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베트남 에피소드-6] 나의 기억과 현재에 함께하는 무용수 카이 녹 부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6] 나의 기억과 현재에 함께하는 무용수 카이 녹 부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3.04.03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베트남에서 오랜만에 춤에 대한 희열을 느끼게 만든 무용수 카이 녹 부(Khai Ngoc Vu)를 기억한다. 2019년 12월 21일, <Method>라는 현대무용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미 씨어터(Army Theater)로 찾아갔다. 국가 소유 극장인 아미 씨어터는 호치민 중심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었는데, 관객의 절반이 군인들로 채워진 이색적인 공연장 분위기에 무척 놀랐었다. 이 낯선 분위기에 작품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며 자리에 앉았다. 

텅 빈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이 긴 대나무와 돌덩이를 옮기며 서서히 공연은 시작되었다. 상반신 전체에 문신을 한 거친 남성 무용수, 아주 작은 키에 몸이 빠른 여성 무용수, 또다른 남성 무용수 등 총 6명이 출연했다. 베트남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이 조화롭게 가득찬 공간에 무용수들이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한다. 무용수 두이 푸옹(Duy Phuong)이 텅 빈 사막에 놓인 바위 위에 올라서 사자처럼 돌 위에서 연신 중심을 잡았다. 다른 남성 무용수가 무거운 돌덩이를 들어올리며 마치 갓난아기를 쓰다듬듯 만지기를 반복하고 자장가 같은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다. 그의 반복되는 손 움직임은 마치 돌이 녹아 흘러내릴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나는 그의 춤에 송두리째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베트남 무용수 카이 녹 부(Khai Ngoc Vu) (사진제공=임선영)

유난히 긴 팔과 잘 훈련된 것으로 보이는 몸과 에너지, 그리고 다른 무용수들과 달리 부드러운 움직임의 연결이 세련돼, 움직임에 많은 경험과 학습이 있어 보였다. 긴 대나무와 돌덩이들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었던 작품이 카이 녹 부의 춤으로 흥미롭게 살아났다. 카이가 5분 동안 불안정한 돌덩이 위에 올라서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몸이 몸을 잊고 돌이 되어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집중하는 그의 모습, 객석에서 바라보는 그는 춤을 즐기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만지고 움직이던 그 무거운 돌덩이는 무게를 잃어버리고 그의 손에 휘저어지는 듯했다. 춤을 보는 내내 얼마 만에 느끼는 공연 관람의 기쁨이었는지, 아직도 그 두근거림과 장면이 생생하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작품 안에 존재하는 춤추는 무용수를 발견한 나는 공연이 끝나고 그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는 아라베스크무용단 단장 록(Loc)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며, 나 또한 아라베스크에서 무용수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 중이던 때라 서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카이 녹 부는 1985년생으로 베트남 무용아카데미(Vietnam Academy of Dance)에서 7년간 배웠으며, 로테르담의 코다츠 무용아카데미(Codarts Rotterdam Dance Academy)에서 장학금을 받고 1년간 공부했다. 그 후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무대경험을 한 무용수이다. 2020년 자신의 무용단 1648kilomet을 창단했다. 나는 그에게 무용단 이름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베트남의 남북의 길이가 1,648km여서 베트남을 무용단을 통해 상징적으로 알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무용단으로 성장시키고자 국토의 길이를 무용단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호치민에서 거주하며 하노이와 호치민을 오가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서 <농(NON)>(농은 베트남 전통모자)이라는 작품으로 초청받아 공연한 바 있으며, 아라베스크무용단의 리허설 디렉터로 활동한 바 있다. 내가 만나 본 그는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을 시도하는 젊은 예술가였다.

카이 녹 부와 함께한 필자 (사진제공=임선영)

베트남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신흥 부유층의 젊은이들이 이제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본국에 자신의 회사나 단체를 만들고 해외와 네트워크하며 성장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경제 뿐만 아니라 교육, 디자인 부문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무가 카이 또한 오랜 해외활동을 통해 현대무용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 방향을 설정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무용계를 이끌어 갈 젊은 안무가로 성장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나는 2022년 한국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대회에 그를 초청했다. 내가 즐겨 찾는 갤러리에 같이 가서 미술작품도 감상하고 한국 음식을 함께하며 오랜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나에게 있어서 상대와 함께하는 우정은 절대적인 환대와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 기본으로 시작된다. 사람들 사이에 어떤 벽도 존재하지 않는 관심과 시선, 그리고 귀와 두 손을 온전히 상대에게 내어주는 마음을 통해 나와 상대를 연결한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매우 귀중한 삶의 태도이며, 춤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정서적인 관계 즉 사람과의 관계, 그것은 춤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시작이기에 더욱 이 부분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대규모이고 복잡하며 사회구성원들의 계약적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이익과 손실의 냉정한 계산이 우선시된다. 이런 형식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차가운 사회관계 속에서 춤이라는 도구를 통해 타인에게 나의 시간과 장소를 내어 주고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에 충실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상대에게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계산을 금한다. 계산을 하는 순간 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 하고, 잡다한 생각에 나의 에너지를 소진해야 하는 불편함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불필요한 생각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무인도와 같은 낯선 공간, 베트남에서 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며 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은 예술이 지닌 큰 메시지였는지도...

예술이 있는 곳은 열려 있는 공간이 되며, 예술을 행하며 표현하는 자는 보는 이들에 의해 존중받고, 예술을 통해 자신의 공간과 장소가 만들어진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타인을 존중하고 대접한다. 그리고 타인은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친구가 되어간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둘러보는 카이 녹 부 (사진제공=임선영)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