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26 미디어 이벤트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26 미디어 이벤트
  • 조복행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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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shal Quast on Unsplash
'평론가인가 비(非)평론가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Photo by Marshal Quast on Unsplash

최근 무용평론가의 공연기획과 관련한 논쟁이 있다. 비판자 측의 요지는 평론가가 공연기획에 참여하면 특정 무용가에 유리한 비평을 하여 예술가와 유착관계를 형성한 다음 이 무용가를 다시 자신의 공연기획에 참여케 함으로써 불평부당해야 할 비평의 본래적 기능을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평론가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정부 지원금을 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비판의 근거로 유럽 무용평론가의 의견을 들고 있다. 반면 평론가 측에서는 비평과 공연기획의 공정성과 불편부당함은 기획자의 윤리성에 따라 다른 것이지 평론가라고 공연기획에 참여하지 말하는 법은 없다, 따라서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논란이 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는 평론가의 공연기획이 왜 우리나라에는 있는가? 비평의 힘을 빌어 지원금을 받아내려 하는 건 아닌가? 비평가가 편향된 비평을 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연기획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이고, 그 기획자가 강한 윤리성을 가지고 기획을 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반론도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오히려 열악한 국내 무용시장에서 적은 지원금으로 악전고투하면서 무용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평론가들이 참여함으로써 기획의 전문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 정확한 내막과 해답을 잘 모른다. 서로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다만 이 논쟁의 이면에는 각국이 처한 문화차이에 대해 서로간의 다른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나라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언론사의 공연기획과 문화사업이다. 이는 서양에는 없는 일이다.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서양의 임프레사리오들에게 우리 나라의 언론사 문화사업은 낮설게 느껴진다. 우리 나라의 언론사 문화사업은 일본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에 전파된 것이다. 동경대학의 요시미 슌야(吉見俊哉) 교수는 언론사의 문화사업을 ‘미디어 이벤트(Media Event)’라고 부른다. 원래 미디어 이벤트는 1992년에 다니엘 다얀(Daniel Dayan)과 엘리후 카츠(Elihu Katz)가 거대 이벤트의 라이브 방송을 지칭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디어 이벤트에 역사의 생방송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런데 요시미 교수는 일본 언론사에서 수행하는 이벤트까지도 ‘미디어 이벤트’에 포함하여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그는 미디어 이벤트를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1)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 기업으로서의 매스 미디어가 기획하고 연출하는 이벤트
  (2) 매스 미디어에 의해 대규모로 중계되고 보도되는 이벤트
  (3) 미디어에 의해 이벤트화된 사회적 사건

'백조의 호수' 중에서(사진=youtube.com)
'백조의 호수' 중에서(사진=youtube.com)

우리 나라의 언론사 문화사업은 일제에 의해 한국에 도입된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일제 침략을 받은 대만에도 2차대전 전까지 언론사 문화사업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일본에는 <미디어 이벤트사(史) 연구회>가 있을 정도로 학문적 관심이 크고, 여러 연구실적이 있다. 또한 미디어 이벤트는 문화전반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크다. 일본 전국의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사업부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공영방송인 NHK조차 수익성을 추구하는 문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한 때 미디어 이벤트는 일본 방송사와 신문사 수입의 10-20%를 차지한다고 말할 정도로 큰 수입원이었다.

일본의 미디어 이벤트의 출발은 전쟁과 관계가 있다. 일본에는 메이지 시대에 대신문과 소신문이 있었는데 대신문은 오늘날의 대판과 같은 크기의 신문으로 지배계급을 대상으로 하는 정론지였다. 반면 소신문은 타블로이드판의 작은 판형으로 서민을 대상으로 상업성에 치우친 대중지였다. 그런데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거치면서 상업성을 배제하고 불편부당한 언론이 돼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이벤트와 문화는 전쟁 이데올로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일본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본업이 아닌 여업(余業)이었지만, 신문사는 문화를 국가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주요한 도구로 삼은 것이다.

