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발트해에서 몰아친 음악의 폭풍우, 한반도를 강타하다
[공연리뷰] 발트해에서 몰아친 음악의 폭풍우, 한반도를 강타하다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03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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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파보 예르비
2022년 9월 5일 수원 경기아트센터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파보 예르비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파보 예르비 (사진제공=경기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 칼럼니스트 = 지난 9월 5일.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한 날이었다. 폭우를 뚫고 수원 경기아트센터를 찾았다. 파보 예르비가 12년 전 창단한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첫 한국 투어의 마지막 연주를 듣기 위해서였다. 예르비가 직접 선발한 에스토니아의 음악가들로 구성하여 2011년 페르누 음악축제의 상주 오케스트라로 데뷔한 단체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표방하는 그들은 서울, 대구, 통영을 거쳐 수원에서 연주했다. 이날의 메인 디쉬는 시벨리우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교향곡 제2번>이었다. 

예르비는 그동안 내한 무대에서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 계열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뤘으나 앵콜 무대는 언제나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를 빼놓지 않을 정도로 그의 시벨리우스 사랑은 남다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 네메 예르비는 시벨리우스의 대가이다. 예테보리 오케스트라와 남긴 교향곡 전곡은 자연스럽고 호방한 사운드로 북구의 대자연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평단의 호평을 받아온 유서 깊은 음반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사진제공=경기아트센터)

역동적이면서 공격적으로 치고 나가며 개시부를 전개할 때 이 연주가 거대한 스케일의 우람하고 호방한 드라마로 막을 내릴 것이라고 쉽게 예감할 수 있었다. 북구 대자연의 심상을 떠올릴 수 있는 스토리 텔링은 없었다. 흔히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 부여하는 민족주의적 의미 부여를 무색하게 했다. 끊임없는 긴장과 이완 그리고 수렴과 발산이 극적인 드라마와 소리의 향연을 이끌어내며 사운드의 거대한 성을 축조해 갔다. 쉼 없이 몰아세우며 긴장을 고조하여 과장스러운 과격함으로 펼쳐나간 제2악장은 강렬하고 어두운 포연으로 자욱했다. 지축을 흔드는 듯한 요란함으로 서두를 이끌다가 이내 따스한 목관 앙상블의 목가로 대비시킨 제3악장은 지휘자의 연출력이 돋보인 대목이다. 이 부분이 하일라이트가 아닐까 했다. 하지만 제4악장에서 에스토니아발 음악의 폭풍이 수원을 강타했다. 점증적으로 고취되는 고양감으로 가득한 연출을 예상했으나 다짜고짜 휘몰아치며 에너지가 분출된 '상남자 시벨리우스'였다. 아비규환의 혼돈을 거쳐 환희의 송가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단원 모두 흥에 겨워 무아지경에서 연주했다. 승리에 도취된 듯한 몸짓과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왜 예르비가 이 단체를 가리켜 '그들의 오케스트라'라고 칭했는지 실감 났다.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사진제공=경기아트센터)

1부와 2부의 모두에서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에스토니아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했다. 2부 서두는 지휘자와 학창 시절의 친구 에르키 스벤 튀르의 <십자가의 그림자>로 장식했고 1부는 거장, 아르보 패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로 시작했다. 경건한 종소리로 시작하여 시린 스트링의 하모닉스가 숙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주제 선율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청중 모두 경건함에 빠져들었다. 영혼이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은 이미 예르비가 지난 2014년 도이치 캄머오케스트라와 내한했을 때 테츨라프 남매를 솔리스트로 초청하여 인상적인 연주를 남긴 바 있다. 이처럼 깊은 애정을 가진 레퍼토리를 연주하며 이 오케스트라 초기부터 동고동락한 트린 루벨과 마르셀 요하네스 카츠에게 협연을 맡긴 것은 그들에 대한 각별한 기대감을 반영하는 듯했다. 페르누 페스티벌과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요체를 한국 무대에 소개하고자 했던 강력한 의사 표명이 아닐까 한다.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협연하는 트랜 루벨(왼쪽)과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 (사진제공=경기아트센터)

언제나 그랬듯 '슬픈 왈츠‘로 마지막을 장식했으나 그 언제보다 강렬하고 극적인 연주였다. 가다듬지 않고 꾸며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음악. 그간의 연주와는 다소 다른 양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음악이야‘라고 웅변하는 듯했다.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포스터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포스터 (제공=경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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