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멍 때리기'를 차용한 ASMR 사운드 신작
한국문화 '멍 때리기'를 차용한 ASMR 사운드 신작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08.25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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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바티카 개인전 ‘멍 때리기 Hitting Mung’
필립 바티카, '미궁' 210x210cm, 자연석, 2002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대안공간 루프에서 필립 바티카(Philippe Battikha)의 개인전 <멍 때리기 Hitting Mung>가 열리고 있다. 필립 바티카는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로 2019 대안공간 루프 작가 공모에 선정되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예정보다 뒤늦게 열린 이번 개인전은 대중음악에 장악당한 우리의 듣기 문화에 새로운 듣기 형태를 제안하는 관객 참여 프로젝트다. 9월 8일까지. 입장료는 없으며,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이다.

전시의 제목인 ‘멍 때리기’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멍 때리다’라는 문화현상에서 차용했다. '멍 때리기'를 할 때의 목표는 공백, 완전히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멍을 때리기 위해 카페, 영화관, 공연장, 캠핑장 등 다양한 대중문화산업을 이용한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적절한 사용 요금을 지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휴대폰을 만지며 소비한다. 상품화된 절대적인 무(nothingness)의 상태는 결과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는 자본가치로 상품화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가 우리의 여가와 휴식에 진정한 위로가 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멍 때리기' 전시설치 (사진제공=대안공간루프)

전시장 가운데에는 작가가 한국에서 수집한 돌로 만들어진 대규모 나선형 통행로 <미궁 Labyrinth>이 설치돼 있고,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 쾌락반응) 사운드와 작가의 시적 내레이션이 설치작업 <페이시스 Faces>를 통해 재생된다. <미궁>은 미로(Maze)와 달리 막다른 길 없이 계속 순회할 수 있는 산책로이다. 관람객은 작가가 제시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며 돌로 만들어진 미궁을 산책한다. 바티카는 소비, 자본, 물질, 디지털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권유한다.

필립 바티카(1982-)는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가이다. 콘코디아 대학에서 통합음악학(Integrative Music Study)을 전공하고, 스튜디오 아트(Studio Art)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바티카 작업의 핵심은 소리에 대한 집착이다. 막스 노이하우스와 R. 머레이 섀퍼와 같은 사운드 아티스트 및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 시각중심 사회에서 청각 환경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특유의 소리를 재맥락화하고 사운드 설치, 조각 및 통제된 음향 환경에서 특정한 청각적 특성을 노출시킴으로써 바티카는 우리를 둘러싼 소리와 우리가 가진 관계, 그리고 그것이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작가는 트럼펫을 배우던 대학시절 이러한 의문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했고, 10대 시절 직장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워싱턴 외곽에서 음향과 경보 시스템 설치 일을 했던 바티카는 차 문을 닫고 본인이 설치한 음향 시스템을 체험했던 당시를 기억했고, 그때의 경험이 소리와 공간, 나와의 관계를 형성했던 특별한 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이후 소리의 진동과 진동하는 물질, 주변 환경,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관계하는지 맥락화하고, 우리의 감각에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하는지 질문하는 실험을 진행해왔다.

전시 소개

일상 속 모든 것이 경제적 상품 가치로만 평가받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의 듣기 문화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필립 바티카는 기획 상품으로서 대중음악이 우리의 듣기 문화를 장악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회는 새로운 듣기 문화를 제안하는 관객 참여 프로젝트다. 전시는 지금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위안의 가능한 형태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서 작가가 작성한 질문지를 받게 된다. 전시장에 설치된 참여형 작업들은 작가가 제기한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질문들에 대해 관람객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권유한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우리가 멍을 때릴 때 주로 사용되는 평온한 풍경들, 예를 들어 구름 사이로의 비행, 타오르는 불, 고요한 숲 등이 반복적으로 보여진다. 계단을 따라 내려온 지하 전시장에는 작가가 수집한 ASMR 사운드와 작가의 시적 내레이션이 설치작업 <페이시스 Faces>를 통해 재생된다.

전시장 가운데는 작가가 한국에서 수집한 돌로 만들어진 대규모의 나선형 통행로 <미궁 Labyrinth>이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은 입구에서 받은 작가의 질문에 대해 생각하며 돌로 만들어진 미궁을 산책한다. 공간을 똑바로 걷는 일반적인 습관을 벗어나 오직 한 갈래의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걷게 하는 행위는 사색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되었다. 미궁 한가운데는 명상종이 설치되어 있고, 관람객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자본과 디지털의 진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상품화했고, 기기에 종속시켰다. 인간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ASMR는 유명 유튜버의 수익 사업이 되었고, 개인의 휴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조차 돈을 지불해야 하는 콘텐츠로 강요된다. 바티카는 관람객이 걷는 신체적 행위와 청각적 경험을 스스로 수행하는 동안 개인의 여가가 어떻게 상품화되고 있는지 행동과 성찰을 통해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멍 때리기>는 소비, 자본, 물질, 디지털 문화로부터의 해방과 아날로그적 상상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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