또 하나의 설명은 2차대전 패전 후 일본에는 외국과의 문화교류를 담당할 마땅한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신문사가 나섰다는 주장이다. 막대한 개런티를 송금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했는데 이런 일을 담당할 적당한 기관이 없었고, 이 때 언론사가 나서게 되면서 미디어 이벤트가 본격화되었다는 설이다.

우리 나라에도 1920년도에 신문이 창간하자마자 미디어 이벤트가 도입된다. 동아일보는 1940년 폐간할 때까지 브나로드 운동, 신춘문예, 단군영정공모, 연극.무용.성악 콘서트 등을 개최한다. 최승희의 무용공연도 동아일보 주최로 개최한 바 있다. 조선일보도 이와 유사한 문화행사들을 개최한다. 이들 미디어 이벤트는 대부분 수익성보다는 공익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전통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어 각 신문사와 방송사들에 사업부가 설치되고 공연, 전시, 스포츠 분야에서 많은 공익적 행사들이 이어진다.   

이중구속

언론사 문화사업이 공익성에만 치중하는 건 아니다. 수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이미지도 높이고 돈도 벌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문화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언론사에서 많이 실시하고 있는 공연기획의 경우 공연산업 자체가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공연시장은 매우 작기 때문이다. 티켓판매 수입만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보완하는 수단은 협찬이다. 이벤트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협찬금액이 달라진다. 이는 기업과 언론사의 주고받기식 거래다. 기업으로서는 문화를 통해 사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언론사 문화사업은 공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이다. 여기서 언론사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수익성인가? 공익성인가? 이를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의 조어로, 갈등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을 표현한 용어다.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언론사 문화사업은 언론사가 직접 수행하는 이벤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외부 기획사가 주최하는 사업을 도와주는 일도 문화사업의 중요한 영역이다. 여기서 주최(주최에도 실질적 주최와 명의상 주최가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명의주최라고 부른다), 공동주최, 주관, 후원, 협찬 등의 복잡한 개념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이를 상세히 설명할 여유는 없다. 다만 이들 용어 사이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과 다른 것도 있고, 각 개념 사이에는 법률적 차이가 있으며 언론사의 개입 정도에 따라 커다란 법률상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명칭 사용에 대해 매우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2005년 상주 축제도중 발생한 공연중 압사사고와 MBC의 관계가 그런 예다. 실제 축제의 주최자는 상주시이고 MBC는 축제의 한 부분인 공연 생방송만을 담당했는데 오히려 MBC가 거액의 손해배상을 한 사건이 있었다. A극장이 행사를 주최하고 A라는 극장에서 B오케스트라가 초청을 받아 공연했는데 오케스트라 측이 손해배상을 한 것이다. 압사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이야 당연히 져야 하지만 주최자와 주관, 후원사간에 책임과 의무관계가 복잡하고 명확하지 않음을 말한다.

뮤지컬 '캣츠'(사진=youtube.com)
뮤지컬 '캣츠'(사진=youtube.com)

이런 복잡한 용어들은 한국과 일본의 언론사에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물론 외국에도 후원이나 협찬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외부주관 행사를 도울 때는 미디어 스폰서라는 말로 족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방송사가 외부행사에 관여할 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특히 협찬을 유치하고 이를 방송에 표출하는 데 있어서 상이한 이해관계들이 발생한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방송법에는 아예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을 정해놓고 있다. 소위 스포트라고 불리우는 광고는 민간기획자들로서는 중요한 홍보수단이다. 스포트를 방송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방송사가 관여해야 한다. 그러나 방송사와의 제휴가 성립되면 일반적인 광고요금보다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스포트를 방송할 수 있다. 과거 언론사의 홍보영향력이 클 때는 이러한 스포트 방송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일본 방송사의 경우에는 무료로 제공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이것이 일본 문화계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 적도 있다. 아사리 게이타는 연극공연으로 인해 늘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처하곤 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뮤지컬에 뛰어들었다. 그를 결정적으로 도약하게 한 것은 <캣츠>였다. 아사리 게이타는 <캣츠> 전에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을 흥행하였지만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건 <캣츠>였다. 여기에는 후지텔레비전의 지원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 1983년에 그는 천막극장에서 <캣츠>를 공연하였고 후지텔레비전은 공동주최사로 참여하여 아사리 게이타에게 무료 스포트를 제공하였다. 도쿄에서의 성공을 계기로 오사카, 나고야 등 지방도시로 흥행지역을 넓혀갔고, 이는 극단 사계가 뮤지컬 전문기업 나아가서 공연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물론 <캣츠>의 작품성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겠지만 후지 TV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도쿄 시키 극단(c)Shinagawa Sightseeing Agency
도쿄 시키 극단(c)Shinagawa Sightseeing Agency

