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대한민국 클래식을 이끌어 갈 '젊은 명장'
[공연리뷰] 대한민국 클래식을 이끌어 갈 '젊은 명장'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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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원과 제597회 부산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지휘자 홍석원(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지휘자 홍석원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2월 21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97회 부산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는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홍석원이 지휘봉을 잡았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열린 이날 연주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대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의 관현악 버전, 그리고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의 <교향곡 제6번>을 원본에 가장 가깝다는 노바크 판본으로 청중들과 만났다.

홍석원은 국내 오페라 지휘에서 ‘독보적인 위치’ ‘역대급 매진’ ‘젊은 명장’이라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난해에는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실황 연주가 도이치 그라마폰 레이블로 첫 음반이 발매되어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그의 지휘는 대개 키가 큰 지휘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불필요한 동작이나 과장된 표현이 없고,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지휘자다.

후기 낭만주의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바그너의 음악은 후기 낭만주의의 서막을 열었다. 브루크너는 기존 교향곡의 틀을 깨는 혁신적 선율이 특징이다. 어릴 적 오르간 연주자 때부터 닦은 솜씨에서 나오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음표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처럼 느껴진다. 브루크너답지 않다는 이유로 ‘미운 오리새끼’라고 불리기도 했던 제6번은 특히 낭만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4번, 5번과 많은 연관성을 가진 작품이어서 앞선 교향곡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음악학자 가브리엘 엥겔은 이 작품을 철학적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조로 일관되었던 초기의 교향곡과 달리 ‘장조 4부작(Major Tetralogy)’이라는, 브루크너 작곡에 새로운 지평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다.

첫 곡인 바그너가 시작되자 과장된 기교가 아니라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음악가의 충실함이 지휘에 여실히 묻어났다. 지휘자의 정성스러움이 객석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그의 지휘는 단원 모두의 연주뿐 아니라 객석의 청중까지 음악으로 모은다. 각자의 파트에서 내는 소리가 편안함과 안정감으로 조화롭게 다가와 강력하게 당기면서 이룰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노래를 아련하게 전해 준다.

브루크너의 제1악장은 '마제스토소(Majestoso)'라는 말 그대로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함 속에 섬세하고 견고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아마 이날 연주의 압권은 제1악장일 것이다. 제1 바이올린이 만들어 내는 섬세한 ‘브루크너 리듬’을 따라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 나오는 악기들의 응답으로 이어졌다. 플루트 솔로 다음 튀어나오는 폭발적인 투티(tutti)는 깔끔하게 터번을 두른 아라비아 군대와 코끼리 떼의 장엄하고도 질서정연한 행군이 오버랩되었다. 마치 악보를 그림으로 그려 눈앞에 펼쳐놓은 듯했다. 폭넓은 다이내믹 레인지가 전해주는 효과는 편안함과 장대함, 따스함과 황홀함은 물론 달콤하기까지 했다.

제2악장 아다지오(Adagio)에는 'Sehr feierlich(아주 엄숙하게)'라는 지시어가 붙어있다. 바순(장정호)과 오보에(고관수)가 치밀하게 엮어내는 절제된 시퀀스는 평온하지만 아련한 기억을 회상하며 나누는 대화와 같았다. 비올라, 첼로, 베이스, 목관 파트의 앙상블은 어긋남 없는 정교함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위로를 전해 주었다.

제3악장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 <Composition Ⅷ>(1923)을 연상시킨다. C장조의 트리오가 지나고 변박과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 다음부터 바이올린 파트와 금관 파트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독특한 리듬 분할과 특이한 화성의 음악적 대화가 정치(精緻)하지 못하게 되었고 어수선해지면서 객석의 집중을 흔들어 놓았다.

제4악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제1 바이올린은 유연함을 잃고 경직되어 섬세한 움직임을 표현하지 못했다. 금관 파트도 늠름함을 나타내기 보다 울림 없이 그냥 터져 나오는 소음이 되어 버렸고 청중을 안절부절하게 했다.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던 제1, 2악장의 정교함, 치밀함, 튼튼한 구조물 같은 견고함이 무너졌다. 제3, 4악장에서는 바이올린 파트와 금관 파트의 집중력과 스태미너가 떨어진 듯해 아쉬웠다.

교향곡은 ‘함께(sym)’ : ‘화(和)’

우리가 교항곡이라 부르는 ‘심포니(symphony)’는 ‘함께(sym)’라는 단어와 ‘소리(phony)’의 합성어다. 이것과 꼭 어울리는 한자는 ‘화(和)’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화’는 ‘서로 응대[相應]하며 조화된다[諧]’고 되어 있다. 교향곡을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어느 것 하나가 어긋나도 제대로 된 음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건 상관없이 "장르를 넘나든다"는 소리를 함부로 하는 어쭙잖은 예술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음악계도 조금만 알려지면 스스로 ‘마에스트로’ ‘비르투오소’라 남발한다. 어떤 한 지휘자가 교향악, 오페라, 발레, 현대음악 등 모든 영역을 넘나들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홍석원은 이미 그 분야를 넓히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연이란 현장에서 관객들과 소통해야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악보 전체를 외우는 데 시간을 할애하기 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더 충실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힌 그를 공연장에서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젊은 명장 홍석원을 보유한 광주가 부럽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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