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3] '컨템포러리 강강술래’ - 원형의 춤이 주는 메시지와 위로
[낭만논객의 춤시선-13] '컨템포러리 강강술래’ - 원형의 춤이 주는 메시지와 위로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4.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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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2023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새해 인사를 두 번 나누는 사이, 남녘 부산 항구에는 이미 봄기운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전통예술의 본가 국립국악원들(서울, 남원, 진도, 부산) 가운데 가장 먼저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이 3월 3일과 4일 연악당(대극장)에서 2023년 무대의 개막을 알렸다. 지난 25년 간 언제나 믿고 보는 정신혜 예술감독이 안무한 신작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역시 영남춤 마니아인 필자와 공연장을 찾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하얀 무대 미장센에 오방색 물감을 뿌리며 현장 음악연주와 함께 춤추는 춤꾼들의 절묘한 앙상블은 연악당 객석에 자리한 모든 이들에게 봄바람 전령처럼 조심스레 다가왔고,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 속 응어리들을 ‘차고 기우는 신비로운 달의 풍경’의 설렘으로 바꾸어 놓았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2023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민속춤(놀이) ‘강강술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우리 민족에게 참 친숙한 전통 연희다. 추석날, 휘영청 뜬 보름달 아래서 여인들이 모여 둥근 원을 그리면서 손을 잡고 노래와 함께 도는 국가무형문화재이다. 누군가 먼저 메기는 소리를 선창하면 나머지는 ‘강강술래’로 받는 소리를 한다.

이 민속놀이는 2009년 9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당당하게 등재되었다. 지구촌 여러 나라에서 손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유사한 놀이가 존재하는 만큼 ‘글로벌한 친숙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조선시대 남녘 바닷가 진도나 해남에서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원하며 부녀자들이 원을 그리며 노래하는 하나의 기원무로서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오고 있다.

안무자 정신혜는 지난 2018년 7월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후 <춤, 조선통신사> <학무춘지월> <영남춤 진경화> <야류별곡> 등 다채로운 영남지역 춤을 재조명하고 동시대성을 근간으로 다채로운 춤 화두를 던지고 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조명한 전통의 모습과 때로 과감하게 혹은 세련된 초월적 무대로 우리 시대 관객들의 눈높이와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통과 창작의 경계나 흐름을 신묘하게 융합시킨 그녀만의 독창성은 완성도 높은 결과물들과 함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번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라는 대명제 아래 다른 생명의 꿈을 일깨우는 인류 보편적 정서와 ‘시작과 끝이 없는 원(圓)의 시간’을 극장예술의 다채로운 요소들(연주, 무대미술, 의상, 영상, 조명 등)로 표현해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냈고, 스태프들과 함께 촘촘하게 씨줄과 날줄로 잘 엮어 놓은 조각보같은 춤의 결을 완성했다. 공연을 현장에서 본 이들 모두에게 마치 이상의 세계로 여행하듯 행복한 시간을 선물했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2023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공연장에 들어서니 무대는 민낯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하얀 뒷막에는 ‘강강’이란 글씨를 겹쳐 한글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조명이 켜지면 로마의 콜로세움과도 같은 반달형 기둥이 펼쳐져 있다. 가운데 둥근 원형은 달의 상징으로 회전무대의 활용을 예고하고 있었다. 모든 무대를 흰 공간으로 연출해 사뭇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지휘자 이정호(음악감독)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지휘봉을 든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잠시 후, 무대 중앙 사이로 팔이 먼저 움직이며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는 군무의 발 디딤은 마치 잔잔한 파도의 물결처럼 몽환적인 아우라를 뿜으며 시야에 들어온다.

