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공지능으로 영화주인공 캐스팅? - '생성예술의 시대'
[신간] 인공지능으로 영화주인공 캐스팅? - '생성예술의 시대'
  • 이미우 기자
  • 승인 2023.06.19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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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예술의 시대' 표지 (사진제공=동아시아)

[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인공지능(AI)을 위시한 이 시대 가장 첨예한 신기술에 주목하고 있는 뇌과학자 김대식이 이번에는 생성AI를 활용한 AI 그림의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네 명의 예술가가 여기에 동참했다. 영화감독 김태용, 그래픽 디자이너 김도형, 현대예술가 이완, 무용가 김혜연이다. 한 명의 인공지능 전문가와 예술가 네 명의 만남은 다소 모험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예술가들이 AI와 협업해 그림을 ‘생성’한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예술가의 상상력은 ‘일반인’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순수한 흥미에서 착수한 프로젝트는 작업을 거듭하는 동안 점차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각자의 방식대로 자극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AI그림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영화감독 김태용은 작업을 진행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힌다. 그가 시도한 작업은 ‘달리’를 통해 실제로 한 편의 영화를 찍기에 앞서 으레 하는 것과 같은 콘셉트아트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평소에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시라는 이성복의 〈남해 금산〉을 소재로 삼았다. 〈남해 금산〉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게 될까? 어디가 로케 장소로 어울리고,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좋을까? ‘달리’를 통해서 수만 년 전의 고대유적이 묻힌 사막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이상’의 여주인공, 그리고 한국어로 쓰인 한 편의 시가 한 편의 영화로 거듭났다. 김태용 감독은 이 오롯한 과정을 거치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온갖 것들이 이 작업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실감했다. 치열한 고민과 격렬한 토론, 다소 잔인한 취사선택까지. 이에 그들은 질문한다. AI를 통한 ‘생성’이 ‘창작’이 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는’ 그림에서 ‘생성하는’ 그림으로 - 창작 패러다임의 전환과 새로운 예술의 사조

2022년 9월 3일,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린(Jason M. Allen)의 그림이 콜로라도 박람회 미술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실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그가 게임 디자이너였기 때문도, 아마추어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출품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이 AI그림 생성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통해 만들어진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순수 예술가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그러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칼 듀란(Carl Duran)은 사전에 이 그림이 AI그림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나,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도 결정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오히려 그는 이 그림이 아름다운 작품이며, AI 기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수상 결과가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이 놀라운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반년 동안, 물밑에서 발전해오고 있던 AI그림에 불이 붙었다. 미드저니, 달리는 물론이고,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을 기반으로 한 노벨AI, 웹UI 등 다양한 AI그림 생성 프로그램이 확산되었고, 그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AI그림 또한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그야말로 ‘누구나’ AI를 통해 그림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2023년 4월에는 일본의 만화가 유키오(ユキヲ)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AI를 사용한 일러스트를 ‘그린다’라고 하기보다는 ‘출력한다’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발언을 남겼다가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뭇매를 맞고 사과하는 일이 일어났다. AI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이렇듯 ‘그리다’라는 단어에 얽매이는 것은 아직 AI‘그림’이 과도기적인 위치에 있음을 방증한다. 예술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 으레 겪을 수밖에 없는 산통이다. 돌아보건대, 처음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의 반응 또한 이러지 않았을까? 초기의 사진기가 가지고 있던 기계적인 한계를 논외로 하면,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사진(picture)에도 그림(picture)과 같은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지 말지 또한 한때의 논란거리였다. 현실의 상을 평면에 옮긴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결국 그리는(draw) 것과 달리 사진을 찍는(shoot) 것이 독자적인 예술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빛과 구도, 피사체에 대한 이해. 작금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사진을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AI그림이 맞이할 미래가 아닐까? 같은 사진기를 들고 있다 한들 누구나가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같은 AI 프로그램을 쓴다고 해도 누구나가 동일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AI그림이 기존의 그림과 패러다임을 완전히 달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임을 인정할 수 있다면 AI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generate)’ 것을 누구도 꺼려하지 않을 것이다.

