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박창수, “자유 앞에 홀로 선”
[공연리뷰] 박창수, “자유 앞에 홀로 선”
  • 강창호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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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의 Free Music '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Ⅱ'
박창수의 Free Music (사진제공=©김신중,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의 Free Music ©김신중(사진제공=더하우스콘서트)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공연칼럼니스트 = 박창수의 <Free Music> 두 번째 리사이틀이 지난 1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4년 전(2019년 3월 7일) 리사이틀을 접하지 않았던 관객이라면 이번 무대의 첫 장면은 색다른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BGM을 연상케 하는 해금(마혜령)과 재즈 기타(민영석)는 이번 공연의 인트로 전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며 공간을 채색해 나갔다. 이윽고 어둠 가운데 등장한 박창수, 서서히 무대 한 켠에 드러눕는다. 이 장면은 지난 드라마의 마지막 컷을 보듯, 새로운 무대를 이어나가는 그의 시즌 2를 상징하는 듯했다.

박창수의 Free Music (사진제공=©김신중,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의 Free Music ©김신중(사진제공=더하우스콘서트)

신비감을 장착한 해금과 기타는 2층 발코니 좌, 우에서 스테레오 효과처럼 입체적인 음향을 구사해 갔다. 그들의 음악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박창수의 침묵을 애써 훼방하려는 듯 긴 시간 동안 박창수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은밀하고도 자극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주거니 받거니 얽히고설킨 그들의 푸가는 어느덧 박창수와 피아노만 남긴 채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후 긴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솔로를 펼친 박창수. 심지어 어느 순간 눈에 안대까지 착용했다. 침묵의 시간을 지나 시야를 차단한 그는 홀로 격리된 듯한 외로운 시간 속에서 소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가린 그의 모습이 마치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의 <희망 Hope>이라는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런던 테이트 미술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두 눈을 천으로 칭칭 감은 소녀가 낡고 초라한 리라(Lyre)를 붙잡고 지구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심지어 악기의 현조차도 다 끊어진 채 두어 줄만 남았다. 그림의 느낌과는 달리 '희망'이라는 제목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새벽 미명은 '가장 어두운 순간이 지나야 밝아온다'라는 말처럼 박창수도 어쩌면 이러한 희망을 그렸을까?

조지 프레데릭 왓스(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의 '희망 Hope'
조지 프레데릭 와츠 (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의 '희망 Hope'

박창수의 클래식

점점 증폭되는 거대한 하모니, 집요하리만치 특정 음을 타건하는 소리가 마치 피아노를 전혀 다른 악기로 둔갑시켜 버린 듯했다. 음악의 3요소를 골고루 갖춘 '악기의 왕'은 철과 나무의 소리로 변신해 박창수 내면의 소리를 대변했으며, 관객은 모두 집단최면에 걸린 듯 그의 예술 속에 빠져들었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를 박창수만큼이나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클래식은 그를 통해 분해되고 해체되어 전혀 다른 형태로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영혼을 자극했다. 응집된 음향들은 또 다른 클러스터를 이루며 굉음으로 변신해 공간을 찢었다. 이렇게 클라이맥스의 산을 넘고 넘은 소리들은 어느 순간 고요한 정적을 이루며 그 속의 무음을 즐기듯 침묵의 시간을 유영했다.  

박창수의 Free Music (사진제공=©김신중,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의 Free Music ©김신중(사진제공=더하우스콘서트)

모두의 호흡이 공존하는 IBK챔버홀 공간이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라면 피아노와 해금, 기타는 색을 더하는 물감이었으며, 그의 행위는 이 모든 오브제를 버무려 채색을 이루는 붓이자 손과 발이었다. 순간 누군가 난입해 춤이라도 춘다면 그 또한 즉흥과 우연성을 기초로 한 이번 무대가 또 다른 예술의 현장이 될 법한 상황이기도 했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무대는 보다 더 농밀하게 관객을 자극하며 새로운 시도를 오로지 '피아노'라는 오브제를 통해 공간을 두드렸다. 비록 극장측으로부터 피아노 사용에 다소 제약을 받았지만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그는 타건만으로도 다른 세상을 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박창수의 Free Music (사진제공=©김신중,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의 Free Music ©김신중(사진제공=더하우스콘서트)

No Score 그리고 박창수

그의 예술세계는 오래 전에도 그랬듯 일반적인 범주에 있지 않다. 그가 프로그램 노트에서 프리 뮤직은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또한 예측이 불가한 아티스트다. 따라서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종이 위에 그려진 텍스트가 필요 없다. 음악의 발전이 소리를 표기하는 기보법에 있다지만 그에게는 그마저 불편해 보인다. 그의 예술적 판타지는 악보라는 한정된 프레임에 담을 수 없기에 그렇다.

과거 서울대에서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강석희 교수라면 고전 전통주의를 지향한 작곡가는 백병동 교수였다. 한 마디로 백 교수 앞에선 얄팍한 허툰 수가 통하지 않는다. 1986년 당시 백 교수의 까칠한 카리스마는 작곡과 학생들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백 교수가 던졌던 말이 참으로 기이하게 되살아난다. "박창수 같은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절대로 나올 수 없다"라는 그의 단언은 당시 어록이자 예언이 되었고 오늘날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있다.​

이번 시즌 2를 통해 박창수는 어떤 자유를 누렸을까? 휘몰아치듯 쓸고 지나간 가족사의 아픔을 뒤로하고 곱씹으며, 한음 한음 누르는 그의 모습에서 영혼을 향한 또 다른 위로가 느껴진다. 적어도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자유롭고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박창수. 공간을 통제하는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내뿜는 그의 모습에서 ‘박창수를 대신할 사람은 이 행성에 존재치 않는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박창수의 Free Music (사진제공=©김신중,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의 Free Music ©김신중(사진제공=더하우스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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