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베트남 에피소드-5]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는 현실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5]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는 현실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3.03.05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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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나는 조금씩 타국 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었고, 골목 골목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기웃거리기도 했다. 기초 베트남어를 익히며 간단한 자기소개와 물건을 사는 정도의 짧은 이야기를 시도하였다. 베트남에서는 리어카에 과일을 소금과 함께 놓고 파는데 처음에는 먹을 생각도 못했으나 연습 후 너무 목이 말라 파인애플과 망고를 사서 먹었다. 그 맛이 슈퍼마켓에서 사는 과일 맛과 달라 그 이후로 는 과일 아줌마와 인사를 나누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5 (사진제공=임선영)
거리의 과일가게 (사진=임선영)

오전은 춤으로 밀도 높은 집중적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은 한없이 느슨해질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한국행이 결정되었고 무용수들, 친구들과 헤어짐에 대해 준비할 시간도 없이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는 바로 구글미트(Google Meet)를 통해 춤 수업을 진행했고, 또 감사하게도 지속적으로 무용수들과 작업을 이어갈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인연이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사유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연속적으로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 인연이 아닌가 싶다. 인연은 함께 서로를 소중히 할 때 이어지니 그 인연이라는 단어도, 뜻도 참 이쁘다. 춤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춤이 되어 함께해주어 지금 나는 감사로 충만하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 본다. 2019년 나는 고양국제무용제 초청으로 <생존기계>를 베트남 무용수들과 함께 공연, 잊지 못할 추억을 뒤로 한 채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던 차에 단 센터 디렉터인 린(Linh)에게서 이메일을 한 통을 받았다. 베트남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개막일에 개막축하 공연으로 나의 작품을 올리면 좋겠다는 내용과 <생존기계>를 베트남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그녀의 마음을 담은 메일이었다. 베트남에서 작업에 목말라 하던 차에 다시 무용수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어떤 행사인지 호기심도 생겨 공연 준비를 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우리는 바로 연습을 진행했다.

당시 린은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기에 나는 무용수들과 공연에 관한 이야기와 행사 정보를 나누었다. 작품에서 무용수들의 의상 콘셉트는 상의를 벗는 것이었는데 무용수들이 의상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하라는 조언을 주었다. 그 이유는 국가에서 관여하는 공연이나 외부 행사에서는 상의를 벗는 작품(특히 여성무용수)은 있을 수 없으며, 정부 관계자들의 작품 검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검열?!!! 무슨 검열?!! 작품 검열을 한다고?!! 말로만 듣던, 언론출판의 자유를 통제하고 뉴스 보도, 연극, 영화 내용을 심사하고 발표를 제재한다는 그 검열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소한 이 상황에 반신반의하면서 일단 의상 콘셉트는 수정하기로 했다. 다른 것(음악, 작품길이)은 문제될 것이 없겠느냐고 물었고, 무용수들은 다른 것은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공연 당일 아침 리허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내 인생에 첫 경험이자 잊지 못할 그 문화적 충격은 늘 당연시했던 '표현의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극장 입구에는 1960, 70년대 베트남 배우들의 사진과 작품 포스터 등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타일 바닥의 허름한 건물 안에 오래된 소극장이 있었다. 짙은 색깔 나무바닥의, 작지만 프로시니엄(proscenium) 형태를 갖춘 무대와 막을 손으로 당겨 움직이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삐걱거리는 얼룩진 극장 의자들과 눅눅한 공간의 냄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공간을 돌아보는 나를 무용수들이 웃으며 바라본다. 깨끗하고 멋지게 자동 시스템으로 잘 만들어진 한국 공연장들과는 다른 모습에 거북한 느낌보다는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 시대의 모습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5 (사진제공=임선영)
극장 로비 (사진=임선영)

몇 분이 지나자 근엄한 표정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정부 관리 4명이 들어왔다. 극장 안에 있던 모두가, 정말 모두가 긴장하고 경직되는 모습에 나도 함께 경직되면서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작품을 위해 영어 내레이션을 해야 했다. 작품이 끝나고 나니 관계자들끼리 모여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서는 나에게 몇 개의 수정사항을 말해 주었다. 20분 작품을 7분으로 줄일 것, 내레이션은 영어 말고 베트남어로 할 것, 이 두 가지를 수정해서 공연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공연 당일에 실시된 작품 검열의 결과였다. 공연 5시간 전! 황당했다. 하지만 그날 행사에 함께 참석하는 프랑스 영화감독은 공연 내용이 불순(인민의 평화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회 이슈)하거나 정부 관계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공연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며 웬만하면 수정해서 공연을 하라고 충고해주었다. 베트남에서는 패션쇼, 미술전시도 검열이 있는데 무용 검열은 당연한 것이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너무 당황하지 말라며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나는 제일 먼저 무용수들과 상의를 했고 그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괜찮다고, 공연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들은 하노이 공연을 갔다가 검열 후 공연을 올리지 못하고 호치민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고, <생존기계>를 20분 공연으로 하지 못한다면 이 작품은 의미가 없다, 전체를 보여 줄 수 없다면 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들의 의견을 정확히 피력했다. 그러나 나는 공연 기회를 준 린에게 혹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공연을 하지 않아도 괜찮겠는지 여러 차례 확인한 후 공연을 하지 않겠다 하고 극장을 나왔다. 이후 린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 또한 예상하지 못한 검열에 매우 흥분했다. 검열이 있을 행사가 아닌데 검열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나라에 내가 있었다. 고양국제무용제 참가 무용수들의 비자를 발급 받을 때에도 무용수들이 너무 긴장을 해서 조금 의아스러웠다. 한국에서 보낸 공식 초청장이 있는데 비자는 당연히 나오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베트남에서 정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조건과 준비에 상관없이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몇 주 동안 대사관을 오간 끝에 마침내 베트남 무용수들의 한국 입국비자를 발급 받던 그 날, 나는 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상상 이상으로 격하게 받은 것을 기억한다. 아….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검열 이후로 상황이 이해되는 일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엄격한 국가통제라는 체제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에 착각한 나머지 그 힘의 실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 후반부에서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존재를 드러내며 흥미롭게 전개되던 내용이 아주 묘하게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오버랩되며 지나갔다.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5 (사진제공=임선영)
극장 내부 (사진=임선영)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5 (사진제공=임선영)
베트남 무용수들과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2023년 현재, 도서출판의 자유가 없는 나라, 공연 검열이 있는 나라, 외국 TV 드라마와 영화는 모두 자국어로 더빙되어 방송되고 상영되는 나라. 그 안에서 표현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춤을 추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춤이라는 예술을 유지하며 무엇인가 끊임없이 활동하는 베트남 친구들… 나는 그 친구들의 활동을 존중한다. 누가 그들의 춤이 세련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작품성이 있다 없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이면에 숨겨진 힘을 피해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베트남의 젊은 예술가들의 노력을 나는 생각한다.

세상 어떤 춤도 숭고하지 않은 것은 없다.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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