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미성? 마성? 카운터테너 이야기
[공연리뷰] 미성? 마성? 카운터테너 이야기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06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2월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베르사유궁전 왕립오케스트라와 3 카운터테너 콘서트'가 열렸다. 베르사유 오페라극장에서 연주되던 바로크 레퍼토리를 카운터테너들의 목소리로 고스란히 재현한 무대였다. 아름답고 정교한 바로크 노래들을 들려준 그날의 주인공들은 휴 커팅, 사무엘 마리뇨, 그리고 정시만이었다. 휴 커팅은 영국 출신으로 캐슬린 페리어 콩쿠르에서 카운터테너 최초로 최고상을 받았으며, 역시 카운터테너 최초로 BBC 뉴 제너레이션 아티스트로 선정된 성악가다. 유연하고 맑은 음색을 지녔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사무엘 마리뇨는 카운터테너보다 더 높은 음역의 소프라니스트다. 변성기를 겪지 않아 보이 소프라노의 음색을 그대로 간직한 희귀한 경우라고 한다. 이날 마리뇨는 화려한 의상과 깃털처럼 가벼운 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카운터테너 정시만은 볼륨감 있는 음색과 섬세한 표현력의 소유자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나 2017년 국립오페라단의 <오를란도 핀토 파쵸>와 2022년 메이지 프로덕션의 <파우스트> 등 국내 무대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삼인삼색, 카운터테너들의 유니크한 음색과 연주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는 참신한 기획이었다. 바로크 음악의 멜리즈마는 역시 카운터테너의 음색이 적격인 것 같다. 힘이 빠진 부드러움, 공기를 울리는 두성, 팔세토의 우아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정시만, 사무엘 마리뇨, 휴 커팅 (사진제공=메이지프로덕션)

카운터테너 vs. 카스트라토

카운터테너는 14세기, 교회음악이 단선율에서 다성부로 발전하면서 생겨났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성가대에 설 수 없어 남성들만 합창을 했고, 기준 선율은 테너였다. 테너의 위 성부를 카운터테너가 불렀다. 카운터테너는 변성기 이후 가성을 사용하는 팔세토 훈련을 통해 고음을 구사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스트라토는 오히려 늦게 생겨났다. ‘파리넬리(Farinelli)’로 우리에게 알려진 카스트라토는 거세를 한 남성 성악가들이다. 카스트라토에 대한 첫 기록은 1565년이며, 18세기가 그들의 전성기였다. 기악의 발달로 보이 소프라노나 카운터테너들조차 버거운 고음역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카스트라토를 육성하는 학교도 세워졌다. 주로 빈민들의 자식 중에 재능있는 아이들을 선발했다고 한다. 거세를 하면 2차 성징을 막아 변성이 오지 않고 후두의 성장도 멎기 때문에 소년시절의 음역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흉곽이 확장되며 폐가 커져서,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폐활량을 갖게 되었다.

당시는 외과수술이 발달하지 않아 소아 탈장수술을 하려면 거세를 해야 했는데, 그런 아이들이 카스트라토 중에 많았다. 1922년 세상을 떠난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 역시 탈장수술로 카스트라토의 길에 들어섰다.

1796년 이탈리아를 장악한 나폴레옹은 카스트라토 양성을 금지했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카스트라토 육성이 재개된 적도 있으나, 여러 신학적 논쟁 끝에 1903년 교황청에서 금지를 선포했다. 같은 시기 탈장수술의 방법도 발달했다.

18세기 유럽을 사로잡았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국과 스페인의 궁정가수를 지냈고, 스페인에서는 기사 작위도 받았다. 정치적인 힘이 있었지만 청렴해서 절대 뇌물과 청탁을 받지 않았으며, 죽기 전에 전 재산을 하인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세 카운터테너의 연주 모습 (사진제공=메이지프로덕션)

카운터테너들의 활약

카운터테너의 역사는 길지만, 대중에게 인기 있는 스타는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과 필립 자루스키(Philippe Jarrousky) 정도가 스타 카운터테너로 꼽혀왔다. 바로크와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팝이나 재즈까지 영역이 넓은 두 사람이다. 필립 자루스키는 지난 3월 5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오르페우스 이야기>라는 제목의 무대를 선보였으며,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자레>를 지휘하는 등 지휘자로서도 행보를 넓히고 있다. 안드레아스 숄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부른 <백합처럼 하얀>은 국내산 자동차 CF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본인이 직접 전자음악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 (사진제공=성남아트센터)

최근 Jtbc의 ‘팬텀싱어 4’에 우리나라 1세대 카운터테너 이동규가 출연하고 있다. 이동규는 2005년 무지카 샤크라 콩쿠르와 비냐스 콩쿠르에서 우승, 심사위원장이던 마리아노 호라크와 손을 잡고 유럽에 진출했다. 지난 2016년에는 국립오페라단의 비발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파초>에서 아르질라노를 열연했다. 흥미롭게도 18세라는 늦은 나이에 카운터테너로서 훈련을 시작했는데, 바로 영화<파리넬리> 때문이었다.

이동규는 2007년 함부르크 국립극장에서 한국인 카운터테너로는 최초로 오페라 <라다미스토>의 주역을 맡았다. 크로스오버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 ‘팬텀싱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 베르사유 왕립오케스트라와 3 카운터테너 무대에 섰던 정시만은 2017년 한국인 카운터테너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 가수가 되었으며, 내년 4월에도 메트에서 존 아담스의 현대 오페라 <엘 니뇨>에 출연한다. 한국 카운터테너들의 약진을 기대한다.

카운터테너 이동규 (사진제공=이동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