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가죽 위에 피어난 페르소나와 내장 속 인간성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시선
[공연모니터] 가죽 위에 피어난 페르소나와 내장 속 인간성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시선
  • 나수진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5.3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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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나수진 무용이론가 = 배진호의 광기(狂氣)가 피 속에서 피어났다.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가 소설 속에서 시니컬한 방랑 음악가 장-필립 라모의 입을 빌려 그 시대를 논했듯이 배진호는 현시대 안무가로서 무대에 올라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통렬한 몸짓으로 이 시대를 논한다.

<내장과 가죽>은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전통과 현대, 동서양을 넘나들며 실험적 무용을 구사하는 배진호의 세계관을 오롯이 드러냈다. 이 작품은 ‘제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국춤의 제의적 성격과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낭만 발레 이후 무용이 신체의 아름다움보다 실존적 인간에게 집중해왔음을 관객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조각나고 불태워질 제물’을 표현한 이번 공연의 음악과 조명, 특히 해부학적인 움직임은 이 시대의 한국춤이 과연 인간 심연의 갈등을 어떻게,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듯 보였다.

이 작품은 제목부터 공연의 마지막 호흡까지 파격을 추구한다. 작품 내용이 자그마치 의식, 가죽, 내장, 재, 여자, 행위, 희생, 제물, 향기, 절대자, 완전한 형태, 온전한 제사이다. 배진호는 히브리 민족이 절대자에게 드리는 제사 방식 중 하나인 ‘번제(燔祭)’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지난해 한국현대춤협회 주최 2022 현대춤 뉴 제너레이션 페스티벌(New Generation Festival)에서 초연한 바 있다. 올 4월 14-15일 포스트극장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배진호 '내장과 가죽' ⓒ진호
배진호 '내장과 가죽' ⓒ강선준

공연이 시작되면 캄캄한 무대 위에 사이렌 소리 같은 불길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이 소리는 번제 태동기에 양의 뿔로 만든 나팔 소리처럼 고대의 원초적인 기악을 연상시키지만, 축제를 알리는 경쾌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긴장, 공포, 절규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순간 하얀 조명이 무대 상수 하단의 한 지점을 비추고, 제사장으로 보이는 남성 무용수가 제물로 보이는 여성 무용수를 무대 밖에서부터 짐짝을 다루듯이 질질 끌며 등장한다. 온몸을 축 늘어뜨린 여성 무용수는 마치 제의에 바쳐질 짐승처럼 무대 이곳저곳을 끌려다니다가 무대 중앙에 놓인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초연에서 선보인 리프트나 스테인리스 테이블 같은 강렬한 오브제와 메타포는 사라졌지만, 미니멀한 설정이 오히려 움직임 자체와 작품 전개에 관객을 오롯이 집중시켰다.

 

배진호 '내장과 가죽' ⓒ진호
배진호 '내장과 가죽' ⓒ강선준

무대 위 여성 무용수의 몸에 딱 맞게 피팅한 의상은 사람의 몸을 정육점 냉장고에서 갓 꺼내온 육류처럼 보이게 하고, 이는 온전한 제사를 위해 벗겨내야만 하는 가죽을 연상시킨다. 남자는 여자를 여기저기 살피며 냄새를 맡기도 한다. 배를 갈라 내장을 손질하고 사지를 나누는 제사장을 묘사한 움직임이겠지만 흡사 공포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살인마가 살인의 대상을 앞에 둔 모습, 또는 먹잇감의 상태를 살피는 육식동물의 습성을 보는 듯하다.

 

배진호 '내장과 가죽' ⓒ진호
배진호 '내장과 가죽' ⓒ강선준

이처럼 두 무용수는 얼마 동안 제단 위 제물과 제사장의 모습을 그려내다가 무대 뒤편에서 무대 앞쪽으로 함께 걸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윽고 기계 톱 소리 같은 효과음 속에 서늘한 하얀색 조명이 점차 빨갛게 변하고 마치 이교도들의 음란하고도 광기 어린 제전 같은 기묘하고 퇴폐적인 느낌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사이키 조명은 마치 제물을 태우기 위해 미리 지펴둔 불꽃처럼 느껴진다. 그 아래서 두 남녀가 강한 비트의 전자음악에 맞춰 움직인다. 제단 위에 누운 여인을 강간하는 듯한 동작, 함께 합을 맞추거나 남녀가 따로 서 있는 상태로 여성이 두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등 유사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동작도 엿보인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듯한 아찔함과 전율이 느껴진다.

제물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고대의 제의는 대부분 성적 행위를 동반한다. 제의에서 죽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삶을 상기시키고, 삶의 강렬한 에너지는 본성의 분출을 통해 생명을 생성하고 이어가는 섹스 행위와 맞닿아 있다. 히브리인들의 제의는 성적 행위가 배제된 거의 유일한 의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진호는 이 상징적인 연관성을 제시함으로써 번제의 경험을 우리 모두의 보편적 경험으로 전환한다.

배진호 '내장과 가죽' ⓒ진호
배진호 '내장과 가죽' ⓒ강선준

무대가 마지막을 향해 전개되면서 결국 ‘희생 제물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무대 양쪽 바닥의 조명이 하늘을 향해 하얀빛을 비추다가 점차 빛의 방향을 아래로 바꾸어 바닥을 향해 붉은빛을 비추면, 여성 무용수가 바닥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희생 제물처럼 마지막 힘을 다해 춤을 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성 무용수는 제물의 몸짓이 사그라들다 멈추면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이로써 공연은 끝이 난다.

