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대 위 추도의 시간 - 오페라 '순이삼촌' 그리고 한국 오페라의 어떤 속성에 관한 고민들
[리뷰] 무대 위 추도의 시간 - 오페라 '순이삼촌' 그리고 한국 오페라의 어떤 속성에 관한 고민들
  • 이민희 음악평론가
  • 승인 2023.03.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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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이민희 음악평론가 = <순이삼촌>은 오페라 특유의 힘으로 4·3사건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작품이다. 제주도를 기점으로 모인 각 분야의 제작진과 무대 위 가수와 연기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수천의 관객이 모여 거대한 추도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페라의 서사는 4·3사건의 주인공을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한 개인’으로 전이시켰고, 개인의 구체적 형상은 소프라노가 부르는 ‘순이삼촌 광란의 아리아’로 실제화되었다. 모든 성취는 이 작품이 제작에서 공연에 이르기까지 수천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오페라’라는 장르였기에 가능했다.

지역의 기억을 외부에 공표하는 도구로서의 오페라

<순이삼촌>은 제주4·3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2020년 11월 7-8일 제주아트센터에서 강혜명 연출, 장인혁 지휘, 김수열 대본, 최정훈 작곡으로 초연된 작품이다. 제주아트센터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제작했으며 2020년 6월 20일 제주아트센터에서 제작진 및 언론을 초청해 주요 아리아 등 10여곡을 갈라 콘서트로 미리 공개했다. 이후 ‘순이삼촌 광란의 아리아’가 추가되고 전체 러닝타임이 조정되어 이듬해인 2021년 9월 17-18일 제주아트센터에서, 그리고 2021년 12월 30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강혜명 연출 및 김홍식 지휘로 재연됐다. 이어 2022년 9월 3-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기에 이른다.

하나의 작품이 그 서사의 근거지에서 만들어져 수정과 보완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과정은 제주인이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외부에 알리는 형태를 띤다. 실제로 이 작품의 프로덕션은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합창단, 극단가람, 밀물현대무용단, 제주시뮤지컬아카데미(JCMA), 제주4·3평화합창단 등 제주도 출신 인력을 중심으로 하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제주도에서부터 이 공연을 관람하러 온 이들로 붐볐다.

지역 특유의 소재에 기반하여 지역 중심으로 창작되는 이런 오페라들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오페라 제작·향유 시스템을 보여준다. 사실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탄생할 때부터 ‘대중적 오락’의 성격이 강했다. 이미 17세기 베네치아에서도 입장권을 팔아 객석을 채웠고,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영화와 맞먹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이 때문에 국내의 수많은 창작 오페라들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 받아왔다. 하지만 <순이삼촌>을 비롯한 특정한 소재의 대극장 오페라들은 오락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 예술장르에 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기에, 지역에 기반한 대규모 협업의 거점이 된다.

'순이삼촌' 2022년 공연 장면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순이삼촌' 2022년 공연 장면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이를테면 2017년 수원대학교 벨칸토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초연된 <제암리, 꺼지지 않는 불꽃>은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제암리 학살사건’을 토대로 하는 작품으로 수원대학교를 중심으로 창작진이 꾸려졌다. 2010년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진영민 작곡가의 <이매탈>도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인 ‘안동 하회탈’을 소재 삼아 작업됐으며, 2013년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에서 초연된 백현주 작곡가의 <해운대> 역시 지역의 서사와 인력이 대규모로 투입됐다.

이런 작품들은 대학이나 지역 기반의 사설 오페라단, 혹은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프로덕션을 꾸리고 지역 고유의 소재를 기반으로 스스로의 역사나 기억을 보존·전승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지역에서 제작된 대극장 오페라가 지역민의 화합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오페라의 홍보와 공연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외부에 공표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서 개인으로, 그리고 프리마 돈나의 노래로

<순이삼촌>은 4·3사건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 순이삼촌의 비극을 다루되, 이를 제 3자인 상수가 서술하는 구조다. 즉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상수가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8년 만에 제주도 북촌에 돌아온다. 마을 사람의 근황을 듣던 중 순이삼촌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주하고, 상수는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1948년의 북촌국민학교 운동장, 어린 상수와 길수, 큰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순이삼촌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군인의 기세에 눌려 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군 소개령이 발동되고 군인들은 군경가족과 대동청년단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네 개의 밭에 나누어 학살한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순이삼촌은 오누이를 잃고, 자식이 죽은 옴팡밭에 붙어 수십 년을 살아간다.