서양에서도 방송사가 축제나 공연을 주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흥행이 아니라 방송용으로 기획한다. 대표적인 이벤트는 <BBC 프롬스 Proms>로  1927년부터 BBC가 개최하고 있는 음악축제다. 전쟁중에 중단되는 사태가 있기는 하였지만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으니 거의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은 그  시작은 1895년이고 이 이벤트의 기원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체코의 세계적인 지휘자 이지 벨로흘라벡크는 BBC 프롬스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크고 민주적인 음악축제’라고 하였는데, 두 달 동안 벌어지는 이 행사는 교육적인 프로그램,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적절한 배합, 세계적 아티스트의 출연, 저렴한 티켓가격으로 인해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BBC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송의 공익성을 구현하고 공동체 정신의 함양에 목적을 두고 있다.  

BBC 프롬스(c)Yuichi(사진=wiki commons)
BBC 프롬스(c)Yuichi(사진=wiki commons)

언론사 문화사업의 또 다른 기여는 민간사업자가 수행할 수 없는 공익적 행사의 개최다. 음악콩쿠르나 미술전시, 신춘문예 등이 그런 예들이었다.
언론사의 문화사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민간의 영역을 침범한다거나 홍보력을 이용하여 상업성을 추구한다는 비판 등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처음 오는 유럽의 임프레사리오들은 한국과 일본의 언론사 문화사업에 대해 약간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연이 상업화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 연극의 공연기획은 주로 배우가 담당했다. 액터 매니저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공연기획자를 임프레사리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페라의 임프레사리오 중에는 성악가나 발레리나, 공연 관계자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나 공연 문외한들이 더 많았다. 소시민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인쇄공 출신도 있었고 상인계급 출신도 있었으며 생선가게 주인, 보석상, 식료품 상인도 있었다. 전문적인 교육기관은 없었다. 이들은 공연에 같이 출연하거나 현장에서 익힌 경험으로 이 일에 종사하게 된다. 버팔로 빌 와일드 웨스트의 창시자인 윌리엄 프레데릭 코디는 군인 출신이었고, 그랜드 오페라를 만든 루이 베롱은 약제상이었으며 태양의 서커스의 창시자 기 랄리베르테는 거리에서 불쇼를 하던 버스커였다. 일본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쇼치쿠(松竹)의 창업자 오오타니 다케지로(大谷竹次郎)와 시라이 다케지로(白井松次郎) 쌍둥이 형제는 어릴 적에 극장에서 물건 팔던 장사꾼이었고 오늘날 최고의 뮤지컬 프로듀서로 꼽히는 카메론 매킨토쉬는 극장에서 공연제작을 도와주던 무대지원 인력으로 출발하였다. 오늘날에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생기긴 하였지만 공연기획은 특정 분야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공연에 대한 타고난 감식안이나 현장에서 익힌 경험과 현장감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문화사업의 기획자들이 우리와는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나라가 처한 환경, 제도, 후원제도 등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일본에는 과거에 백화점에서 앞다투어 대형 미술전시회를 기획한 적이 있다. 백화점내에 항온.항습시설을 갖춘 전시장을 설치하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경쟁적으로 개최한 적이 있었다. 이는 수익성보다는 백화점 홍보를 위해서였는데, 최근에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비용에 비해 홍보효과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언론사 문화사업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언론사의 힘이 전보다 약화되고 있고 자본이 공연시장에 유입되면서 민간기획자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의 주체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논쟁이 건설적으로 진전되면 공연기획과 무용발전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투쟁하면서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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