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공연리뷰]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 김광훈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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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사진(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사진(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더프리뷰=서울] 김광훈 바이올리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 바이올린 역사상 최고의 대가 중 한 사람이었던 나탄 밀슈타인(Nathan Milstein)은 일찍이 오귀스탱 뒤메이(Augustin Dumay, 1949-)를 일컬어 “최고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뒤메이는 벨기에에서 아르튀르 그뤼미오(Arthur Grumiaux)를 5년간 사사했는데, 그의 술회에 따르면 정작 그뤼미오가 연주 투어로 너무 바빠서 자주 레슨을 해 주지 못했고 레슨에서조차 뒤메이는 그뤼미오의 가르침과 음악적 방향을 따르지 않았던, 소위 말해 ‘좋지 못했던’ 학생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사실 뒤메이의 연주에서 그뤼미오의 특징적 스타일, 어떤 기품이나 우아함을 확인하기란 힘들다. 그보다는 마치 율리안 라흘린(Julian Rachlin)의 연주를 듣는 듯, 특정한 프레이즈에서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들려주는, 오소독스(Orthodox, 정통)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연주를 펼치는 플레이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면모 때문에 필자에게 뒤메이는, 진정한 의미의 거장은 아닐지 몰라도, 몹시 흥미롭고 매력적이며 동시에 호기심을 자아내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사진(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사진(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이날 연주에서 뒤메이는 73세라는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의 정확성과 특유의 사운드를 유감없이 들려주었다. 뒤메이의 오랜 실내악 파트너이기도 했고 이날 뒤메이 공연 수일 전 내한 연주를 했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ãn Pires)와 독주회를 함께하지 않아 아쉬웠으나 한국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민(Klara Min)이 이 날 뒤메이와 호흡을 맞췄다.

프로그램의 첫 곡으로 슈만의 3개의 <로망스, Op. 94>가 연주되었다. 원래는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연주될 예정이었고 이 소나타를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다소 아쉬운 프로그램 변경이었다. 러시아의 전설, 레오니드 코간(Leonid Kogan)이 쓰던 1743년 과르네리 델 제수의 첫 일성(一聲)은 스트라드로 착각될 정도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리였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롯데콘서트홀을 채우기에는 볼륨에 부족함이 있었고 프로그램 내내 바이올린 독주회 공간으로서 롯데 콘서트홀의 사운드에 의문을 갖게 됐다.

뒤메이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사이클 전집 녹음은 역사적 명연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뒤지지 않을 연주를 담고 있고 그중에 1번 소나타의 연주는 특히 인상적이다. 이날 라이브 연주를 통해 뒤메이는, 비록 베토벤의 오리지널에서는 멀어졌을지라도, 뒤메이 본인의 지문을 확실히 아로새긴 연주를 들려주었다. 뒤메이는 이후의 프로그램들에서도 꾸밈음들이나 짧은 음표들을 각 활(seperate bow)로 처리하며(베토벤, 모차르트), 동시에 프레이즈를 짧게 나누고 내림활 시작을 즐기는(프랑크)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모든 특징적 활 쓰기와 개성이, 바로 뒤메이를 뒤메이답게 만드는 장점인 동시에 오리지낼리티가 가지는 정통성과는 다소 멀어지는 결과를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베토벤 2악장에서 들려주는 마법 같은 음색과 뒤메이 특유의 세련미는, 곡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다만 피아니스트 클라라 민은 1악장에서부터 잦은 미스 터치를 범했고 동시에 공연장 특유의 지나친 울림으로 발음이 분명치 못했던 아쉬움을 남겼다.

'오귀스탱 뒤메이 바이올린 연주회' 사진(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인터미션 후 모차르트 <소나타 G Major KV 301>에서는 베토벤보다 설득력이 떨어졌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기술적 이유 이외에도 곡에 대한 몰입감과 집중력이 떨어진 탓으로 느껴졌다. 뒤메이는 많은 경우 음악의 정수에 다가가 그 안에서 긴 라인을 형성하기보다, 치고 빠지는 형식으로 음악의 순간적 매력과 효과를 드러내고 잠시 그 순간에서 빠져나와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진입하는 전개를 자주 보여줬는데, 이러한 온 앤 오프(On & Off)의 잦은 음악적 처리(?)가 음악의 중심에 오롯이 서 있는 느낌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리사이틀 최후의 곡인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뒤메이는 온건함과 강건함을 적절히 구사하며 감칠맛 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굳이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한다는 이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뒤메이는 프랑크 소나타가 요구하는 음색의 변화와 표현의 음영을 독자적인 취향으로 요리해 냈다. 뒤메이는 확실히 구조감이 필요한 고전 소나타에서보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에서 멋진 순간을 만들 줄 아는 연주자로 보였다. 수차례의 커튼콜 이후 뒤메이는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시칠리안>을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70을 훌쩍 넘긴, 하지만 연주는 결코 노쇠하지 않은 노대가의 담담한 앙코르에 청중들은 환호했고 뒤메이는 넉넉한 미소로 화답했다.

김광훈 음악칼럼니스트
김광훈 음악칼럼니스트
38kdd@hanmail.net
바이올리니스트.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KCO) 단원이자 한양대 겸임교수. 월간 <스트라드>에 음악 칼럼니스트로 20년 이상 기고하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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