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거듭나야 할 제주4.3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공연리뷰] 거듭나야 할 제주4.3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02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비극을 비극으로 아로새기는 아픈 기억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순이삼촌' 2023 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8월 1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4·3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올랐다. 제주 4·3사건이라는 근대사의 가슴 아픈 질곡을 제대로 알리고 창작문화예술 콘텐츠를 육성하기 위해 제주4·3평화재단, 제주아트센터, 부산문화회관의 공동기획/제작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부산제주특별자치도민회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오페라이다. 그동안의 공연을 통해 <순이삼촌>은 “의미 있는 스토리와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고, 새로운 가치 생산에 이바지”했다는 극찬을 받았으며, ‘망각을 일깨운 콘텐츠’로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로부터 '2022 세상을바꾼콘텐츠상'까지 받았다.

<순이삼촌>은 제주 출신 소프라노 강혜명 예술총감독의 주도로 만들어진, 제주를 대표하는 공연물이다. 제주아트센터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 제작, 2020년 6월 20일 제주아트센터에 언론을 초청해 주요 아리아 등 10여 곡을 갈라 콘서트로 선보인 후, 같은 해 11월 7-8일 양일간 같은 장소에서 장인혁 지휘로 초연되었다. 창작진은 연출 강혜명, 대본 김수열, 작곡 최정훈 등이다.

이후 ‘순이삼촌 광란의 아리아’가 추가되어 전체 러닝타임이 조정되었고, 2021년 9월 17-18일 제주아트센터, 2021년 12월 30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강혜명 연출 및 김홍식 지휘로 재연되었으며, 2022년 9월 3-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대한 고마움과 헌정의 의미로 2회 전석 무료 공연이 이루어졌다.

올해는 창작문화예술 콘텐츠의 성숙을 기대하며 지난 2월 오디션을 통해 순이삼촌 2명, 상수 1명, 큰아버지 1명을 새롭게 선발, 4월에 제주 공연을 가진 데 이어 제주4·3의 가치와 정신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고자 부산 공연이 준비되었다. 본 공연에 앞서 지난 7월 28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제작발표회를 가져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부산문화회관에서의 본 공연은 전 좌석 무료로 진행되었는데, 예약이 시작된 것을 사람들이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준비된 1,200석이 모두 동나버렸다. 공연 사실을 알기도 전에 사전예약이 끝나다니?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나서 200석이 추가로 마련되었다.

제작발표회에서 예술총감독 강혜명은 제주 출신인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오페라이고, 광장문화였던 4·3에서 탈피해 실내로 옮겨와 공연예술의 꽃이라는 상징성으로 오페라를 만들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경기, 서울에 이은 부산 공연에서 주목할 점으로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 부산오페라합창단 등 현지 예술단체와 첫 번째 협업을 통한 공연이라 더 의미가 깊다”라며, “제주 예술인의 주도에서 확장해 생소한 역사적 진실을 미체험 세대와 공유하고 공감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4·3을 체험하지 못한 미래세대와 미체험 세대에게 4·3을 알리고자 전국화 사업의 일환으로 다른 도시에도 찾아가서 공연할 할 생각이 있으며 일본 공연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했다.

테너 김신규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테너 김신규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테너 이동명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테너 이동명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아쉽기만 한 장면장면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현기영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948년 음력 섣달 열아흐렛날,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군인과 경찰에 가족이 있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양민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학살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이 그 사실을 알리는 데 문학사적,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면 오페라는 그 상처와 아픔을 딛고 서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자 의도한 작품이라는 해설도 있었다.

하우스의 불이 꺼지자 일반적인 오페라처럼 서곡이 먼저 나오지 않고,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은 작은 슬픔이다. 그들에게는 4·3의 처절한 슬픔보다는 흰 눈 위의 얼어 죽은 새를 슬퍼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 이어 프롤로그 아리아 '그날의 기억'(테너 김신규)이 나왔다. 이 아리아는 소설 <순이삼촌>으로 금단의 역사를 세상에 알린 현기영 선생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베이스 함석헌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바리톤 장성일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큰 기대를 품고 관람했던 공연은 시작부터 "저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지휘자 머리 중앙을 시종일관 비추는 조명이 눈을 거슬리게 했으며, 피트 안에 있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마냥 크기만 했다.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음악적 센스가 중요하다. 심포니 지휘를 잘한다고 오페라까지 잘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당연히 지휘자도 오페라 경험이 많아야 한다. 

