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5) -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5) -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2.12.03 0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출산의 낙엽사진(사진제공=김윤정)
월출산의 낙엽 (사진=김윤정)

중년과 맞닿아 있는 가을

[더프리뷰=서울] 거리마다 쌓이고 치워지고, 또 쌓이는 낙엽들. 벌써 12월이다. 마지막 잎새까지 떨어뜨리기에는 아직은 바람이 미약한 날들이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마지막 잎을 다 떨구어야 마른 가지에 눈이 쌓이고 다시 녹고 하다가 봄바람이 불면서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그러니까 한 해 동안 푸르렀던 낙엽은 이제 다음 돋아날 새 잎을 위해 빈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쩐지 조금은 뜬금없는 듯한 이 질문은 내가 최근 공연 중에 던졌던 대사다.

나는 가끔 삼천포로 빠지기를 좋아하는데, 대화를 하다가 어떤 각론이나 토론의 끝에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기를 좋아한다.

나는 가끔 완전하리만큼 찬란한 빛으로 물든 채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단풍을 보면서 중년의 내 인생의 시간과 맞닿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에도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이 클리셰한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면서 말이다.

언젠가 길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친구를 보고 너무 놀라 그녀를 부축하듯이 일으켜 세우며 자초지종을 물은 적이 있었다. 친구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방금 이별을 고하고 떠나는 남자친구를 잡으려고 따라가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되고 난 후 들은 이야기는 조금은 어처구니없지만 어느 정도 공감도 갔다. 그러니까 그녀는 타인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바닥에 쓰러진 채 자기만의 비탄의 세계를 온전하게 누리고 있었는데, 친밀한 침입자가 그 공기를 깨고 들어와서 자신만의 슬픔을 방해했다며 원망 아닌 원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밖에서 보이던 비참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 순간조차 그녀는 자신만의 슬픔의 세계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소멸해가는 낙엽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는 인간, 어떤 고통도 그 내면 깊숙이에서 즐길 줄 아는 인간은 참으로 희한한 동물임이 분명하다.

인터뷰 공연사진(사진제공=김윤정)
'인터뷰' 공연 장면 (사진제공=김윤정)

셀프 인터뷰

나는 몇 년 전에 셀프 인터뷰 형식을 띤 한 시간짜리 솔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안무와 연출만 하다가 나이 오십에 그야말로 정말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힘에 겨운 무게를 짊어지기도 해야 한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의지로 공연을 했었다. 현대사회는 그야말로 현실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스피드 있게 돌아가고 있어서 창작된 것들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과연 나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작은 블랙박스에 가두고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럴 권리가 예술가들에게 있는가? 라는 자기검열적인 화두에 부딪히면서도 역설적이지만 그런 때일수록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내 안으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인생의 경험과 모험을 통해 삶에서 마주친 대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셀프 인터뷰 형식을 띤 모노댄스 씨어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인터뷰 공연사진(사진제공=김윤정)
'인터뷰' 공연 (사진제공=김윤정)

첫째, 인간은 육신 안에서 무력해지지만 정신을 통해서 자유롭다. 나는 당시 반연골파열로 무릎 수술을 받고 목 디스크까지 겪고 있었는데, 노쇠해가는 몸과 성숙해가는 정신의 간극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둘째, 그동안 각종 춤 잡지 등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늘 비슷한 질문들에 뻔한 대답들을 할 수 밖에 없어 답답했는데 차라리 내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나는 작품을 하면서 내 삶의 일상이 어떻게 나의 작업과 연결되어 가는지를 말하고 싶었고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적인 것들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고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대 위의 행위자인 내가 묻고 내가 답하는 셀프 인터뷰 형식의 솔로를 만들기로 했다.

세째, 독일 파트너가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자기는 주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판단하고 왈가왈부하게 두고 싶지 않아서,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스스로 말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했는데 나도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이나 글을 쓰듯이 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몸으로 표현하는 춤꾼이 어떻게 나의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하다가, 세상이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고 내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질문들에 답하는 형식으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인터뷰 1.5 공연사진(사진제공=김윤정)
'인터뷰 1.5' 공연 (사진제공=김윤정)

인터뷰 1, 인터뷰 1,5

그렇게 다소 거창한 이유들로 솔로를 하기로 했는데 막상 오십년을 넘게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막막하기도 했다. 정신은 성숙해가는 반면 몸은 노쇠해가는 자연현상 앞에 부딪힌 현실, 그리고 당시 지원금 수혜에서도 배제된 현실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공연예술 뿐 아니라 모든 예술들이 점점 자본(권력)과 예술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필연적으로 높아가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니 사기저하됨 앞에 굳이 니체의 초인정신까지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어야 했다. 니체는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며 이는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라고 말했다.

건너가는 것도 위태롭고, 지나가는 도중도 위태롭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태롭고,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도 모두 위태로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두 존재 사이에 놓인 불안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불안하지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기로 했다. 조금씩 진보하는 듯한 내 성숙함의 일부를 창작하는 행복과 바꾸고 싶다는 열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늘 변화하는 다양한 관점들의 다양한 상황들을 보면서 한 개인의 확신과 신념이 부질없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믿는 것을 찾고 그것을 표현해야 하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큰 행복이기도 하다.

