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22] 춘천 축제 이야기
[낭만논객의 춤시선-22] 춘천 축제 이야기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9.1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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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춘천공연예술제를 치르기까지
교방 굿거리춤 (사진-이도희)
장인숙 희원무용단 '교방 굿거리춤' (사진=이도희)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필자는 경상도 시골 출신 문학소년으로, 국민(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대구로 전학했다. 조금씩 낯가림을 극복해가며 중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1978년 봄 서울의 모 대학에서 신문방송학도로서 나름 다사다난한 청춘시절을 보내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격동의 1980년에는 휴교령으로 인해 마음 가는 대로 이곳저곳 방황하며 여러 도시의 이면을 무작정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부산과 경주지역은 물론, 당시 조금은 나들이하기가 두려웠던 호남지역의 목포항에서 서해 홍도를 다녀온 여행이 오래도록 청춘시절, 가장 의미 있는 추억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다음은 아마도 강원도 춘천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춘천 가는 기차>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호반도시 춘천에 대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에는 향수와 낭만적 풍경, 그리고 에티오피아 카페 아래 소양강변과 오리배를 탔던 그때 그 시절,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으리라. 아울러 춘천의 유명 먹거리인 닭갈비와 막국수, 메밀전병과 올챙이국수, 옥수수까지 저마다 최애 음식을 자연스레 손꼽을 것이다. 젊은 날의 기억과 함께 춘천(봄내)은 여전히 당일치기 주말 여행지로 단연 선두권에 자리한다.

모던테이블(사진제공=이도희)
모던테이블의 공연 (사진=이도희)

'예술과 다짐하다.’ ‘예술과 성장하다.’ 이 두 가지 구호는 올해 제 22회 춘천공연예술제(예전 이름은 춘천아트페스티벌)의 주제이다. 지난 3년간 팬데믹 시기에도 새로운 축제방향을 고민하면서 대면축제의 대안으로 고화질의 영상제작을 시도, 홈 딜리버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영상을 쉬지않고 제공해 왔다.

춘천공연예술제는 지난 2002년 '춘천무용축제'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종료 이후 우연히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리 다함께 여름휴가를 호반의 도시 춘천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 모여 보내자고 전격 합의하면서 출범한 행사가 춘천무용축제였다. 축제는 무대 스태프들이 중심이 되어 꾸렸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명절’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매년  8월 둘째주에 열리게 된다. 고 김수근 건축가의 근대무형유산인 춘천어린이회관 야외무대서 시작된 이 축제가 해를 거듭하며 금년 22회까지 올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하면 엄살 부린다고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암튼 돌아보니 그땐 그랬었다.

2004년 3회차부터는 '춘천아트페스티벌'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었다. 작지만 의미있는 축제로 인정을 받는 가운데 나름 승승장구하며 8월 둘째 주 ‘한여름 밤의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지난 22년 동안 수 백 명의 예술가들과 스태프, 자원봉사자, 무대기술아카데미 그리고 이름 모를 후원자들까지 ‘십시일반’의 축제 정신을 오롯이 지켜 왔다. 그러는 사이 이 축제는 지난 2017년(제 16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지역대표 공연예술축제로 당당하게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하던 2020년, 다시 한번 축제의 명칭이 바뀌게 된다. 예전에도 '아트 페스티벌'이란 명칭이 시각예술, 즉 미술 분야 용어에 가깝다는 지적들이 간헐적으로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공공 지원금이 대폭 늘어나면서 축제의 명칭이 본격적인 전문성을 명시해야 한다는 여론도 생겨나는 분위기에서 결국 '춘천공연예술제'란 이름으로 새로운 출범을 알리게 된다.

코스모스인아트(사진제공=이도희)
코스모스 인 아트 (사진=이도희)

어쨌거나 이 행사는 올해까지 7년째 공적 지원금을 받아 규모를 조금 더 확장하며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자존감을 확인시키는 중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춘천시민들에게 여름휴가 선물로 전달해 왔음을 자부하고 싶다. 특히 팬데믹의 폭랑 속에서 비대면 축제로 전환한 점은 치켜세울만 하다. 엄청난 고화질 영상제작과 홈 딜리버리 방식을 시도, 현장성이 근간인 공연예술축제의 대안적 방식을 도입하는 등 축제감독과 주변 여러 스태프들의 노고로 지난 3년을 잘 버텨냈다.

