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예술혼
[공연리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예술혼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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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정의 세계 최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 독주 편곡 시즌Ⅰ

 

피아니스트 임현정 (사진제공=다나기획사)
피아니스트 임현정 연주 모습. (사진제공=다나기획사)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어머니에게 “나 잘 있다”고 올린 유튜브 동영상으로 스타가 되었다. 이후 클래식 명문 EMI 클래식 사장 앤드류 코넬에게 발탁되었다. 20대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데뷔 앨범으로 발매한 유일무이한 피아니스트이자 데뷔 앨범 최초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 1위, 빌보트 클래식 종합 차트 1위 등으로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 무대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독주 편곡’이라는 연주회가 올랐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과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 Op.30>을 연주자가 직접 편곡하여 세계 최초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검은색 바지와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피아노를 무대 정중앙에 놓지 않고 객석에서 볼 때 오른쪽 2/5 지점에 놓았다. 동시에 연주하는 영상을 무대 배경 전체에 고스란히 쏘아 자신의 연주 모습으로 화면을 꽉 채웠다. 오케스트라가 없어서 부족할 수 있는 장면을 보완한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최초 연주'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탓인지,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은 블랙홀에 빨려든 것처럼 집중하는 듯했다. 그런데 첫소리부터 피아노 해머의 습기 머금은 소리와 잡음 섞인 배음이 들리기도 했고, 피아노 의자가 균형이 안 맞아 덜컹거렸는지 몇 번씩 고쳐 앉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영화의전당은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한 관객들을 제1악장이 끝나자마자 바로 입장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늦을 수밖에 없는 개인 사정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리 와서 연주회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무엇인가? 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입장을 시키든지 아니면 살짝 열어주고 맨 뒤의 빈 좌석에 우선 앉게 한 다음 인터미션 때 제 자리를 찾아가게 했으면 연주와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연주 중인데도 하우스매니저가 불빛까지 비추며 무대 맨 앞자리 객석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굳이 본인이 예매한 자리를 찾겠다고 연주 도중 객석 제일 앞자리까지 가는 관객은 정말 예술가를 좋아하고 그의 예술행위를 즐기려고 공연장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유명세 때문에 온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아뭏든 이런 상황때문에 연주자와 다른 청중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3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집중을 할 수 없었고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렇게 끝났다.

선수는 후반전에 강하다고 했던가. 15분의 인터미션 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씩씩하게 커튼콜에 응답하고 첫 번째 앙코르로 이어졌다. 예상대로 영화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Op.43> 중 제18번 바리에이션 Andante cantabile를 선사했다. 이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독주 편곡 시즌Ⅱ’의 예고편으로 보였다. 두 번째 앙코르는 일본에서 연주해 논란이 있었던, 연주자가 직접 쓴 <아리랑 판타지>였다. 곡의 중간을 넘어 느린 부분의 고전적 아리랑 선율이 나오기 전 객석을 향해 지휘하며 노래를 유도해 청중과 교감했다. 공연이 끝나고도 식을 줄 모르는 커튼콜에 이어 팬들을 위한 사인회가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사진제공=다나기획사)
임현정 연주회 현장 (사진제공=다나기획사)

음악사에 남을 또 하나의 예술적 사건

거대한 오케스트라 편성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두 대의 피아노도 아니고 한 대의 피아노만으로 음악적 노트를 모두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오케스트라의 주요 멜로디는 전체적으로 묻혀 깔끔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또 피아노 솔로와 복잡한 오케스트라의 다툼과 같은 구조적인 치밀함이 아쉬웠다. 게다가 규모가 큰 원곡의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어서 그랬는지 전체적인 다이내믹 레인지가 큰 소리에만 머물렀다.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누구보다도 빠른 템포 때문에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노스탤지어를 충분한 호흡으로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부족했다. 하지만 수십 명이 연주하는 수십 개의 다양한 악기들이 해야 할 역할을 열 손가락과 한 대의 피아노로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직접 편곡해 피아노 솔로 리사이틀을 해냈다는 것이고, 이것은 클래식 음악사에 남을 큰 사건이다.

객석에서 그의 연주를 볼 때마다 같은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생각을 한다. 필자는 2016년 4월, KNN 라디오 <더클래식 정희정입니다-피아니스트 김정화의 공연 다시 듣기> 방송을 위해 불교와 클래식의 만남,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공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느꼈지만 그의 연주는 고전적인 도제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듣기에는 생경하게 느낄 수도 있고,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精緻)함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중은 열광한다. 그 이유는 그가 하는 작업이 예술의 본질을 말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가슴에서 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예술가의 모든 경험은 자신만의 언어가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히 예술언어가 되는 것은 예술가가 그것을 오랫동안 곱씹어 자신의 언어로 만든 것이다. 시대적 고난이든 내면적 고뇌든 예술가 자신의 경험을 직시하고 살펴서 그 뿌리를 알아내고 표현한 것을 우리는 예술이라 한다. 우리는 그런 예술적 승화를 아름다움이라 여기며 그 예술은 만고의 예술이 된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문학이나 모든 장르가 같다.

니체에 따르면 예술은 억압과 진부함의 족쇄에서 벗어나 삶과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작업이며, 고통에 익숙해지고 고난을 승화시키는 사람이 예술가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해명할 수 있는 단서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예술적 욕망이라 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적합성에 대해 비판하며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를 지지했고, 이는 예술가들의 도전하는 삶의 선택에 정당성을 제공했다. 그에게 예술이란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도록 자극하는 위대한 에너지이며 삶을 가능케 하는 위대한 움직임이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사진제공=다나기획사)
임현정 연주 모습. (사진제공=다나기획사)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임현정의 경우가 그렇다. 음악계의 다른 천재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것도 아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자발적으로 음악을 선택하고 어린 나이에 이방인으로서 겪었던 억압이 음악언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언어로 주변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정립하였다. 그의 연주는 정해진 악보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세계를 이해하려 하고 자신만의 음악언어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고전주의가 아니다)이라는 작품들을 이해하고 그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을 현실 속에서 표현하고 현실과 연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위대한 선배와 나눈 오랜 대화 속에서 가슴에 담은 것을 자신이 가진 음악적 예술적 끼, 예술적 신명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결국 그는 니체가 말한 예술의 모습, 예술가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된다.

임현정은 단순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큰 범위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권력의 의지(der Wille zur Macht)'에서 ‘마흐트(Macht)’는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무언가를 넘어서려는 힘을 말한다. 여기서 ‘마흐트’는 예술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예술도 예술가의 승화를 통해 현재의 구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밝은 표현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는 말했고 그는 어두운 산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빛나고 강하게 동굴을 떠났다.”

이처럼 예술가의 역할은 고착된 영토, 갇혀있는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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