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정된 참사, 책임은 누가 지나?
[기고] 예정된 참사, 책임은 누가 지나?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2.02.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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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위의 관리소홀, 창피스런 공연수준, 윤리적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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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버려진 가구들 (c)Weiye Tan on unsplash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코로나가 본격화하면서 여기저기 챌린지가 한창 유행이던 때, 모든 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무용계에서도 매일 자신의 공연사진을 올리며 다음 참가자를 지목하는 챌린지가 있었다. 그때 나 역시 지목을 받았는데 글 쓴 지가 하도 오래되어 50대 안무가들을 열흘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 참여했더랬다. 사나흘 진행하다보니 우리나라에 50대 안무가가 생각보다 너무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교수나 학원원장이 아닌 독립안무가로 50대를 맞는다는 게 우리 무용계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무용가들의 창작활동은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연(年) 단위로 진행하는 지원사업들을 매해 신청하고 때로는 선정을, 때로는 낙방을 경험하다 지쳐 50대가 되기 전 작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예전 한 안무가의 말을 빌리자면 지원금을 받아도 작품을 하다보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일쑤이고 낙방이라도 되면 마음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니, 받아도 받지 못해도 심적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용가들이 한해살이가 아닌 보다 안정적인 지원을 받아 창작에만 매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사업은 민간분야 창작·제작 역량 향상과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2019년 7월 처음 신청을 접수했다. 국내외 민간공연예술단체 및 법인이라면 최장 3년간 연간 2억원 이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설립 5년 이상은 중견단체로, 5년 미만은 유망단체로 지원할 수 있고 선정된 단체는 매년 번거로운 공모신청과 심사 대신 컨설팅, 교육도 받을 수 있고 실적을 평가하여 지원금의 증감 및 지원 여부가 조정되기도 한다.

2019년 첫 수혜 무용단체는 총 8팀으로 인천시티발레단(발레/중견/지역), 안은미컴퍼니(현대무용/중견), 신은주무용단(한국무용/중견/지역), 무버(현대무용/중견), 리브레호벤(현대무용/유망),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현대무용/중견), 고블린파티(현대무용/유망), 정은혜민족무용단(한국무용/중견/지역)이다. 심의위원은 김현진, 문치빈, 이경화, 이찬주, 임소영이었다. 당시 심사 내용을 살펴보면 유망단체(설립연한 5년 미만) 26개, 중견단체(설립연한 5년 이상) 47개를 합쳐 총 73개 단체가 신청했다. 장르별 분포는 한국무용 16개 단체(21.9%), 발레 14개 단체(19.2%), 현대무용 36개 단체(49.3%), 융복합 7개 단체(9.6%)로 현대무용의 신청 비율이 많았다. 당시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부문에 63개 단체가, ‘올해의 레퍼토리’ 부문에 62개 단체가 신청한 것에 비하면 안정적인 지원 덕에 신청단체가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무용, 발레에 비해 타 분야 진입장벽이 낮은 현대무용에는 지원단체가 훨씬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었는데 워낙 현대무용 분야가 큰 데다 서커스, 힙합 등이 현대무용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

리브레호벤 <NU PUNK IS HIPHOP>의 경우

결론적으로 2019 중장기 지원사업에서 고블린파티와 리브레호벤 두 젊은 단체가 유망단체로 선정되었으며 이 가운데 최근 공연을 마친 리브레호벤은 “서브컬처로 인식되는 스트릿 문화를 통해 새로운 컨템포러리 댄스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단체가 지향해온 예술적 방향을 두 건의 국제협업을 통해 3년 동안 확장하여 상호작용하는 레퍼토리 공연으로 완성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설득력이 있었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선정되었다.

이들은 지난 2월 9-10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최종 결과물인 공연을 올렸다. 나는 10일 공연을 관람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품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심사 당시 언급된 두 건의 국제협업이 상호 작용한 레퍼토리인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싶었지만 어디서도 얻기 어려웠다. 요청한 보도자료도 공연을 마치고 정리해 준다는 답변뿐이었고 입장권 예매 사이트에도 작품에 대한 정보가 게재되어 있지 않았다. 무대에서 만난 연주와 랩, 힙합을 접목한 공연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래퍼의 랩은 중간중간 귀에 거슬리는 욕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고 힙합은 추는 건지 추려다 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관객들은 이미 텔레비전의 다양한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나 기가 막힌 랩과 춤에 익숙하다. 때문에 그들의 어설픈 무대가 더더욱 부족해보였다.

물론 예술작품인 만큼 힙합의 테크닉을 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외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펑크는 쓰레기에서 나온 것이라며 쓰레기 봉지더미에서 무용수가 나오고 힙합의 평등과 저항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면을 쓰고 나온 것 이외에 작품의 개연성은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에 비해 거대한 연주는 이 공연의 정체성마저 흔들었다.

의구심은 더해갔다. 한 해에 1억 원씩 세 번을 받기로 했던 지원사업의 마지막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문의, 확인한 내용은 첫해 받은 지원금이 차후 이루어진 평가에 의해 2차년도부터 다소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업진행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발견되었음을 시사한다. 또 하나의 사실은 최초 지원시 카롤린 칼송, 울티마 베스, 마리 슈이나르 출신의 원원명이 안무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예위측의 확인으로는 안무가라고 하였으나 단체 확인결과 연출 및 프로듀서 리더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연출 및 프로젝트 리더라는 명칭이 안무가라는 명칭과 혼동될 여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초 심의 당시 첫 해 사업에 원원명이 참여한다는 점(안무가로서든 프로젝트 리더로서든)이 심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은 자명하다. 코로나로 인해 차질이 생긴 사업은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3년차까지 지연되었고 그 과정에서 원원명은 3년차 사업인 마지막 결과물에 멘토로 다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3개월만에 하차하고 만다. 원원명에 의하면 “작업의 방향, 운영 방법, 단체측 및 참여 아티스트와의 협력에서 번번히 어려움을 겪어 더 이상 작업 참여 의미가 없었다"며 멘토의 필요성에 회의를 느껴 합의 하차하게 되었다.  원원명은 이 당시 함께 했던 무용수들이 모두 하차하는 것을 보며 본인 역시 마지막으로 하차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공연의 질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순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술적 창작 능력과 제작 진행의 실무적 능력이 의심스러운 단체에게 거액의 지원금이 돌아간 셈이다. 

