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열혈남아의 질주본능-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연주회
[공연리뷰] 열혈남아의 질주본능-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연주회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22 0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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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빈체로)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2023년 6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루체른 심포니는 그간 제임스 개피건과 내한하여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번에는 2021년부터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는 미하일 잔덜링과 함께했다. 그는 거장 쿠르트 잔덜링의 아들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지휘자로서 자신만의 위치를 굳건하게 다져왔다. 한국 무대에서는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함께 꾸준히 좋은 연주를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연주회의 메인 디쉬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 뛰어오르듯 포디엄에 올라 저 유명한 운명의 동기를 순식간에 폭발시켰다. 호른의 날렵한 연주를 연출하는가 하면, 목관의 날카롭고 예리한 어택으로 통렬하고 긴장넘치는 연주를 만들어냈다. 그의 지휘에 따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순간적인 폭발력을 보여준 오케스트라의 기량이 놀라웠다. 1악장의 폭풍우가 지나고 두번째 악장은 전원교향곡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모든 연주자가 릴랙스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몰아치듯 시작한 제3악장은 지휘자의 질주본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빼어난 첼리스트답게 현악기로 하여금 다채로운 표정의 변화로 음악의 폭과 깊이를 더했고, 전형적인 해석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시도를 취했다. 현악기의 피치카토 역시 강렬하면서도 변칙적이어서 폭풍전야의 긴박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로 이어진 통렬한 제4악장은 쾌속으로 이어지는 지휘자의 리드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정교한 합주력으로 충실하게 반응했다. 갑자기 과속 페달을 밟아 질주하다 막바지에서 순간 템포를 늦추며 유머러스한 음악을 선사하는 반전매력이 있었다. 시종일관 예측불허의 연주가 이어졌고, 이처럼 새로우면서도 흥미롭고 완성도 높은 <운명교향곡>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사진제공=빈체로)

이번 연주회의 전반부에서는 인간승리의 아이콘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가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했다. 불굴의 의지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그는 존재 자체가 감동이기도 하지만 작년에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로 우리 음악팬에게 다채로운 음악의 스펙트럼을 보여준 바 있어 인기가 무척 높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그를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좌에 오르게 만들어준 각별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한국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던 작품이라 더욱 의의가 컸다. 이 작품을 제대로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나라 청중은 근래에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서울시향)와 길 샤함(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 작품의 진수를 만끽한 바 있다.

이 날 하델리히의 연주는 작품을 자신만의 연주력으로 승화시킨, 그야말로 개성 만점의 쾌연이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테크닉으로 칼날같은 연주를 선보이며 포문을 열어, 정확한 운지를 바탕으로 고음에서 더욱 날카롭게 몰아붙이는 속주로 압도했다. 변주에서 그다지 변화를 꾀하지 않고 치밀하게 일관된 연주를 하였다. 카덴차에서 돌연 고요한 모습으로 변모하였는데, 이는 두번째 악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출이었다. 하지만 제2악장에서도 명상적인 모습보다는 유연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밀도있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제3악장은 현란한 기교를 과시하면서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현란함을 선사했고 묵묵히 고요한 서포트를 해 주던 오케스트라도 마지막 악장에선 마음껏 포효하며 솔리스트와 일전을 불사했다.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사진제공=빈체로)

그는 열광하는 객석의 뜨거운 반응에 바로 화답하듯 앙코르로 두 곡이나 들려주었다. 작품 선택만 봐도 얼마나 청중을 배려하는 따뜻한 음악가인지 알 수 있었다. 영화 <여인의 향기>로 친숙한 가르델의 탱고 <포르 우나 카베사(머리 하나 차이로)>로 달콤하면서도 낭만적인 음악성을 보여주었고, 바로 이어서 자주 연주하던 퍼킨슨의 <루이지애나 블루스>로 미국의 멋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이탈리아에서 독일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에서 수련하고 음악적 성장을 했던 코스모폴리탄적인 하델리히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이날 전반부는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작곡가 프란츠 슈레커의 초기작 <인터메초>로 시작했다.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첼리스트답게 현악기로부터 소리를 밀도있게 뽑아내었다. 현의 음색 변화를 통해 동력을 확보한 점도 현악 컨트롤에 능한 지휘자의 역량이었다. 작품의 가요성을 부각시키며 효과적으로 후기 낭만주의적 신산한 정서를 재현했다. 최근 조명받고 있는 잊혀진 작곡가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신선한 기회로 청중을 기쁘게 했다.

이제 역량있는 외국 오케스트라의 내한이 빈번하다. 이날 무대는 많은 연주 가운데에서도 알찬 프로그램과 멋진 협연자의 충실한 연주로 매우 내실있는 연주회였다. 특히 지휘자의 개성이 빚어내는 음악적 결과물이 시종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사진제공=빈체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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