전체적인 음악 분위기는 비슷한 조성에 단조 풍의 신파조 가요나 군가를 연상시켰다. 또한 오페라 장르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적당한 길이의 아리아와 합창이 주를 이루어야 하는데, 노래를 부르다 대사를 하고 대사를 하다가 다시 노래가 나오는 반복이 계속되어, 무슨 연극에 짧은 노래를 보탠 것 같았다. 기억력과 귀가 좋은 관객들이 오페라 전체를 감상하면서 자연스레 기억할 수 있는 주제 선율도 없었다. 인물, 상황 등이 반복되는 짧은 주제나 동기를 묘사할 때마다 공통으로 사용되는 주제선율을 곡 전반에 흐르게 하는 라이트모티브와 같은 기본주제나 예감동기를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메조소프라노 최승현, 부산오페라합창단, 순이삼촌 소년소녀 오페라중창단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순이삼촌> 2023 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무대 양쪽에 있는 스크린 위의 영어 번역도 적절하지 않았다. 제주의 정서에서 '삼춘(삼촌)'은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동네 주변 친척 어른들을 남녀 구별 없이 지칭하는 용어다. 영어 제목 <Aunt Suni>는 주인공이 여성인 점을 반영해 별다른 고민 없이 만든 것 같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연기대사도 노래가사와 마찬가지로 통일성 있게 자막 번역을 해주어야 했다. 객석에 초대된 외국인들이 육지 사람들도 잘 모르는 제주 방언까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장차 해외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전문가에게 의뢰해 제대로 만든 의역은 필수사항이다.

주역들과 합창은 주로 무대 앞쪽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무대 옆과 후면의 계단과 세트를 활용하지 않은 점도 무척 아쉬웠다. 게다가 가수들이 노래할 때마다 무대 바닥의 끝자락에 배치된 5개의 붐 마이크와 다른 마이크들, 그리고 음향 스피커의 소리가 부딪혀 빚어내는 잦은 하울링은 객석의 귀를 무척 불편하게 했다.

맨 마지막, 모든 출연진과의 전체 합창을 위해 함께 나오는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의상을 보고는 경악했다. 모든 출연자 맨 뒤에 병풍처럼 우뚝 서 있던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 단복의 하얀 재킷은 생뚱맞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 한 곡을 위해서도 오랜 시간 공들여 연습하듯, 피날레를 장식하는 합창단의 의상도 무대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모르겠으나, 사소한 것이라도 통일성 있게 세심하게 챙겨야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 않겠는가.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순이삼촌>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어린 상수 진소빈, 어린 길수 이정현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소프라노 강혜명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장르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창작오페라'

오페라라고 장르를 규정한 <순이삼촌>은 음악극도 연극도 뮤지컬도 다큐멘터리도 씻김굿도 아닌 경계가 모호한 장르였다. 긴 대사로 시작하여 길지 않은 아리아 사이사이를 빠짐없이 메우는 대사는 배우가 노래를 부르는지 가수가 대사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200명 넘는 출연진이 등장하는 대규모 공연이 장르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보니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킬 수가 없었다.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2막 ‘북촌, 이승과 저승 사이’가 시작되기 직전 효과음으로 사용된 까마귀 소리는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올만한 효과음이라 객석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제2막 1장이 시작되면서도 거듭되는 우스꽝스러운 까마귀 소리는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의 장치로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허접한 효과음으로 들렸다. 제3막 2장에서 어린 상수(진소빈)와 길수(이정현)가 스스로 배고픔을 달래는 '돌래떡, 지름떡'을 부르는데, 끝이 반 마디도 잘리지 않은 어설픈 죽창은 그나마 애교로 봐줘야 하는 건지.

