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5] 인천에서 만난 다섯 가지 살풀이춤의 미학
[낭만논객의 춤시선-5] 인천에서 만난 다섯 가지 살풀이춤의 미학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08.19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시립무용단 기획공연 ‘토요 춤:담’ 유파별로 본 살풀이춤

[더프리뷰=인천] 장승헌 공연기획자 = 인천시립무용단(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 윤성주)의 기획공연 <토요 춤:담>이 7월 23일(토) 오후 무대에 올랐다. 후텁지근한 장마철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은 관객들로 거의 자리가 메워졌다. 실제로 고정 관객층이 있음을 느낄 만치 매우 진지하고 집중력 있는 관객들의 전통춤 감상 분위기에 짐짓 놀랐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공연장을 찾아온 지인들도 꽤나 많이 눈에 들어왔다. 무용단의 수장 윤성주 감독의 신뢰와 응원의 마음이 저변에 있다는 합리적 추론도 나름 할 수 있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 (사진=양동민)
국악평론가 윤중강 (사진=양동민)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자 인천에서 태어나 유난스레 인천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이 큰 국악평론가 윤중강 씨가 등장했다. 목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이 기획공연의 취지와 함께 각 무용수의 장점과 특기를 한 줄 평으로 요약해 객석의 이해를 넉넉하게 만들었다. 베테랑 국악방송 진행자 출신답게 완급을 조절하며 공연의 의미와 출연자들의 개성을 얘기하니 관객들의 귀에 쏙쏙 전달이 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던 살풀이춤은 명인들의 생전 모습과 춤 영상이 더해져 집중력을 높였다.

이번 출연진은 그간 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무대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않던 30-40대 중견 무용가 다섯 명이다. 지난 4년 동안 윤성주 예술감독이 평소 연습실에서나 정기공연 등 크고 작은 공연 때나 세심하게 지켜본 혜안으로 출연 무용수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들을 촘촘하게 파악, 입단 순서와 상관없이 선정했다는 얘기에 조금은 놀랍기까지 했다. 남도 지역의 애절한 시나위 장단과 살풀이 수건은 물론, 남녀 구음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세상 사람들의 얼굴 생김생김이 모두 다르듯 이번 무대에 선 5명 무용수들의 춤태나 속 깊은 호흡, 그리고 각자 마음과 감정선의 결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묻어났다.

 

한영숙류 신은진 (사진=양동민)
한영숙류 신은진 (사진=양동민)

살풀이춤은 소중한 대한민국 대표적 춤 문화유산이다. 전통춤 여러 종목 중 승무와 함께 가장 친숙하고, 한국 여인의 춤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 본 대표적 민속춤이기도 하다. 윤성주 예술감독은 살풀이춤을 ’어머니‘라고 정의 내렸다고 했다. 필자도 절대 공감하며 나름 그간 ’모성의 춤‘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단아한 여성미로 서정성이 돋보이는 <한영숙류 살풀이춤>으로 신은진 단원이 첫 무대를 장식했다. 신은진은 조심스런 발 디딤새에 고즈넉한 명주수건을 흩뿌리며 초반 다소 긴장감을 보였지만 차츰차츰 관객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적셔주었다. 한영숙 선생의 대표작 <사군자>(매란국죽)를 빗댄, 가을 춤의 대명사인 국화꽃을 연상시켰다.

 

이매방류 김도희 (사진=양동민)
이매방류 김도희 (사진=양동민)

이어진 무대는 이매방(1927-2015)류 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이다. 어린 시절 목포 권번에서 춤과 장단을 배운 이매방 선생은 유일하게 승무와 살풀이 두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기록을 남겼다. 호남(목포)지역 특유의 시나위와 처연한 구음으로 표현되는 슬픔의 극대화가 이 춤의 매력이다. ‘한’이라는 한국춤의 정서를 생전 이매방 선생이 즐겨 쓰던 조바위 복식으로 재현한 김도희 단원에게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한영숙류 살풀이 수건보다 폭이 조금은 넓은 살풀이 수건 춤사위에 명창 안숙선의 구음 파트를 잇고 있는 젊은 소리꾼 어연경의 중저음 구음은 애잔한 아쟁과 대금의 선율과 합을 이루며 춤사위에 슬픔의 감성을 담아냈다.