프롤로그 - ‘소멸과 생성’은 촘촘하게 박힌 별빛이 찬연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신비함을 더해가며 시작한다.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하게 서로를 이끌어 손에 손을 잡으면 무대 기둥에 영상들이 점, 선 그리고 면(색감)으로 분할되며 파스텔 톤의 조각보처럼 구성미가 아름답다. 팔에 토시를 한 무용수들, 댕기 머리를 하고 꽃신을 신은 소녀들의 모습이 단순하고 소박한 이웃들처럼 친숙하다. 오방 색감이 무용수들 저고리와 치마, 바지 곳곳에 원색 포인트의 아름다움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2023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본격적인 이야기는 1장 ‘맺는 강강’에서 느린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전면과 후반 무대에 자리한 주역 무용수의 깊은 호흡으로 시작되다가 이윽고 리프트 동작과 인간 본연의 심리를 밀도높게 표현한 2인무로 안무했다. 세심한 설렘 혹은 인연의 고리로 엮어 나가는 동선 이동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결연한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남녀의 춤은 음양의 조화와 태초 인류의 신성함으로 비치는 춤의 결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역 무용수 서한솔과 최현지는 기운생동을 통해 품격이 남다른 듀엣의 정석을 펼쳐 보였다. 한편, 노란 의상을 입은 달의 여인 솔로 춤에서 여성 주역은 온몸으로 모성의 숭고함을 비롯한 여러 감성들을 절절하게 표현해 내며 그녀의 만만치 않은 연습량을 짐작케 했다. 또한 작품의 구심점 역할로 신비롭게 혹은 묵직하게 감정 표현을 이끌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작품 중반 ‘놀이, 원형의 삶’이 펼쳐진다. 드디어 ‘강강술래’가 전하는 한민족의 넉넉한 마음과 여유, 그리고 배려의 시간이 흥을 한껏 달구어 놓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빠른 잔걸음으로 이어가는 동작이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연어들의 헤엄을 연상시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치맛자락의 물결은 마치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날갯짓과 같아 객석에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홀로 머나먼 길을 나서는 달의 여인. 이윽고 ‘다리밟기’ 놀이를 변주하여 무대에 구성한 무용수들의 허리로 이은 다리, 험한 산길 혹은 굽이쳐 흐르는 물길은 우리 인간 삶의 원형을 향해 이어진다. 달의 여인이 그 다리를 조심스레 걷는 모습에서 강원도 <정선 아라리>에 담긴 힘든 노동의 숙명은 물론, 항해를 떠나 거친 파도를 스스로 딛고 일어나는 강인한 모성의 마음도 읽힌다. 한편으론 마치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산행의 모습으로도 보이며 아슬아슬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강강>의 여러 명장면 중 단연 최고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무대 중심이 이동하는 가운데 역사의 시간 또한 원형을 그리며 수레바퀴처럼 천천히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면서 객석 전체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밀고 당기는 마력의 기운을 뿌려 놓는다. 이렇듯 한 순간 관객들에게 먹먹한 애잔함으로 안타까운 감성을 자극한다. 무대는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영상 연출의 변화가 이어진다. 파스텔 톤의 색감으로 과하지 않은 기하학적 영상 변화가 무용수들의 정적인 움직임까지 선연한 춤 풍경을 아우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2023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이제 ‘푸는 강강’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스포츠 행사였던 1988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문득 소환된다. 당시 전 세계에 울려 퍼진 바로 그 노래가 ‘강강술래’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특별했다. 팬데믹 3년 여의 시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사다난한 일상을 각자 인내하고 버텨낸 모든 이들이 결국엔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한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하나의 원을 그려내야 한다는 엄연하고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무용수들이 온몸으로 입증한 셈이다.

2023년 현재 새로운 봄. 전 세계 지구촌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 따스한 온기가 손과 손 사이에 전해지는 그 배려와 화합의 메시지가 바로 정신혜 안무가의 진심이자 이번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숨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맞잡은 손으로 원형을 만들어 돌다가 5-6명 단위로 흩어져 작은 동심원을 그리고, 다시 또 함께 모였다 흩어지는 모습들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네 인간 삶과 같은 모양새가 아닐까.

‘어제와 오늘이 맞잡은 손’ - 2023년 현재의 강강술래는 ‘시작과 끝이 없는 원(圓)의 시간’이라는 안무 의도를 관객들에게 전하려는 나선형의 유연함이 마음으로 읽히는 지점이다.

에필로그 - ‘다시, 소멸과 생성’으로 처음 무대로 회귀한다. 밤하늘 유성처럼 수많은 별이 무대를 수놓고 다시 장엄한 우주를 담아내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이른다. 둥근 원을 그리면서 맺고 풀며 반복되는 중독성 강한 노동요 <강강술래>, 목소리 가락이 들리지 않는 것 또한 이채롭다. 작품 전편을 통해 시종일관 변주된 우리 악기와 서양 악기의 조율과 협연의 앙상블은 화합과 상생이란 메시지에 다양한 동서양 선율 악기의 풍성한 라이브 연주가 힘을 보탰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2023 정기공연 '강강-맺는 강강, 푸는 강강'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이번 작품은 정신혜의 전작들에 이어 다시 한번 그녀의 안무가적 비전과 능력을 확인시킨 수작이었다. 15분 여의 민속놀이를 프로시니엄 극장 공간으로 옮겨 70여 분 동안 솔로와 듀엣, 5-6명의 군무를 펼치며 30명 무용단원과 13명 연주자들이 일체감을 이뤘다.

우리 시대,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인 지구촌 곳곳의 전쟁과 기후변화, 자연재해까지 모든 난제는 결국 우리 인간이 만들었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함께 마음을 모아 먼저 손을 내밀어 다른 이들의 손을 ‘정’이라는 신념으로 굳게 맞잡아야 한다. <강강술래>의 무대풍경들은 이 인류 최대의 의미심장한 과제이자 화두를 화사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살려 고스란히 제시하고 전달한다. 서로 손잡고 어깨를 흔들며 무대 중앙으로 아스라이 멀어지듯 퇴장하는 출연진은 진한 여운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 삶의 여정 또한 이 돌고 돌아가는 순환의 굴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에필로그가 끝난 무대에는 ‘강강’이란, 맞잡은 형상의 두 글자가 푸근한 잔상으로 남는다.

(* 이 글은 국립국악원 기관지 <국악누리>에 기고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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