제2막 3장에서도 옴팡밭의 까마귀 떼 소리는 여전했다. 어떤 평론가는 여기서 나오는 '광란의 아리아'를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광란의 아리아'에 비유하며 극찬했다. 그러나 루치아의 아리아는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소화하기 힘든 벨칸토 아리아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Oh, giusto cielo!... Il dolce suono”로 시작되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일명 '광란의 장면(Mad scene)'은 극한의 절망에 처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20여 분 동안 초인적인 기교와 음악적 해석을 담아내야 하는 아리아로, 벨칸토 시대의 오페라 미학을 규정하는 대표 장면이다. 반면 <순이삼촌>의 '광란의 아리아'는 텍스트조차 없이 "아~아아~아~"로 시작해서 끝나버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절규에만 그쳤다.

제4막에서는 최근 한국 창작오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의(祭儀) 장면이 너무 길게 지속되었다. 최근 창작오페라의 유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독립적으로 전체 의미를 서사하는 제의 장면은 분량이 적절할 때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리고 무대장치 중 조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장면까지 수없이 많은 샤막을 사용했는데 왜 그랬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연출이었다. 큐시트를 보고 싶을 정도로 오페라 전반에 사용되는 샤막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끝까지 보고 나서는 안타깝게도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한 140분의 러닝타임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예술이란 자신의 감성과 감정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아닌가. 초연 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10여 회의 공연을 마친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은 이 시점에 조명, 무대세트 활용, 음향, 자막, 번역, 작곡, 지휘, 가사 등 전체적 연출을 비롯해 대본과 음악까지 재검토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현기영 선생의 글은 음악에 맞춰 세련되게 정제되지 않았고, 강요배 선생의 어떤 그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무대미술은 남루해 보였다. 숭고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4·3이라는 가슴 아픈 질곡이 작품의 소재라고 해서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휘어 퍼포먼스 문석범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2023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춤꾼 박연술 (사진제공=제주4·3평화재단)

오페라는 오페라여야 한다

오페라를 '대사가 들어있는 음악극'이라는 큰 뜻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형태를 오페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오페라는 좀 더 문학적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음악적 완성도가 더 중요시되어야 하며, 아리아와 합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창 중심의 오페라에 대한 미학적인 비판과 반성으로 발생한 음악극(Musikdrama)도 훌륭한 장르인데 굳이 창작오페라라고 지칭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날 공연 중간에 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 중에는 음악애호가, 작곡가, 성악가, 지휘자, 연출가, 비평가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마저 추적추적 내린 주말, 그 빗길과 교통체증을 뚫고 지리산, 삼랑진 등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은 차비와 시간이 아깝다 못해 화까지 난다는 심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금까지 전문 평론가를 비롯해 이 공연을 관람하고 극찬을 한 사람들은 무엇에 그토록 감탄했는지 필자로서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이 공연에 대해 “오페라적 방식으로 관객을 설득했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면 다른 곳에서는 그토록 잘했는데 부산에서만 엉터리로 했다는 말인가.

물론 <순이삼촌>이 제주4·3이라는 가슴 저린 질곡의 역사를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렸다는 공은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가졌던 상상력은 공연을 보며 오히려 쪼그라들었고, 총체적으로 비극적인 이 사건이 '학살'의 장면과 ‘자식 잃은 어머니’의 장면에만 갇히는 느낌이었다. 대본작가가 현기영 선생의 소설이 나온 이후 더 많이 밝혀진 제주의 가슴앓이에 관한 연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공연이 끝난 한참 뒤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제주 학살이 다른 곳의 양민 학살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친구가 친구를 죽이게 만들고, 친척이 친척을 죽여야 했던 ‘살해강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을 쥐어뜯는 처절함은 별로 느낄 수 없었고 과거에 그냥 이런 아픔이 있었다고 읊조리는 신파조의 음악연극 같았다.

이날 지휘를 맡은 양진모는 ”<순이삼촌>이라는 작품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창작오페라로서 부산, 서울, 제주뿐 아니라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라고 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직품 전체의 디테일을 좀 더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다듬어야 제주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서 세계 예술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순이삼촌>이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으로 거듭나 세계무대에 오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