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만찬-진, 오귀'
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만찬-진, 오귀'
  • 서봉섭 기자
  • 승인 2021.11.03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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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당신의 삶을 지켜보는 신이 있다.
한국판 명부 판타지 <만찬-진, 오귀>
2021 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만찬 - 진, 오귀' 포스터
2021 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만찬 - 진, 오귀' 포스터

[더프리뷰=인천] 서봉섭 기자 = 2017년 초연 이후 인천시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며 칠레 APEC 기념공연과 각종 특별공연 등에서 부분만을 선보여 왔던 <만찬 – 진, 오귀>가 창단 40주년을 맞아 전막 재공연으로 관객들에게 돌아온다.

'한국판 명부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무속의 진오귀굿을 모티브로 창작한 무용극 <만찬 - 진, 오귀>는 몰아치는 타악 비트에 얹힌 격렬하고 시원한 춤 한 판으로 코로나로 응어리진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며, 공연을 통한 카타르시스의 진수를 전한다.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 이집트신화의 오시리스 신 이야기, 바빌론신화의 이슈타르 이야기... 누구나 가게 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인간은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왔다. 동서고금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전 세계의  명부(冥府)신화와 견줄 우리만의 저승신화를 춤으로 풀어낸 <만찬 - 진, 오귀>가 또 다시 관객의 심장을 두드린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인천시립무용단(예술감독 윤성주)이 자신 있게 내놓는 대표작 <만찬 – 진, 오귀>는 한국 전통의 저승신화를 바탕으로 이승과 저승의 이원적 세계를 무대에 배치하고 두 세계가 만나는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신의 이야기를 무용극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통 굿의식의 현대적 변용으로 더욱 강렬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무속 고유의 상징성과 기호성, 이승과 저승 두 세계를 넘나드는 호쾌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한국 명부신화’의 저승을 우리 전통의 세계관이 담긴 대표적 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 근/현대화를 거치며 고루한 미신이라는 오명으로 폄훼되어 온 전승 제의의 미학과 예술적 가치, 생사순환의 깊은 철학, 강렬한 이미지와 형식에 담긴 의미를 세련된 색채로 구체화시킨 작품 <만찬 – 진, 오귀>로 40주년을 맞은 인천시립무용단의 기량과 춤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일 예정이다.

신과의 만남을 위한 제의가 춤의 가장 오랜 기원 중 하나라면 <만찬–진, 오귀>는 그 기원을 현대로 치환하여 고대인이 그렸던 우리만의 신을 무대에 현현시켰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다양한 굿 중 전통의 생사관이 가장 잘 드러난 진오귀굿을 모티브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이 작품은 진오귀굿이 지닌 형식과 의미의 오롯한 정수를 풀어놓는다.

죽은 사람이 내세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이집트의 <사자의 서>처럼, <만찬–진, 오귀>는 사후 49일 동안 생전의 업을 심판 받고 지옥과 천당의 문 앞에 서게 된다는 저승의 길을 진오귀굿의 ‘사재거리’ ‘넋대내림거리’ ‘베가르기’ 등을 모티브로 한 춤 장면들로 담아냈다.

안무가 윤성주의 작품세계를 관통해온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제의에 대한 연구 등 그간 천착해온 주제를 집대성한 <만찬 – 진, 오귀>는 춤을 매개로 신을 향해 올리는 큰 굿이자 제사로 인간의 생사 역시 순환의 큰 고리 속 일부일 뿐이니 두려움을 떨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의도를 표현한다.

