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신작 '암덕: 류(流)의 기원'
[공연리뷰]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신작 '암덕: 류(流)의 기원'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12.15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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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2-26알 국립정동극장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암덕: 류(流)의 기원'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예술에서 전통에 대한 논의는 늘 뜨겁다. 좌담회에서, 평론에서, 그리고 논문에서 펜과 입을 통해 무수한 담론이 성처럼 쌓인다. 하지만 전통의 현대화를 직접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또 있을까 싶을 지경이다. 전통춤, 한국창작춤, 창극, 연희 등의 분야에서 뿌리와 줄기에 대한 인식은 입문서이자 성서와도 같다. 한 명의 예비 예술가가 전통의 배움을 결심한 순간부터 창작에 관여하게 되는 지점까지, 그를 에워싸는 것은 스승에 대한 예우를 포함해 수많은 조건과 요구, 그리고 제한점들이다. 배운 것을 뼈에 새기지만 본인의 것을 찾아야 하고, 스승의 삶을 오롯이 따르되 그와 완전히 같을 수 없음을 알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서는 아니 되며,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되 모든 것은 삶의 경험을 통해 오랜 시간 고뇌를 거쳐 자연스럽게 몸을 뚫고 나와야 한다. 이러한 사정을 남김없이 끌어안고 전승과 창작이라는 양날의 검을 쥔 채 관객 앞에 서는 예술가들!

이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가을 끝자락 정동의 무대를 찾았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은 <암덕: 류(流)의 기원>을 통해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였던 암덕을 소환했다. 춤을 추며 쇠를 치고 탈을 썼다가 인형을 들었다가 버나 돌리기에 줄까지 탔던 남사당패의 삶은 종합연희의 현대화를 지향하는 정동극장의 정체성이자 방향성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과거의 서사와 구성에 녹아있는 개연성을 해체시킨 결과물이 싱그럽게 재기발랄한 가운데 미완의 여백이 곳곳에 보여 아쉬웠던, 그럼에도 흥미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암덕: 류(流)의 기원'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예의 있는 모던함

무대는 전반적으로 텅 비었다. 오색빛깔로 시청각을 자극하는 전통의 무대와 달리 색감을 빼고 음량을 줄이니 관객에게 강요하는 바가 없다. 춤의 질감은 한국 고유의 것인데, 현대적인 감각의 형(形)을 썼다. 국.공립무용단이나 극단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언어를 취하지 않고, 그간 정동 무대에서 갈채 받았던 정기공연의 스타일 역시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장단과 선율에 묻어가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를 피력하는 춤, 고개 살짝 숙이고 가볍게 발 구르며 치는 악기 소리가 관객을 휘어잡지 않는 느슨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이 모던한 이유는 과시하지도, 오기를 부리지도, 아집에 함몰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굵직한 몇몇 배우 어깨에 작품의 모든 짐을 지우거나 주제에 관한 공허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화려한 장관의 연출을 위해 무대 위 곳곳을 진하게 채색하지도 않는다. 대신 다채로운 움직임을 성실히 발명해 생명력 있는 군무로 구성함으로써 조용히 승부수를 띄운다. 구조를 살려 디자인한 의상이 멋스럽고 실감 영상으로 구현한 선의 이미지가 공간을 찌르며 자칫 냉랭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돋운다. 무용수와 연주자들의 견고한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되어 관객은 틈틈이 사색하고 둘러볼 수 있는 호흡을 갖는다. <암덕: 류(流)의 기원>은 전통과 모던 사이에서 전에 없던 표현법을 찾았다는 점만으로도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그 표현법이 작품의 전체 정서에 완전히 체화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새로운 언어로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 강렬한 전략과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암덕: 류(流)의 기원'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세련됨과 화려함은 상생할 수 없는 것일까?

적재적소에 전통의 요소가 영리하게 활용되어 독특한 감각을 만들지만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어 예상치 못한 괴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각 장면에 적용된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출중하다. 남사당패 여섯 마당에서 연유한 꼭두각시놀음 ‘덜미’가 작품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고, 어린 암덕은 덧뵈기 탈놀이의 탈을 주워들고 흥미가 생겨 남사당패에 입성한다. 예닐곱살 정도의 어린 암덕과 성인 무용수의 춤은 해맑음과 애틋함을 한 공간에 겹쳐 놓아 다른 작품에서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이인무로 기능한다. 남사당패가 역경을 마주한 순간에는 사자춤이 등장하여 주인공 ‘암덕’과 동료들을 일깨워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보통의 사자춤은 신명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즐거움 가득한 난장에서 이루어지는데, 상실을 의미하는 빈 무대에 음악도 없이 사자 한 마리가 걷는 모습이 생경하다. 고요한 가운데 사자춤꾼의 숨소리, 발소리, 튀어나온 눈방울 부딪치는 소리가 여실히 드러나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신명이라는 단일 색채의 판굿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한 의도가 진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서 풍물패의 익숙한 볼거리를 끝내 놓지 못한 부분은 전반부에서 느끼게 했던 참신함을 흐트러뜨린다. 모순적인 것은 많은 관객들이 풍물패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기댔던 등을 펴고 박수를 하며 화답한다는 점이다. 사유하는 관객과 즐기는 관객 모두를 잡고 싶었던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이미 늘어놓은 다양한 복선들이 통일감 있게 엮이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암덕: 류(流)의 기원'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무대 위 수십 명의 암덕