조각,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수단을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하는 현대예술가 이완은 작금의 변화를 두고 “벤야민이 말한 기술복제 시대의 긴 터널을 지난 기술창작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AI를 본격적인 작품의 도구로 활용하는 시대다. 이는 기존의 예술가들을 도태시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이제까지의 인간 예술가가 도달하지 못했던 지점까지 끌어올리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남해 금산> 중에서 (사진제공=동아시아)

‘생성된’ 그림은 기존의 예술을 완전히 대체할 것인가, 각자의 자리에서 생성 그 이상의 예술을 시도하다

저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포인트는 AI그림 생성이 단순한 놀이 또는 기존 예술체계의 보조적인 도구에 그칠 것인가, 혹은 예술 자체를 새로운 국면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뇌과학자 김대식은 테디베어, 스타워즈 등 기존 미디어의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AI그림을 선보인다. 한편 디자이너 김도형은 AI가 인식하는 ‘표준적인’ 인간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며, ‘폰트 디자인’이라는 다소 복잡하고 구성요소가 많은 ‘디자인’의 영역에 AI그림을 활용해보기도 한다. 달리에게 탑재된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 이미지를 재조합하거나 변형하는 등의 시도를 하는 현대예술가 이완, 달리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 창작활동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영화감독 김태용의 작업 또한 독자적인 시도다.

그중 무용가 김혜연은 ‘육체’를 갖지 않은 AI라는 달리의 특성에 주목하여 ‘몸’을 테마로 다양한 작업을 전개한다. AI는 그저 기존의 그림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 외에,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인식할까? 인간과 AI,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괴리를 극복하고 협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김혜연의 작업은 AI그림을 처음 접한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한 그래픽 디자이너 김도형 또한 이러한 ‘육체’와 ‘신체감각’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피부가 없는 AI에게 ‘피부’란 무엇일까? 또, 그들이 그림을 학습함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피부와 배경을 경계 삼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그러한 구분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알파고’ 당시 바둑 기사들이 AI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도 AI가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를 이해하고 그려내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는 디지털 작업물이 수용자에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첨가할 수 있을지를 이 책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제책 과정에서 책을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눠, 종이를 바꾸고 종이의 가공 방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차별화된 경험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최첨단인 생성AI 그림을 보면서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또한 가닿고자 하는 예술적인 추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들은 “AI그림은 이런 것이다” 하고 정의내리지 않는다. AI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매뉴얼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AI가 예술의 지평을 개척하는 신세기에 함께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시도하는 것은 그런 AI와의 대화다. 동시에 AI를 통해 자신의 예술체계를 확장시키고자 하는 흥미진진한 시도다. 이 흐름 속에서, 이러한 변화에 동참하고 스스로를 고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시도를 접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지은이들

김대식

뇌과학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뇌과학, 뇌공학, 인공지능으로, 뇌과학의 최신 연구성과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성찰해 왔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매서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보냈으며,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조교수, 보스턴대학교 부교수를 역임했다.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김대식의 빅퀘스천』 『메타버스 사피엔스』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 등을 썼다.

김도형

사회·문화 현상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미술과 패션을 비롯, 문화계와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 현재 Studio Grayoval의 아트 디렉터이다.

이완

작가 이완은 자본주의 시스템, 정치, 역사, 문화 등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 대한 작업을 조각, 설치, 비디오다큐멘터리, 미디어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를 위한 ’유니온 아트페어‘를 최두수, 서준호와 함께 공동창립,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미디어와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연구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파리 LVMH재단 루이뷔통파운데이션, 청주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김혜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가 무용수이다'? 걷고(다리), 먹고(입), 인사하고(머리), 웃고(감정), 울고(눈물), 떠들고(언어), 꽃이 피고(자연), 비가 오는 이 모든 것은 움직인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이 움직임들이 곧 춤이 되고, 안무의 소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안무가 김혜연은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춤’이라는 모토를 담은 안무작과 무용 콘텐츠를 선보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행복을 감각하고자 한다.

김태용

장편영화 작업 틈틈이 공연 및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 〈만추〉 등을 연출했다.

DALL‧E2

오픈AI에서 제공하는 그림 프로그램으로, 2022년 4월에 공개되었다. 자연어로 된 설명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그림을 생성해주며 개념이나, 속성, 스타일을 조합하거나 이미지를 수정 또는 변형할 수 있다.

'생성예술의 시대' 공동저자 무용가 김혜연 (사진제공=김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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