그럼 모든 사업이 끝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라도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 많은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이 지원사업의 목적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내야 한다. 수많은 무용가들이 이보다 훨씬 적은 지원금도 없어 공연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산이 허투루 사용된 것은 없는지부터 3년간 사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심화되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초록소 <28조톤>과 윤리적 문제

리브레호벤의 경우와는 달리 작품의 창작과 유통과정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한 단체도 있었다. 지난 1월 중순 공연을 마친 거리예술단체 초록소(대표 정성택)의 <28조톤>이다. 먼저 문예위 확인 사실만 이야기하자면 최초 지원서류에는 정재우 안무가가 지정 안무가로 명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재우 안무가는 선정된 이후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자신의 이름을 써내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던 것이다. 명백한 개인정보 유출이요, 명의 도용이다. 정재우 안무가는 언젠가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창작산실에 지원하고 싶어 초록소의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작품의 안무가는 바뀔 수밖에 없었고, 이후 류진욱 안무가가 이들의 작품 안무를 맡아 쇼케이스 및 최종 공연을 진행하게 되었다. 안무가 교체 과정에 재심의는 없었다. 지원사업 선정에서 안무가의 비중이 얼마나 큰 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걸 알고 있기에 초록소 측도 자신들이 안무가로 나서지 않고(물론 그들은 무용단이 아니니까 안무자로 나설 수도 없었을 테지만) 초빙 안무가를 선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은 이어진다. 초록소는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공연을 안무가와 상의도 없이 안무가 이름을 쏙 뺀 채 다른 곳에서 공연했다. 무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둘이 같은 작품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음악도 오브제도 같은데 작품의 텍스트와 제목이 달라지고 동작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고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체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분인가? 쇼케이스 공연이 다른 곳에서 공연된 이상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무대에 섰던 <28조톤>은 ‘신작’으로 볼 수 없다는 문제도 생긴다. 최근 다른 축제에 이 작품이 초청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들에게 안무가는 필요하지 않다. 안무비를 지급하고 제작한 작품이니만큼 저작권은 단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초록소는 기획단체인가? 지원사업에 선정될 만한 이슈를 주제로 기획하고 상의도 없이 떠오르는 안무가의 이름으로 서류를 쓰고 결국 서류에 제출한 안무가랑은 작업도 못하고 정작 작품을 안무한 안무가는 안무 이후 버려지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지원사업의 목적과 안무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무용지원사업에 안무가가 주체가 아니라니. 그럼 이제 무용지원사업에 무용가만 지원할 필요도 없는 샘이다. 좋은 기획자가 좋은 안무가를 내세워 서류만 잘 쓰면 될 일이다.

이번 작품은 2021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으로 김설진, 김현진, 박선욱, 박태희, 송민성, 심정민이 심의했으며 전문가 심의 80%와 관객평가 20%로 결정되었다. 전문가 심의는 작품성(예술적 우수성/차별성), 예산 및 일정계획의 타당성, 실행역량의 우수성을 위주로 보았으며 그밖에도 창작의 정체성이나 참신성, 단체의 실연 역량, 작품에 대한 이해도 등이 고려되었다고 한다. 선정된 단체는 김성훈댄스프로젝트, 김유미, 댄스씨어터 창, 멜랑콜리댄스컴퍼니, 유장일, 초록소 등으로 이중 외부 안무가와 작업한 단체는 초록소 뿐이다.

안무가를 외부에서 초빙할 경우, 초빙 안무가가 지원사업의 전반적 내용을 이해하고 이에 동의한 연후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초빙 안무가와 이런 협의가 이루어진 후 사업을 지원했는지 여부가 심의 당시 확인되었는지 알고 싶다. 또한 심의위원들은 최초 지원서를 보고 심의한 내용이기에 이것이 수정되었을 경우 재심의를 했어야 마땅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고지해야 한다. 수많은 낙방자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활동을 하기 위한 지원인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지원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심의가 필요하다. 지원금을 유용하거나 지원사업의 목적에 맞도록 사업을 운영할 윤리교육이 필요하고 사업 과정 중에 이런 변화요인을 감지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재심의를 하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엄격한 사후처리 역시 필요하다.

많은 안무가들이 지원금으로 살림을 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원사업에도 상도가 있다. 젊은 안무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 작품에는 안무가로 저 작품에는 연출로, 프로듀서로 품앗이를 하는 것은 애교이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작품을 이름만 바꿔가며 돈을 받아가거나, 지원사업으로 제작된 작품을 사업 내에서 선보이기도 전에 다른 곳에서 공연하는 것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예산 뻥튀기나, 역량이 되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지원금을 위해 지원했다가 정작 선정된 후에는 어찌할 바 몰라하며 수준 이하의 무대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행위이다. 지원금 받은 단체를 탓할 일인지, 선별하지 못한 심의를 탓할 일인지, 관리하지 못한 기관을 탓할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벌어진 상황들이 어떻게 수습되는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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