춤추는 암덕, 노래하는 암덕, 줄 타는 암덕, 그리고 어린 소녀 암덕이 무대에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는 수십 명의 출연자와 장치가 연결되어 거대하게 살아 움직이는 암덕을 형상화한다. 이러한 조합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의 주요 테마인 '움직이는 성'은 주전자, 냄비, 망치 등 각종 철제 집기들이 무작위로 접합된 것이다. 본래는 다른 용도를 가졌던 집기들이 모여 거대한 성을 만들고, 각각의 연결성이 다소 위태롭지만 점차 적응해나가며 움직이는 생명체로서의 성이 된다는 설정이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출연진이 만들어내는 암덕 역시 유사하다. 네 명의 암덕이 각자의 기량을 활용해 극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극이 전개될수록 네 명의 암덕은 그 존재감이 흐릿해진다. 특히 줄타는 암덕이 무대 뒤편에서 줄을 타고 풍물패의 연희가 무대 전면을 채우는 장면은 과연 누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줄타는 암덕은 풍물패의 동선을 따라가듯 좌우로 움직이고 때로는 관객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춤을 관조한다. 관객 역시 줄타는 암덕의 시선을 따라 연희를 즐기며 잠시 네 명의 암덕을 잊는다. 대신 연주자와 무용수들이 무대를 채우며 온 몸으로 표현하는 암덕의 고단한 삶과 운명 자체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러한 비선형적 전개는 암덕이 언제 어떻게 꼭두쇠가 된 것인지, 그 과정의 갈등은 어떠했는지 유추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지만, 소리와 몸짓이 쌓이며 성장해 나가는 암덕의 삶을 다원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제격이다. 한민족의 공연예술사를 반추할 때 신무용이나 신파극에서 인기를 끌었던 선형적 전개 그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시도, 더불어 동시대 예술의 다원성을 얹어 비선형적으로 구조화한 변화로 보인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암덕: 류(流)의 기원'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교감의 주체는 빛과 소리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각 장면의 막간을 채우는 것은 기술이 만들어낸 빛의 움직임과 악기 소리의 교감이다. 실감형 영상으로 구현된 물의 이미지는 꽹과리와 장구소리의 질감에 따라 부서지는 파도로 재현되어 ‘보이는 소리’로서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또 무대 뒷면에 투영되는 풍물패의 크고 작은 그림자가 서로 겹치며 또 다른 시각적 작품을 완성한다. 기존의 풍물은 연주자의 신체 움직임으로 소리의 파동을 확장시켰는데 이제는 공간을 가르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으로 소리의 파동이 확장되는 형국이다. 덕분에 연주자의 눈빛과 신체에만 집중했던 관객의 시선은 무대 위 천장까지 이어지는 빈 공간에 닿을 수 있다. 교감을 자극하는 예술을 상상한다면 기술의 여부와 관계없이 대체로 관객과 연희자의 입체적 교감을 기대하는데, 국립정동극장에서 연출한 교감의 주체는 관객과 연희자가 아니었다. 즉 종합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생명력을 취해 서로 교감하는 형상을 연출하여 미래형 공연예술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했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암덕: 류(流)의 기원'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영화적 연출의 양면

어린 암덕이 연희꾼이 되는 과정은 지극히 영화적으로 연출된다. 남자가 탈을 놓고 가면 소녀가 그를 주우며 따라가는 모습, 어린 암덕과 성인 암덕이 서로 스치며 지나가는 모습, 소리하는 암덕과 춤추는 암덕이 무대 옆 막을 통해 번갈아 등장하고 사라지는 모습 등은 현실공간에서 펼쳐지는 무대극의 연출법이라기보다는 필름 제작을 위한 연출법이다. 영화적 연출에 익숙한 관객은 자연스레 자신의 눈을 카메라의 눈으로 교체하고 앵글과 숏을 자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지만 실제 카메라워크가 부재하는 무대공간에서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에서 네 명의 암덕이 한꺼번에 등장해 각자의 클라이막스를 반복적으로 재현한 부분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신체로 표현한 듯 색다른 종결 방식을 제시했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암덕: 류(流)의 기원>은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개성적인 언어의 창출, 이 단체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 사유하는 예술과 즐기는 예술 간의 갈등을 부각시켰다. 작품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관객에게 공을 넘긴 부분도 있으나, 연결성을 잃지 않고 옹골지게 탐구하는 공연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이 모든 문제를 완결하는 구두점이 찍힐 것이라 기대한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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