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닮은 듯 다른 두 저음가수의 실험무대
[공연리뷰] 닮은 듯 다른 두 저음가수의 실험무대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1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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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 윤·김기훈 듀오 콘서트 ‘도플갱어’
도플갱어-라운드테이블. 사무엘윤(왼쪽)과 김기훈
도플갱어-라운드테이블. 사무엘 윤(왼쪽)과 김기훈 (사진제공=마포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9월 27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독특한 무대가 열렸다. 금년 5월 독일 쾰른에서 궁정가수 칭호를 수여받은 사무엘 윤과 지난해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우승자 김기훈의 듀오 콘서트였다. 베이스 바리톤과 바리톤, 두 저음 성악가의 만남은 ‘도플갱어’라는 테마로 이루어졌다. 사무엘 윤이 기획한 이 무대는 두 성악가가 한 사람을 표현하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무대 한 가운데 피아노가, 그리고 피아노의 양 옆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도플갱어의 콘셉트로, 두 사람은 절망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는 한 인물을 연기했다. 두 사람은 모든 곡을 번갈아 부르거나 함께 불렀는데, 어둡고 몽환적인 노래들을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모습은 청중에게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음색과 창법, 표현력이 다른 두 사람이 감정에 몰입하니 한 사람으로 느껴져 거울을 보는 듯했다.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순간에도 의자와 테이블을 활용해 연기를 펼쳤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가곡 <도플갱어>. 깊은 밤, 조용한 거리를 지나 옛 연인이 머물던 집을 찾은 이를 내려다보는 도플갱어. 침잠하는 듯한 피아노 위로 창백한 달빛처럼 깔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율을 일으켰다.

이어서 <죽음과 소녀>, 베토벤의 <이 어두운 무덤에> 그리고 브람스의 <죽음은 차디찬 밤>과 <다시 네게 가지 않으리>, 이어서 슈베르트의 <까마귀>까지. 주위의 공기는 무거운 슬픔과 우울함으로 꽉 찼다. 김기훈이 스토리를 펼치듯 노래한다면 사무엘 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노래의 가사와 감성을 공유하며 한 남자의 슬픈 서사를 쌓아나갔고, 청중은 빠져들었다.

'도플갱어' 콘서트에서 열창하는 사무엘 윤(왼쪽)과 김기훈 (사진제공=마포아트센터)

이어서 피아니스트 정태양이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피아노 솔로로 연주했다. 죽음과 사랑을 동시에 충만하게 표현하는 곡으로는 이 곡만한 곡이 없으리라. 정태양의 피아노 선율이 아름답고 묵직하게 흐르고, 이어서 사무엘 윤과 김기훈은 클라라 슈만의 <나는 어두운 꿈속에 서 있었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을 불렀다. 어두움이 깊어지면 아침이 밝아오듯,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간 남자도 내일은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부는 바리톤과 베이스가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리아들을 듣는 귀호강 시간이었다. 김기훈이 오페라 <팔리아치>의 토니오의 프롤로그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무대를 열었다.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김기훈의 노래에 환호하자마자 객석 끝에서부터 사탕을 뿌리며 <사랑의 묘약>의 둘카마라가 나타났다. 사무엘 윤은 사탕 바구니를 들고 객석을 돌며 요란하게 등장, 청중을 들었다 놨다하며 최고의 둘카마라를 노래했다.

김기훈이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를 노래하고, 사무엘 윤은 바질리오를 노래했다.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를 부르며 무대를 휘젓는 김기훈을 보며 호흡의 단단함에 놀랐다. 사무엘 윤의 능청스러운 ‘험담은 산들바람처럼’도 청중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바리톤 김기훈 (사진제공=마포아트센터)

그리고 구노의 <파우스트>의 명곡들이 이어졌다. 김기훈은 발랑탱의 아리아 ‘이 곳을 떠나기 전에’를 불렀다. 고결한 기도가 하늘에 닿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무엘 윤은 ‘내 사랑 들리지 않는가’로 사악한 유희를 즐기는 메피스토펠레로 변신했다.

베르디의 노래들도 선보였다. <아틸라>의 아리아들, 그리고 <오텔로> 이아고의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를 들을 때 저음 가수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무엘 윤 (사진제공=마포아트센터)

20년 차가 나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과 에너지로 팽팽했던 무대였다. 고음 가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무대도 객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무엘 윤·김기훈 듀오 콘서트 ‘도플갱어’는 마포문화재단 주최 M클래식 축제의 일환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두 성악가는 팬들과 사진을 찍으며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사무엘 윤은 “클래식 공연들이 다시 부흥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며 이 무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노래처럼, 팬데믹으로 좌절했던 음악인들에게도 내일의 태양이 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정태양과 김기훈, 사무엘 윤 (사진제공=마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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