인터뷰 1.5 공연사진(사진제공=김윤정)
'인터뷰 1.5' 공연 (사진제공=김윤정)

나름대로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에 관한 메모들이 적힌 안무노트를 가지고 연습실에 들어서던 첫날의 그 묘한 두려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많은 질문들 앞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거지? 머릿속이 하얘지던 그 첫날에서 지금까지의 여정이 다 스쳐 지나간다. 예술은 착상에서 형식을 만들고 또 결과물로 보여줘야 한다. 즉 형상화되어야 한다. 형상화하려면 움직여야 한다. 표현해야 한다. 어떻게? 오랫동안 관찰자로서 무용수들과 작업해 왔던 나로서는 행위자와 관찰자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 힘겹고 외로운 작업이었다. 그야말로 빈 공간에서 나를 정면으로 대면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절대고독은 내 자신 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고독과 두려움은 견딜만해 진다는 경험도 나에겐 값진 경험이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과물(작품)을 올리게 되었다. 공연을 하는 동안 무대감독님의 사인을 받고 무대에 들어서면서 이 막을 제치고 들어가면 한 시간 동안 등퇴장 없이 나 홀로 한 시간을 무대에서 견뎌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깊게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막상 무대에 들어서면 어떤 긴장이나 책임감을 느낄 사이 없이 내 작품 속에 몰입하며 한 시간이 훅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면 끝이 나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인터뷰 1.5 공연사진(사진제공=김윤정)
'인터뷰 1.5' 공연 (사진제공=김윤정)

그리고 최근에 나는 시댄스 페스티벌(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다음 버전의 인터뷰로 가기 위한 브릿지로 <인터뷰 1,5>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에는 음악을 하는 아들 유진이가 만든 음악으로 무대에 서서 춤을 춘다는 감회도 개인적으로 새로웠다. 나는 이 공연에서 지난번 <인터뷰>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시작하고 그 다음 버전의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끝나는 중간 지점의 공연을 올린 것이다.

그러니까 끝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공연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작품은 사회규칙과 규범에 따르면서도 이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창조적인 개인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동시대적인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때로는 질문도 답도 뒤엉키는 부조리한 상황에 부딪히며 그것을 표현해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질문에 대한 나의 화답은 추상적인 춤으로, 책을 읽으면서 답을 하는 걸로, 또는 일상적인 행위로, 어떤 질문들은 무시되기도 하고, 동문서답이 되기도 하고, 또는 과거 나의 작품들의 한 장면을 소환하기도 하면서 셀프 인터뷰를 채워갔다.

렘 쿨하스의 책(사진제공=김윤정)
렘 쿨하스의 책 (사진=김윤정)

질문으로만 쓰여진 책

우리는 모두 무언가 생각하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그것들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평소 모르던 영어 단어 하나를 인지하면 어디선가 그 단어가 자주 보이고, 어떤 노래가 문득 떠오르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그 노래가 불쑥불쑥 들려오는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나는 질문들로 채워지는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우연히도 질문들로 이루어진 책들이 내 손에 들어와서 참고를 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 1944-)가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농촌(시골)이 우리의 미래다’라는 전시를 하면서 출간한 책 <Countryside a report >라는 책이 있는데, 건축가이면서 기자였고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그답게 묵직한 철학적 질문들로만 쓴 책이다.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 칠레 시인)의 <질문의 책>이라는 시집도 초현실주의적이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질문들로만 쓰여진 책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질문에서 인생은 시작된다. 그리고 질문은 질문 그 자체로 답을 찾는 것만큼 중요하다. 여기서 두 사람의 책 속에서 인상적인, 내가 참고했던 질문들을 옮겨본다.

렘 쿨하스의 질문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믿어야 하나?

물체들은 서로에게 할 말이 있을까 ?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누가 결정하지?

왜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지? 죽음을 축하할 수는 없는가?

데카당스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결정하는 것인가? 그것은 의지가 필요한가?

우리가 믿었던 과학과 정치는 우리를 난국에서 구했나?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들

버려진 자전거는 어떻게 그 자유를 얻었을까?

항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고통스러운가?

4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4일까?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또 있을까?

그라펜베르그 숲 산책길(사진제공=김윤정)
그라펜베르그 숲 산책길 (사진=김윤정)

낙엽처럼 쌓이는 질문들

내 인생도 일년의 계절에 비교하면 가을쯤 온 것 같다. 이 늦가을날 거리의 낙엽들처럼 쌓이는 내 작품 속 질문들을 하나씩 흩날리면서 겨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름이 없다면, 습득된 것들을 기억상실로 다 잃어버렸다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네가 하는 일, 네가 이루어 놓은 것과 너 자신이 별개라면?!!

되고 싶은 나가 아닌 그냥 존재하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랑이란?

춤이란 무엇인가? 왜 춤을 추는가? (완벽하게 존재하고 완벽하게 사라지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 (내 안에 죽어있는 모든 것들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는 작품)

다시 한 번 사랑이란? (사랑은 언어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에게 비극은 매순간 감정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 변하는 순간 무너지는 순간들, 그리고 그 파장을 표현한다면?

지나간 날들 중 행복이란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순간은? 그리고 슬픔이 떠오르는 순간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어린 시절 집에서 학교 가는 그 길은 어땠나?

걷고 싶어, 뛰고 싶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지? 누가 세상을 돌리는 힘 있는 자들이지?

네가 받은 교육은 진실인가?

뉴스에서 하는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누구를 위한 진실일까?

환생이 있을까? 끝이 있을까?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죽음의 끝은 어디인가?

내가 죽으면 나의 그림자는 어디로 갈까?

신이 있어? 어떻게 알아? 신을 믿어? 왜?

지금 무슨 생각해?

이미지가 먼저인가, 언어가 먼저인가?

나는 내가 되기 전에 무엇이었을까?

왜 나는 네가 아니고 나일까?

우리가 사랑했었다는 걸 미래의 시간에게 어떻게 알리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다고 어떻게 말하지?

말이 사라지면 뭘 할 거야?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