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창단 60주년 기념공연 <왕자, 호동>
국립오페라단 창단 60주년 기념공연 <왕자, 호동>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02.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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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낙랑공주의 비극적 대서사시
고전설화의 과감한 재해석과 현대적 미장센
창단 60주년 기념공연 <왕자, 호동> 포스터 (c)국립오페라단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장일남의 오페라 <왕자, 호동>을 오는 3월 11일(오후 7시 30분)과 12일(오후 3시) 양일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왕자, 호동>은 <삼국사기>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창작오페라로, 1962년 국립오페라단이 젊은 작곡가 장일남에게 작곡을 위촉, 제작한 창단 기념공연이었다.

고구려 호동왕자와 사랑에 빠져 적들의 침입을 미리 알려주는 신물(神物) 자명고를 찢어버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낙랑공주의 이야기를 친숙한 선율과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로 녹여낸 수작이다.

초연 당시 탄탄한 극의 짜임새와 친숙한 선율로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낙랑의 땅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왕자 호동과 그를 위해 자명고를 찢는 낙랑공주의 헌신적이고도 애절한 스토리가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2021년 국내 초연 서정오페라 <브람스…>에서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오페라 장르의 개척으로 주목받았던 연출가 한승원과 지휘자 여자경이 다시 만난다. 연출가 한승원은 전통적인 무대에서 벗어나 창작 뮤지컬을 다수 제작해 연달아 흥행 시켜온 베테랑으로, 모던한 무대와 낙랑공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선보이고자 한다. 지휘자 여자경은 오페라와 콘서트 등 국내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힘찬 에너지를 보여주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호평 받은 마에스트라다.

호동왕자 역으로 테너 이승묵, 김동원, 낙랑공주 역에 소프라노 박현주, 김순영, 최리왕 역에 테너 김남두, 정의근, 장초장군 역에 바리톤 박정민과 베이스 박준혁, 무고수 역에 베이스 이준석, 공주의 시녀 샛별 역에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공주의 시녀 반달 역에 메조 소프라노 남수지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의 현장 공연과 함께 온라인으로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2022년 3월 11일(금) 19시 30분 국립오페라단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줄거리

고구려의 왕자 호동은 한나라가 침략하여 세운 낙랑을 되찾기 위해 쳐들어가지만 적의 침입을 미리 알려주는 신물(神物) 자명고가 있어 번번이 실패한다. 적국의 왕자 호동을 사랑하는 낙랑공주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명고를 찢는다. 결국 호동 왕자는 군사를 이끌어 낙랑을 정복하고 자명고가 울리지 않아 적의 침입을 방비하지 못한 낙랑왕 최리는 사랑하는 딸을 죽이고 만다. 호동 왕자는 차가운 공주의 주검을 부둥켜안고 비통에 빠진다.

연출노트 -연출 한승원

『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제2 ‘대무신왕 15년’

낙랑국을 정복하다 ( 32년 04월(음) )

여름 4월에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 놀러 갔을 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나왔다가 그를 보고서 물어 말하기를, “그대의 낯빛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니오. 어찌 북극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최리가)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이 나라로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 최리의 딸에게 알려 말하기를, “만약 그대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요, 그렇지 않는다면 맞이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앞서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어서 만약 적병이 있으면 저절로 소리가 났다. 그런 까닭에 이를 부수게 한 것이다. 이에 최리의 딸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 안에 들어가 북의 면(面)과 나팔의 주둥이를 쪼개고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은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나팔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비하지 못하였다. 우리 병사가 엄습하여 성 아래에 다다른 연후에야 북과 나팔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설득력 없는 재현은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왕자, 호동>의 이야기가 2천 년 전 역사적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단지 기술적으로만 시대를 모방하여, 무대를 재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풀리지 않는 과제의 답안을 찾은 것 같았다. 이후로 관념적이지만 이보다 구체적일 수 없는 일체적인 하나가 상상의 공간을 잠식해 버렸다.

출연진을 배역으로만 가둬 두는 닫힌 무대가 아닌, 그 시대의 인물로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고 노래할 수 있는 상상과 감각이 표출된 무대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로 인해 관객들이 역사적인 실제를 재현하는 무대보다 진실된 무대로 2천 년 전 그날을 올곧게 다녀오기를 희망한다.

“서사적 오페라로 그려지는 비극적 벽화(壁畵)”

“왕자 호동이 자결하다” (32년 11월(음))

겨울 11월에 왕자 호동이 자결하였다. (호동이) 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만일 해명하면 이는 어머니의 그릇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곧 칼 위에 엎어져 죽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수록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는 정사(正史)와 설화(說話)라는 문학적 상상의 간극을 함유하며 호동왕자의 비극적 자결로 끝이 난다. 허탈하다 못해 허무하기까지 하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운명은 누가 초래한 것인가?” “낙랑공주의 사랑에 대한 형벌인가?” “낙랑공주는 나라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자명고를 왜 찢었을까?” “자명고는 실제 존재하는가?” “호동왕자는 진정 낙랑공주를 사랑했을까?” 이러한 무수한 질문 앞에 단지 비극적, 운명적 사랑이라고만 답을 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그 답은 삼국사기에 뒷부분에 간략하게 전승되어오는 또 다른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말하기를 “낙랑을 멸망시키고자 마침내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맞이하여 아들의 처로 삼고,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병장기를 파괴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왕은 호동왕자의 아버지 대무신왕으로, 비극적 운명은 대무신왕의 계략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권력을 위해 자식의 사랑까지도 이용하는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왕국을 빼앗겼다고 해서 자식을 죽여 버리는 최리왕을 보면 마치 대를 이어가며 서로 죽고 죽이며 왕좌를 차지하려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는 것 같다. 영원히 끝나지도, 끝날 수도 없는 이 게임은 드라마의 허구와 현실의 진실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우린 여기서 힌트를 얻어 독일의 극작가 겸 연출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라는 서사극 개념을 일부 적용해 보고자 한다. 막 사이의 해설자, 혹은 이야기꾼의 개입으로 관객들은 인물과 사건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관찰자로 유지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욕망의 충돌을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적 문제로 발견한다.

“낙랑공주의 비극적 대서사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은 무자비하고 비극적인 운명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가장 고귀하고 가장 용감한 인간을 표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낙관적인 견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낙랑공주의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번 공연에서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시대, 지금 이곳에서 왜 오페라 <왕자, 호동>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은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으며 자신의 힘으로 언제든 약자를 짓밟고 목숨까지도 가져온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낙랑공주는 괴물이 되기를 포기하고 호동왕자의 사랑과 낙랑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은 운명에 의해 파멸될 것을 알았지만 그 길을 선택한다. 낙랑공주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지만, 우리에게 영원히 남는 고결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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