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황무지, 요양원의 아버지 - 최자인 신작 ‘시빌(Sibyl)’
엘리엇의 황무지, 요양원의 아버지 - 최자인 신작 ‘시빌(Sibyl)’
  • 전수산나 기자
  • 승인 2021.09.09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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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된 시간 속 삶에 대한 성찰 통해 고령화사회에 대한 경종도
‘시빌 Sibyl’ 포스터 (사진제공=공연기획 MCT)
‘시빌 Sibyl’ 포스터 (사진제공=공연기획 MCT)

[더프리뷰=서울] 전수산나 기자 = 안무가 최자인이 오는 9월 26일(일) 오후 3시, 6시 신작 <시빌 Sibyl>을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 무대에 올린다. 2021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이다.

최자인은 T.S. 엘리엇의 1922년 발표작 <황무지 The Waste Land>를 모티브로 삶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엘리엇이 봄날의 절정인 4월을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삶이라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 의문은 위기의 상황이 올 때마다 종종 느꼈던 감정이었으나, 본격적인 갈등은 안무자의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시동이 걸렸다.

<시빌>은 최자인이 3년 전부터 구상해온 작품이다.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보고 느꼈던 감정을 작품화했기에 음악과 안무를 긴 시간 고민했다. 비발디 사계 中 <겨울>과 <봄>을 활용해 타악기와 전자미디어 사운드, 생황과 보컬을 이용한 음악적 이야기로 시빌의 모습을 연출한다. 시간과 흐름의 연속성, 계절이 주는 감정선, 잔인한 4월의 묘사를 위한 음악의 구성, 한국무용 움직임과 비보잉의 독특한 조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한 신체의 다양한 표현 등 작품의 감정 스토리텔링을 위한 작업을 시도할 예정이다.

안무자는 그리스 신화 속 무녀 ‘시빌(Sibyl)’과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의 “사월은 잔인한 달…….”을 융합해 작품을 짰다. 무대장치와 음악 등을 활용하여 문학과의 협업을 극대화한다.

이 작품이 지닌 깊은 의미로는 작품 속 현대사회의 문제점이 반영된 점을 꼽을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로 인해 국민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인구의 절대수가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18년 14.3%로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에는 20.8%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사회의 고민은 장수 위험성(longevity risk)으로 연결된다. 장수를 재앙으로 만드는 이 사회에서 장수는 무겁고도 무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어느덧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노인요양시설은 사실상 수용소 수준이며 환경 때문에 ‘현대판 고려장’이라고까지 불린다. 죽음을 맞아야만 비로소 퇴소할 수 있는 요양시설 노인들의 ‘죽고 싶다’는 희망없는 외침은 곧 우리의 또 다른 미래상이다. 고독사와 노인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노인 문제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안무자 최자인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한양대학교에서 무용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고 상명대에서 공연예술경영학 박사를 마쳤다. 댄스컴퍼니 한의 창단멤버이자 정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샤에서 이사를, 예술융합단체 프로젝트 창에서는 대표로 활약 중이다.

최자인은 “물론 공연 한 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예술가로서 이 시대 노인들을 위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입장권 예매는 인터파크와 티켓링크에서 가능하다. 전석 3만원.

‘시빌’의 한 장면 (c)옥상훈
‘시빌’의 한 장면 (c)옥상훈

프롤로그
: 들여다보다.

1. 겨울.

얼음 속에 갇혔다.

꺾여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우리는 모두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2. 직선의 시간 : 노인의 노래.

시간의 잔인함.

누가 너를 괴롭히느냐??

너의 욕망이 너를

너의 목숨이 너를

괴롭히느냐 너의 주인이....(김윤배 <가마우지를 위한 노래>에서)

시간의 연속은 고통이며, 무게이며, 긴 숨이다.

직선의 시간은 나를 단절시키며, 고립시킨다.

상실된 시간.

3. 시빌.

나는 시빌입니다.

나는 시빌입니다.

시빌, 너는 무엇을 원하니?

4. 4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작은 생명을 대어주었다. (엘리엇 <황무지>에서)

따사한 봄빛에 얼음을 녹이고 다시 살아내는 것.

삶은 그런 것.

시빌.

death-in-life.

평화를 주소서....

에필로그 : 봄.


공동창작 및 출연

김신아 김소영 이승아 양지수 손무경 한소희 한상곤 최자인


제작 스태프

총연출 조남규 / 안무 및 연출 최자인 / 음악감독 서희숙 / 타악 및 소리 조봉국 / 생황, 피리, 태평소 박준형 / 무대감독 이도엽 / 조명감독 김익현 / 무대디자인 조일경 / 의상, 소품 디자인 고혜영 도은진 / 사진기록 옥상훈 / 영상감독 이상진 / 기획 김세련 한지원 염태선


홍보 김아리나 함유진 조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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