 

김숙자류 송미록 (사진=양동민)
김숙자류 송미록 (사진=양동민)

세 번째 춤은 <도살풀이춤>이다. 무속춤 분위기가 강한 경기도 지역 <도당 살풀이춤>의 줄임말이다. 특별한 경기지역 무속장단도 이색적이지만 3m 길이의 살풀이 수건의 무게감과 다소 거칠게 휘감는 이 춤은 무속 집안의 계보를 잇고 있던 김숙자 선생의 아버지(김덕순 옹), 그리고 그 윗세대부터 자연스레 가업으로 내려온 생명력 있는 춤이다. 송미록 단원은 ‘무녀적 일탈미’를 강렬하게 펼쳐 보이기보다는 ‘스스로 내려놓고 시작하는’ 춤의 마음으로 재해석했다. 특유의 얼굴 표정으로 뒤돌아보듯 고개를 45도 각도, 지긋한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다본다. 이윽고 서서히 왼손을 휘저으며 무대 하수 쪽으로 무심하게 퇴장하는 모습이 겸허하고 묵직한 세월의 무심함과 한의 응어리를 떨쳐 버리며 이 춤의 의미를 잘 표현해 주었다. 남해안 별신굿 이수자 황민왕의 묵직한 남성구음이 춤의 중후한 내면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다.

 

최선류 김윤서 (사진=양동민)
최선류 김윤서 (사진=양동민)

네 번째는 김윤서 단원의 <최선류 호남살풀이춤>이다. 최선 선생은 이날 공연된 다섯 가지 살풀이춤의 창시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명인이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에 거주하고 있다. 최선류 살풀이춤(전북무형문화재 제15호)의 분위기는 장단처럼 조금은 푸근하고 전북지역의 산세를 닮은 듯 감정의 기복도 다소 낭만적이며 한스러움이 한결 덜하다. 명주수건을 머리 위보다는 앞쪽으로 툭 던지며 발장단과 동시에 직선으로 무심하게 뿌려 수평감을 보여준다. 아울러 살풀이 수건을 무대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는 품위를 유지하는 점이 특색이다. 김윤서는 흰 저고리 남색끝동에 담겨있는 정서와 함께 마치 ‘감춘 것을 드러내듯’ 조심스러움과 멋스러움의 호남살풀이를 자신만의 잔잔함으로 풀어냈다.

 

최현류 임승인(사진=양동민)
최현류 임승인(사진=양동민)

 

마지막 순서는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창작춤 계열의 작품이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다채로운 전방위 예술가(안무가)로, 한때 주연급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던 최현(1929-2002) 선생의 안무작인 살풀이춤 <한>이다. 이 춤은 임승인 단원이 마음으로 담아낸 조선조 여인들의 억눌린 삶의 애환을 살풀이 수건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비장한 표정으로 무대 중앙에 자리하면서 처연하게 시작했다. 이 작품은 신전통 계열의 창작춤으로, 여성 제자가 대부분인 관계로 무대에서 발표된 적이 별로 없었던 춤이다. 임승인은 윤성주 감독의 사사아래 최현-윤성주로 이어진 계보의 살풀이춤으로 존재감을 입증하며 드라마 구조의 서사와 창작춤적 요소들을 나름 잘 보여주었다. 한편 무대 뒤편의 유인상 음악감독을 비롯, 신재현(아쟁) 이진우(거문고) 김선호(대금) 이정훈(피리) 이주홍(타악) 등의 현장연주와 어연경-황민왕의 남녀 구음이 작품의 몰입도를 더했다.

 

‘토요 춤:담’ 출연 무용가 5명 (사진=양동민)
‘토요 춤:담’ 출연 무용가 5명 (사진=양동민)

지난 2018년부터 해마다 색다른 주제로 진행되어 온 인천시립무용단의 이 기획공연은 매우 특별한 기획과 구성력이 돋보인다. <토요 춤:담 ‘춤 담은 자리’> 네 번째 무대인 이번 ‘유파별로 본 살풀이춤 시리즈’는 한국 여인의 ‘한’과 ‘태’ 그리고 ‘멋’이라는 세 단어로 필자는 정의를 내리고 싶다. 장맛비가 내려 습도가 다소 높아진 관계로 살풀이 명주수건이 조금 무거워 보이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다섯 명 중견 단원들의 춤에 대한 진심을 만나볼 수 있었던 무대였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강당을 나와 서울로 돌아가며 드는 생각을 두 세 줄로 정리해 본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직업무용단 소속 무용수들이 스스로 한 뼘 더 성숙해지면서 전통춤(살풀이춤)의 진정성을 반복과 열과 성을 다해 학습한 결과물이다. 하여 무더운 휴가철 저녁, 소확행의 시간을 관객들에게 기꺼이 선물해 주었다는 응원과 격려의 말로 마무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