최웅집에 이어 이윤숙이 축제감독을 맡은 제 21회 춘천공연예술제(2022년)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절호의 기회였다. 팬데믹의 공포와 상처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다짐’을 약속하는, 작지만 의미있는 축제로 되돌아와 아름다운 작품들을 춘천시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시키는 ‘춤문화의 힘’을 새삼 확인시킨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버텨낸 인내와 열정, 세대교체, 그리고 한 지역축제의 지속성이 가져다준 축복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을 주었으리라. 그리고 지역 시민들에게는 ‘몸의 진정성’이 던지는 춤 메시지를 이해하면서 스스로 놀라움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99아트컴퍼니(사진제공=이도희)
99아트컴퍼니 (사진=이도희)

올해 춘천공연예술제 프로그래밍(시그니처, 버전 업, 파인더 총 10개 작품)이 좋았다는 인사를 여기저기서 덤으로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까지 22회의 축제 가운데 20회 동안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면서 일관되게 펼쳐온 결과일 것이다. 좋은 춤은 일반인이 봐도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춤 대중화’라는 무용계 지상최대 명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중적 보급과 유통’이 이루어져야 좋은 공연들이 동 시대를 대표하는 레퍼토리로 살아남게 되고 훗날 전통춤으로까지 수명연장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중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간의 협업을 통한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우리 시대의 예술춤’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날이 분명 올 것임을 필자는 공연예술 현장 40여 년, 현재도 여전히 믿고 있다. 해서 춘천아트페스티벌에는 예술감독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지 않지만 필자 자신은 예술감독을 자처해 왔다. 때로는 애증의 맘으로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프로그래머로 ‘재능기부’를 해 왔다. 몇 년 전부터는 '십시일반'에서 이름을 따온 (사)텐스푼 운영위원으로 프로그램 언저리에 필자의 이름이 올라 있기도 하다. 경상도 촌놈이 22년간 여름을 한림대 기숙사 혹은 세종호텔에서 호사(?)를 누리는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특별한 학연, 지연도 없던 30대 청춘시절과 불혹과 지천명을 넘어서까지 이어질 줄은... 그야말로 아이로니컬한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금년 8월 첫 주에는 2023 텐스푼음악축제가 별도로 음악 프로그램을 구성해 개최되었다. 지역축제의 다양성에 방점을 찍으며 예술장르의 확장은 물론, 가무악 일체라는 전통적 축제의 의미를 살리고 다양한 콘텐츠 확보라는 방침 아래 새로운 축제 운영시스템 구축을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해마다 8월 둘째 주가 되면, 저마다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명절처럼 기차로 혹은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모이기 시작되는 대이동의 시간이 된다. 누군가 내린 명령 때문에 억지로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밀린 여름방학 숙제 같은 행사도 아니다. 거기에는 늘 축제현장의 지킴이들이 반겨주는 정과 의리가 있다. 그리운 사람들이 언제든 불쑥 나들이를 해도, 변함없이 ‘축제에 진심’인 그 누군가가 마을 어귀 대장군처럼 현장을 지키고 있다. 또한 훌륭한 예술가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작품과 기량, 그리고 협업을 통한 결과물의 완성도를 체감하며 스스로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런 시간과 공간들이 활짝 열려 있다. 한번 찾은 이들이 다시 방문하도록 만드는 건  바로 그 신뢰감이 아닐까 한다. ‘참가하는 모두가 행복하고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게 만드는' 이런 모델의 축제 하나쯤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름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갈 만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장은정무용단(사진제공=이도희)
장은정무용단 (사진=이도희)

축제의 명칭 변경은 축제정신을 지켜가는 ‘사람의 마음’에 비하면 외형적인 문제이며 축제기간 에 벌어지는 관계맺기의 소통채널 확립은 예산 증액 혹은 삭감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항이다. 글로벌 시대에 지역문화를 알리려는 행정가들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춘천공연예술제 포스터 (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춘천공연예술제 포스터 (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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