<내장과 가죽>은 제사라는 의식적이고 영적인 소재를 활용한 만큼 강렬한 음향과 효과적인 조명 구성으로 작품이 진행되는 모든 순간 긴장감과 역동성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평소 안무에 적합한 음악을 신중하게 고를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음악을 모티브로 안무를 구성하곤 한다는 배진호의 음악적 초이스는 장면 장면의 전개를 명료하게 끌어간다. 여기에 어둠과 대비되는 흰색, 차가운 푸른색, 특히 강렬한 붉은색 조명이 시각적 미장센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작품 전체를 자연스럽게 메시지로 연결한다. 특히 붉은 조명은 두 무용수가 서로를 탐닉하는 듯 움직이는 장면에서 인간 내면의 그로테스크한 욕망을 표면으로 끌어낸다. 더 나아가 희생 제의와 인신공양이라는 소재를 구현하는 미장센이 이 붉은 조명을 통해 완성된다. 한편 푸른 조명은 대체로 여자와 남자를 서로 분리하여 그들 각자에게 독립적인 움직임과 주체성을 부여한다. 즉 온전한 제사 끝에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방법으로 절대적 존재를 영접하는 순간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흰색 조명은 붉은 조명과 푸른 조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단절된 듯한 구조로 각자의 숨겨진, 마치 연체동물이 된 듯 음험한 움직임으로 욕망을 드러내던 남자와 여자는 흰 조명으로 전환되면서 절도 있는 동작과 큰 움직임을 보여준다. 푸른 계열의 조명과 붉은 계열의 조명이 개인의 협소한 내면세계에 대해 다룬다면, 하얀 조명은 이처럼 타인과 합일되는 공동체 단위의 영적인 체험을 표현하는 듯 보인다.

배진호 '내장과 가죽' ⓒ진호
배진호 '내장과 가죽' ⓒ강선준

물론 이 작품에는 이러한 음악과 조명으로 구축한 미장센을 초월하는 빼어남이 있다. 바로 잘 조직되고 단련된 움직임이다. 인간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자세히 묘사하는 듯한 움직임은 인간성이 배제되고 본능으로 충만한 물화된 신체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어 보였다. 특히 숙련된 두 무용수는 풍부한 표현력과 절제력으로 분절적인 동시에 능수능란하게 연결되는 움직임으로 작품을 물 흐르듯 진행했다. 무용가 배진호의 매력은 강렬하고 분절적인 움직임 이면에 한국 춤 고유의 단아하고 유연한 춤선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적인 특성 곧 절도 있고 강렬한 몸짓 사이사이에 보이는 한국무용의 아날로그적인 곡선과 손짓은 반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뛰어난 완급조절 능력은 각 동작의 미세한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도록 ‘흘릴 부분’과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 내고 있었다.

이렇듯 안무와 움직임의 완성도가 매우 높았지만, 이번 작품의 꽃은 단연 번제라는 소재를 포착한 파격적인 안목과 깊이 있는 사유다. <내장과 가죽>이 드러내는 주제의식은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서는 관객에게 깊은 한숨을 선사한다. 이 작품의 소재는 히브리어로 ‘코반올라’, 우리말로 ‘번제’이다. 여기서 ‘코반’은 희생, 희생적 행위를 의미하며 ‘올라’는 상승하다, 올라간다는 뜻을 지닌다. 번제는 그 희생 제물을 가죽과 내물만 빼고 모조리 불에 태워 그 향기로 절대자를 기쁘게 해드리는 제사이며 제사 행위의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춘 제사, 곧 ‘완전한 제사’이다. 두 무용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상의를 탈의한 남성의 동작은 제단에 늘어놓기 위해 가르고 분절하는 갈비뼈와 복부를 떠올린다. 여성의 큰 동작은 태우기 전에 절단하는 ‘제물의 사지’를 연상시킨다. 작품 속에서 짐승 곧 제물 역할을 사람이 대신하다 보니 온전한 제사는 뜻밖에 인신공양이라는 그로테스크한 테마로 치환됐다.

이는 살인과 강간, 사이코패스, 상하관계와 권력의 탄압같이 지금도 암암리에 가해지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폭력과 억압, 그에 관한 불편한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극악한 세상에서 침묵하는 신에 대한 저항일까? 배진호는 신이 제물에서 제외하라고 명령한 내장과 가죽을 콕 짚어 전면에 내세웠다. ‘이 의식 혹은 행위에서 내장과 가죽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제사라는 주제를 왜곡시켜 온전한 제사의 형태를 재구성하려 한다.’라는 다짐을 실현하려는 듯이. 더 나아가 신이 미워하는 인간의 본성, 곧 욕망에 이끌려 나약하고 추악해지는 구역질 나는 속성,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 질긴 속성까지 포용해달라는 신원은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내장과 가죽>은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지적하는 것처럼 타자(他者)에 대한 희생양화와 이를 통해서만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욕망의 소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 근원의 폭력성을 고발하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이 그로테스크함은 우리의 일상성을 뒤흔들고 충격을 전달한다. 무대 위의 공간은 일상의 공간과는 다른 세계를 펼쳐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 거리감을 단숨에 제압하고 우리 눈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압도한다. 말쑥한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가죽에 불과하며, 우리 모두는 욕망을 위해 얼마든지 타자를 번제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무대 위의 제사장과 같은 존재는 아닐는지…. 작품 기저에 흐르는 이 씁쓸함이 바로 그로테스크한 경이의 숨겨진 비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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