루도 함께 공연하였다.

시나브로가슴에 '제로' (사진=하봉걸)
시나브로가슴에 '제로' (사진=하봉걸)

한국팀 중에서는 시나브로가슴에의 <제로>가 가장 인상적으로 마치 해변에 깔린 모래처럼 서서히 움직임의 점증적인 확장성으로 무대에 스며들었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뒤돌아선 채 바다를 보며 추는 의욕은 미니멀하고 반복적인 단순한 동작으로 에너지가 고조될수록 피지컬한 매력이 더욱 발산되며 바닷가 무대와 어우러졌다. 자본주의 가치에 역행하듯 비효율적이고 느린 반복성을 통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비워내는 ‘제로’의 상태 즉 수행적 실천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다. 이어 안영준, 박시종 무용단, 와이즈발레단의 <해적>과 <베네치아의 카니벌> 갈라, 김용걸댄스시어터와 위너스크루의 공연도 이어졌다.

박시종무용단 (사진=하봉걸)
박시종무용단 (사진=하봉걸)

야외 공연은 일기변화가 가장 큰 변수로, 5일 폐막공연은 우천 상황으로 급작스럽게 해변특설무대에서 개막식을 했던 하늘연극장으로 장소를 변경하였다. 운영위의 발 빠른 대처로 공연이 올라간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전날 해변에서처럼 수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공식 초청된 해외단체들은 전날과 다른 레퍼토리를 소개했고 한국팀 중 멜랑콜리댄스 컴퍼니와 쿰댄스 컴퍼니의 작품은 이미 서울에서도 검증된 작업으로 20여분으로 재구성해서 공연을 하였다.

멜랑콜리댄스 정철인 안무의 <위버멘쉬>는 초연 이후 댄스필름으로도 제작될 만큼 여러 번 안무적 변화를 거친 작품이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던져지는 삶의 무게와 질문이 위트 있는 도구의 활용과 유기적인 동작으로 표현된 아이디어가 발랄한 작품이었다. 쿰댄스컴퍼니 서연수의 <집속의 집 ver3>은 현대적인 한국 창작춤의 약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원래 작품에서는 오브제의 활용과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주제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작품이나 부산 공연에서는 짧은 시간으로 압축해 움직임 중심의 군무로 재구성해서 선보였다.

KARTS 무용단 (사진=하봉걸)
KARTS 무용단 (사진=하봉걸)

댄서 신체의 각 부위를 해체시킨 동작 배열에 어깨춤 사위의 절제된 표현으로 정동의 한국적 춤 특성과 현대적인 미감의 조화로운 접점을 잘 포착하여 여성들의 심리 혹은 내밀한 욕망을 보여주었다. 마홀라컴퍼니 김재승의 솔로 <자(子)>도 단단한 근육질의 몸으로 추는 섬세한 한량무의 재해석이 신선했으며, 아버지를 염하는 부채를 사용한 춤사위도 한국적이면서도 세련된 춤으로 구사했다. 이외에도 C2댄스, KARTS무용단, 권해원 등이 작품을 선보였다.

김용걸댄스시어터 (사진=하봉걸)
김용걸댄스시어터 (사진=하봉걸)

2005년 광안리 해변 무대에서 시작한 부산국제무용제(당시 명칭 부산국제해변무용제)는 2008년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고 해운대 무대로 옮겨 국제적인 축제를 지향하였다. 바다라는 천혜자원과 해양 국제도시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국제화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올 해 운영위원장을 맡은 신은주 무용가는 부산국제무용제가 ‘공공성과 예술성’ 확보라는 쉽지 않은 당찬 의지와 지난 운영위들의 헌신적인 토대 위에서 축제를 한 단계 성장시키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18년간 지속·발전해 온 축제이기에 앞으로 지역에 흩어져 있는 무용가를 결집시켜 탄탄한 부산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는 인상이다.

실제적으로 부산대 이외에 모든 무용과가 폐과된 부산지역 대학교육의 난맥 상황에서 창작자를 발굴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따라서 축제 운영위 측에서는 국제안무가 캠프(9월 20-26일 예정)를 개최하여 부산의 창작가들이 국제적 안무 메소드를 경험하며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한다. 또한 곧 준공될 오페라하우스와 복합문화센터의 예술 프로그램과 연계시켜 축제를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하니 부산춤계가 예전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IDF 찾아가는 공연 (사진=하봉걸)
BIDF 찾아가는 공연 (사진=하봉걸)

부산국제무용제가 이제는 명실상부 부산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즐기는 축제로서 다양성과 공공성은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는 판단이다. 이에 테마를 갖춘 프로그램 구성과 공연 시간과 작품성격상 다른 결의 작품 배치 등 일관성과 예술성 있는 차별화된 축제로 진일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남아있는 숙제로 보인다. 특히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은 작품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점도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온 바 축제 측에서 고려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극장춤에 적합한 작품을 재구성 없이 그대로 공연한다거나 클래식 발레의 갈라라 이해되는 측면도 있으나 미끄러운 무대에서 토슈즈를 신으며 추는 춤이 그러하다.

많은 국제춤축제에서 ‘국제’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양적 확장에만 주력하여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부산국제무용제가 몇 개국 몇 작품이란 수치보다는 매력적인 바닷가 야외 공연에 특화된 자연친화적인 작품, 극장과 해변무대 프로그램의 차별화, 전문적인 프로덕션 과정으로 선발된 예술성 있는 작품 선정 등 축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부산 지역을 넘어선 글로벌한 국제무용축제로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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