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마리아 주앙 피르스 피아노 독주회
[공연리뷰] 마리아 주앙 피르스 피아노 독주회
  •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29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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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앙 주앙 피르스' 공연사진 (사진제공=김준형)
마리앙 주앙 피르스 연주 장면 (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그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오케스트라 협연자로만 한국에 왔던 마리아 주앙 피르스(Maria João Pires)가 지난 11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처음으로 솔로 리사이틀을 가졌다. 너무 늦은 솔로 데뷔 무대이지만 그만큼 더 강렬한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건강상의 이유로 올해 유럽에서도 잦은 연주회 취소가 이어져서 이번 내한공연도 내심 불안했던 만큼 여러 모로 가슴 졸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마리앙 주앙 피르스' 공연사진 (사진제공=김준형)
마리앙 주앙 피르스 연주 모습 (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이번 첫 리사이틀의 메인 레퍼토리는 슈베르트의 두 개의 소나타 D.664와 D.960, 그리고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이 작은 체구의 피르스가 선택한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318. 화려하면서도 청량한 사운드를 내는 모델로서 피르스는 이 악기의 모든 가능성을 디캔딩한 후 활짝 열리게 만들어주었다.

첫 곡인 슈베르트 <소나타 D.664> 1악장부터 그녀는 영롱한 사운드와 다채로운 톤 컬러를 선보이며 가뜩이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향연인 이 작품에 더 진한 향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조금 덜 안정된 모습과 불안한 패시지도 보였지만, 의자를 고쳐 앉은 뒤 이내 2악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타일과 연주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심연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듯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빛을 발산하는 사운드와 연주자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긴장감 높은 루바토를 통해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 뒤, 3악장에서는 빠른 템포와 개성적인 프레이징을 통해 자신의 음악성을 온전히 드러내보였다.

'마리앙 주앙 피르스' 공연사진 (사진제공=김준형)
마리앙 주앙 피르스 무대인사 (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컨디션 탓인지 옥타브나 도약이 살짝 힘들어 보였고, 특유의 둔탁한 듯 울리는 매력적인 중저역 화음을 만들 때 건반을 낮은 위치에서 미는 듯한 주법을 사용한 덕분에 자주 의자가 뒤로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피르스가 보여준 이 찬연한 음향에 비하면 이러한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드뷔시에서 그녀는 터치와 음색, 다이내믹과 프레이징, 음향과 공간감이 혼연일체를 이룬 경이로운 순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첫 프렐류드의 신비로운 화성과 별빛 같은 분산화음부터 청중을 단박에 사로잡았는데, 특히 달빛에서의 그 숨막히는 음색의 조탁과 매끄러운 운율, 강약의 미세한 대비와 특유의 급박한 패시지 전환이 불러일으키는 음향의 환기는 역시 거장만이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피아노의 예술이었다.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노거장이 연주하는 D.960을 듣노라니 알리시아 라로차의 마지막 내한공연이 연상되었다. 테크닉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되는 저 향건(香鍵)의 숨막히는 파노라마란... 베르만이나 바두라-스코다, 데무스, 부흐빈더 등등의 남성적인 D.960과는 스타일에 있어서 전혀 다르지만 그들과 같은 반열에 서 있는 피르스의 그 고아(古雅)한 이야기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던 순간이었다. 독보적인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비르살라제나 부드러운 고전주의자인 레온스카야, 청아하고 날렵한 우치다 같은 동시대 여류 피아니스트들의 슈베르트에 더하여 피르스의 이 역동적인 듯 디테일이 강하며 강한 설득력을 발산하는 슈베르트 또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리앙 주앙 피르스 (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마지막 앙코르인 드뷔시 <아라베스크>의 그 쏟아지는 찬란함이 공연장을 나온 뒤의 밤하늘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앞창문에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들이 반사하는 영롱한 빛들이 곧 피르스의 터치 같음을 잠시 뒤에야 인식하게 되었다.

이날 관객석에는 그녀의 오랜 파트너인 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이가 앉아있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릴 자신의 리사이틀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피르스의 리사이틀에 참석한 그는 음악을 듣는 내내 리듬과 박자를 타는 손짓을 해가며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함께 녹음한 음반만큼이나 감동적인 지음(知音)의 현현(顯現)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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