'순이삼촌' 2022년 공연 장면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순이삼촌' 2022년 공연 장면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이 지점에서 이 오페라의 서사적 구도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치적 맥락이나 전체적인 전개 양상 등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아이 둘을 잃은 어머니를 배치했다. 학살이 일어나는 장면 역시 총성과 함께 자극적인 연출로 제시되지만, 사실상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인 순이삼촌이 수년 후에 죽게 되는 순간이다.

바로 이 ‘어머니의 고통’이 극대화되는 지점에 소프라노가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가 놓였다. ‘광란의 아리아’는 19세기 오페라 안에서 유형화된 것으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가 대표적이다. 이 오페라 속 광란의 아리아는 결혼 첫날밤에 정략결혼의 상대자를 칼로 찌르고 몸에 피범벅을 한 여주인공의 극단적 상황을 표현한다. 길기도 하거니와 음역의 급격한 변화와 고난도 테크닉이 일품인 아리아로, 사실상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보러온 청중 대부분은 바로 이 음악을 듣기 위해 앉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이삼촌>도 마찬가지였다. 강혜명 소프라노가 부른 ‘순이삼촌 광란의 아리아’는 극단적인 감정표현으로 대극장 전체를 전율에 휩싸이게 했다. 서사의 정점에 놓인 아리아를 통해 전통적인 비극 오페라의 클라이맥스를 창출한 것이다. 이는 <순이삼촌>이 단순히 동명 소설의 무대화 혹은 4·3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온전히 ‘오페라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설득했음을 의미한다.

추도의 장으로서의 오페라

순이삼촌 생의 마지막 순간, 무대 위에는 망자를 위한 퍼포먼스가 거행된다. “휘어~”라는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흔드는 노인. 그와 함께 무대 조명이 변하고, 순이삼촌이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제 긴 시간 천천히 움직이는 순이삼촌 앞에 흰 소복을 입은 여인 하나가 등장해 살풀이춤을 춘다. 무대 중앙에는 거대한 천이 내려와 무대 위의 이 ‘제의’가 이승과 저승을 이어줌을 알려준다. 그렇게 객석 모두는 순이삼촌의 한 많은 인생의 끝, 그녀가 죽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 ‘지켜봄’은 단순히 죽음을 목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추도’하는 것에 가깝다.

짧지 않은 제의는 오페라 전체의 성격이나 여운을 결정지을 만큼 강렬하다. 이 퍼포먼스는 제주도의 제 58회 탐라문화제에서 도무형문화재 <삼달리어업요> 등을 시연한 바 있는 연기자 문석범이, 살풀이춤은 춤꾼 박연술이 담당했다. 퍼포먼스는 원작 소설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페라 특유의 세팅으로서, 이를 연행하는 이들 또한 극 중 인물이 아니다. 오페라 안에 추도의 제의가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서사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원작의 흐름과 별개인 이런 장면이 전반적인 시간의 흐름을 불균형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의는 비단 <순이삼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5·18을 다룬 이건용 작곡의 오페라 <박하사탕>(2019)에서는 묘비에 적힌 희생자의 이름을 천천히 부르며 긴 추도의 시간을 갖고, 김주원 작곡의 오페라 <레테>(2021)에서는 모두를 위해 희생한 로봇의 죽음을 숭고하게 연출한다. 오페라 <1948년 침묵>(2018) 역시 여순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씻김굿이 등장해 상당 시간 지속된다. 제의를 포함하고 있는 작품들은 <박하사탕>이나 <1948년 침묵>처럼 많은 이들이 희생된 역사적 사건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레테>처럼 완전히 새로운 서사 안에서 이와 같은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오페라 속 제의가 최근 한국 창작오페라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극적 장치가 큰 무리 없이 대중에게 용인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마도 역사적 부침과 고통을 간직한 채 발전해 온 국내 공연문화의 독특한 경향성이기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 굿과 같은 전통적 연행이 담당했던 공적인 상처의 치유를 ‘오페라’라는 새롭게 유입된 장르가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수천의 관객은 <순이삼촌>을 보며 4·3사건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4·3사건에 대한 추도의 ‘연행자’로서 이 역사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순이삼촌' 2022년 공연 장면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순이삼촌' 2022년 공연 장면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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