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예측불가! 유자 왕,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다”
[공연리뷰] “예측불가! 유자 왕,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다”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1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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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왕 피아노 리사이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월 19일
Editor Mari Kim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 칼럼니스트 = 유자 왕(Yuja Wang)은 독특한 패션과 직각 인사로 대변되는 무대 매너 등 연주 외적인 면까지 센세이션을 몰고 다니는 21세기형 아티스트이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연주력에 대해 과연 누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까?

DG에서 속속 발매되는 음반도 어느 것이나 수준급이다. 필자로서는 2019년 LA 필하모닉 내한 연주회에서 존 아담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감상했던 것이 짧고 유일한 경험이었기에 이번 리사이틀이 더욱 흥미로웠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현장감 넘치는 레퍼토리… 즉석 연주

예술의전당 연주 전 진행된 대구와 고양의 리사이틀 레퍼토리가 대부분 현장에서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현장 발표 연주회. 예전에 거장 이작 펄만의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그랬는데, 오랜만이다. 사전 발표된 프로그램 가운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꼭 포함되길 바랐다. 하지만 목록에는 없었다. 못내 아쉬웠지만 대신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 세 곡으로 출발했다.

잘 알려진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가운데 <사랑의 전령>의 친숙한 멜로디는 옹골차면서도 모노톤의 음색으로 기대했던 화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척 정적인 시각에서 작품의 가요성을 억제하며 철학적인 어프로치를 했다. <안식처>는 대조적으로 서사를 통해 드라마를 강조했다. 음색, 박자, 셈여림 등을 대조적으로 증폭시켰다. <마왕>은 폭발적이라는 단어로 담기에 부족한 놀라운 연주였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이어서 레퍼토리를 이색적으로 배치했다. 다채로운 쇤베르크의 음악 세계를 빠른 전개로 질주하듯 들려준 피아노 모음곡과 낭만적 감성으로 가득한 슈베르트의 <헝가리 멜로디>를 연주했다. 넘쳐흐르듯 감성을 터트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메사 디 보체를 구사하며 완전히 숨을 죽였다.

리게티의 연습곡은 그녀를 위해 탄생한 작품 같았다. 6번 <바르샤바의 가을>에서는 그녀가 피워낸 신비로운 안개에 휩싸여 심연으로 추락하는 듯했고, 13번 <악마의 계단>에서는 그녀만의 가공할 테크닉으로 뿜어낸 음향의 폭풍에 휩쓸려 내려가는 듯했다. 이렇게 1부가 끝났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Norbert Kniat)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Norbert Kniat)

2부가 시작되자 필자는 무척 당황했다. 스크리아빈의 <제3번 소나타>와 알베니스의 걸작 <이베리아> 가운데 두 곡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크리아빈 소나타가 요구하는 악마적 기교는 너무나 손쉽게 털어버리면서 고도의 집중력으로 환상적 낭만성을 표현했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하는 거대한 스케르초 악장은 검은 마법의 주술로 홀리듯 인상적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천상의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서정적인 3악장도 빼어났다. 라틴 리듬을 재현하는데 유자의 화려한 기교는 무척 효과적이었다.

<말라가>에선 색채보다는 강력한 리듬의 대조적인 표현이 월등한 효과를 낳았다. <라바피에스>에서는 리듬의 향연 가운데 예민한 음악성을 뽐냈다. 훌륭한 연주였지만 여기서 끝날 수는 없었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Norbert Kniat)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Norbert Kniat)

이제부터 시작, 끝없이 이어진 앙코르

예측불가의 앙코르 무대가 바로 이어졌다. 필립 글래스의 <연습곡> 제6번에서는 잔잔한 파도와 일렁이는 노도가 번갈아 몰아쳤다. 반짝이는 맑고 청량한 음색으로 재즈의 기운이 물씬 풍긴 아르투로 마르케스의 <단손> 제2번은 폭발적인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3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앙코르 무대에는 서양 음악사에 빛나는 불멸의 명곡의 편곡자로 지난 세기와 금세기의 비르투오소가 대거 소환되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제5번>은 죠르주 치프라의 작품이다. 비르투오지티가 강조된 괴이한 편곡의 작품을 개성만점의 독특한 리듬으로 소화했다. 호로비츠가 편곡한 비제의 <카르멘>은 총천연색 기교의 결정판이다. 유자 왕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여준 결정판이었다. 여기에서 연주가 끝난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Norbert Kniat)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Norbert Kniat)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 가곡 <실 잣는 그레첸>과 <물 위에서 노래함>, 멜로디와 반주의 어우러짐이 기가 막혔다. 슈베르트의 시정이 가슴에 촉촉하게 여운으로 남다가도 자유자재인 그녀의 즉흥적 연주로 흥을 더했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제7번 3악장 ‘프레치타토’>. 예리한 리듬의 음표를 끊임없이 강력하게 분출하면서 거대한 스케일의 음악을 구축했다. 정말 열광적인 갈채가 쏟아졌다.

파질 세이와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편곡한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 역시 개성만점이었다. 고성능 모터를 매단 듯 쾌속의 재즈적인 경쾌한 연주였다. 멘델스존 <무언가> 제2번의 마법적인 음색으로 한숨 죽이고, 얼 와일드가 편곡한 차이콥스키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 가운데 <네 마리 백조의 춤>을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현장에서만 가능한 영감 넘치는 즉흥적인 연주로 관객을 굴복시켰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의 <멜로디>로 이 완벽한 1인극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시리도록 투명하고 촉촉한 음색으로 느리고 고요하게 페이드아웃했다.

모두 12곡의 앙코르 무대였다. 왜 세계가 유자 왕의 무대에 열광하는지 실감했다. 피아노 리사이틀이 아니라 완벽한 모노드라마였다. 의도하지 않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출하지만 어떤 각본보다 감동적이다. 앞으로 그녀가 오랫동안 세계 무대의 정점에 설 것 같다. 다음 투어에서는 어떤 연주로 나를 흥분시킬지 벌써 기대된다. 우리 모두 그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든 것 같다.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사진=마스트미디어, ⓒmid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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