<만찬–진 오귀>는 죽음을 맞이한 망자를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 사자들이 걷는 중간세계가 함께 열리는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슬픔에 잠긴 아들을 중심으로 어머니의 뒤에는 죽은 자의 삶을 심판하는 저승의 신들이, 아들에게는 천도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있어 이승과 저승의 세계가 동시에 펼쳐진다. 신들이 거하는 저승의 세계가 무대 위쪽에 자리할 때 아래쪽에 인간사가 흐르고 그 사이의 세계를 무당과 사자가 가로지르며 이야기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 망자의 이야기가 더욱 부각되어 생이 명멸하는 그 찰나의 슬픔, 남겨진 이의 애달픔, 흩어지는 기억의 아름다움이 장면장면 펼쳐지며 더할 수 없는 비감을 전한다. 작 중 왕무녀가 망자의 변호인으로서 지난 삶을 신들에게 되짚어 보이는 순간에 흐르는 엄마의 시간, 여성의 시간,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시간이 관객 모두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부모를 떠나보낸 후 후회만 남은 자식의 마음과 떠나간 부모의 자식을 향한 애틋한 정에 이입하며 인간적 공감을 자아낸다.

재공연으로 돌아온 이번 공연의 캐스팅 또한 드라마틱하다. 초연 당시 주인공 왕무녀로 작품을 준비하다 공연 직전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역할을 내려놓아야 했던 장지윤이 왕무녀로 다시 한 번 무대를 준비한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5년의 시간 동안 '무용수 장지윤’은 더욱 단단해지고 더 깊게 무대와 삶을 껴안게 되었다. 산 자와 망자 모두를 품어 한 세상에서 만나게 해주는 왕무녀의 커다란 시선을 부상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체험, 본연의 카리스마에 더해진 깊이 있는 춤으로 관객을 매료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다시금 주역무용수의 자리로 돌아온 왕무녀 더블캐스트 유나외 역시 만만치 않은 공력의 소유자이다. <풍속화첩-춘향> <가을연꽃> 등 인천시립무용단의 수많은 정기공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왔던 유나외는 청아한 외모와 집중력 있는 춤으로 ‘혼자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감정과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이야기 구조의 중심에 있는 망자 역의 임승인은 마지막 숨을 거둔 어머니의 모습을  삶의 회한과 자식을 향한 애틋한 정으로 표현하며 응집력 있는 춤과 호흡으로 작품의 한 축을 이끌어간다. <만찬-진, 오귀>라는 거대한 진혼굿을 온전히 치러내는 아들이자 남겨진 모든 이를 대표하는 산 자 역의 김철진 역시 물오른 감정연기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춤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수무당의 기개와 에너지를 체화한 듯한 박성식의 농익은 춤 역시 관극 포인트로 손색이 없으며 주역들의 춤과 함께 군무의 강력한 힘과 열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용수들의 수준 높은 표현과 연기에 힘입어 강조된 인간의 서사에 삶을 어여삐 여기는 신의 시선이 더해지며 작품에 다채로운 층위가 더해진다. 죽음의 얼굴인 저승사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은 존재로, 죄를 심판하는 심판자이자 초월적 존재인 열 명의 저승 시왕 역시 해학이 넘치는 해석이 가미된 스타일로 익숙하지만 새롭게 정의되었다.

코로나라는 변곡점을 거치며 사람들은 멀게만 여겨왔던 죽음이 우리 바로 곁에 있음을 목도했고, 누구든 창궐한 역병에 덮쳐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 임을 선연하게 깨달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만찬과도 같은 이 삶을 즐기는 것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필멸자의 자세임을 메시지로 전한다.

굿은 망자의 한을 풀어 명복을 빌고 슬픔을 달래주는 위로이자, 남겨진 사람들의 극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이다. ‘신’으로 명명되는 거대한 존재에 정성을 다해 빌고 빌어 세상 사람들의 평안과 홍복을 비는 제의이기도 하다.

인천시립무용단의 춤과 예술에 대한 기량과 삶을 바라보는 철학의 정수를 담아낸 이번 작품 <만찬–진, 오귀>는 높은 존재에게 치성을 드려 평안을 비는 굿의 근본적 핵심과 같이, 정성 가득한 한판 굿을 통해 코로나로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풀어 모두의 복을 바라는 큰 굿으로 작동되기를 바라는 인천시립무용단의 염원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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