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DANCE PJ REVO의 'STUMP PUMP Tokyo'
[공연리뷰] DANCE PJ REVO의 'STUMP PUMP Tokyo'
  • 최병주 기자
  • 승인 2022.03.21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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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안무가 다무라 고이치로(田村興一郎)의 스펙터클 대작에 감동하다-

[더프리뷰=도쿄] 최병주 SAI 예술감독 = 현재 일본은 오미크론 감염자 수가 줄면서 공연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3월 4-6일 키치조지시어터(吉祥寺シアター)에서 DANCE PJ REVO(2011년) 대표이며 안무가/댄서인 다무라 고이치로(田村興一郎)의 작품 <STUMP PUMP Tokyo>공연이 있었다. DANCE PJ REVO는 그가 교토조형예술대학(京都造形芸術大学) 시절 결성했던 프로젝트 베이스인 컴퍼니로 명칭인 'REVO'는 revolution(혁명)의 약자다. 현재 교토에서 요코하마로 거점을 옮겨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2016 신인 안무가 부문인 컴피티션Ⅱ에서 최우수신인상, 2018년 컴피티션Ⅰ에서는 <F/BRIDGE>로 젊은 안무가를 위한 주일프랑스대사관상과 시비우국제연극제상을 함께 수상한 그는 국내외에서 활약이 크게 기대되는 안무가들 중 한 명이다.

주로 초대 공연을 보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티켓을 구입해서 보러 갔다. 다무라 씨는 내가 사이타마에서 개최하고 있는 SAI DANCE FESTIVAL 2021 COMPETITION에서도 작품<nostalgia>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당시 아사히신문 무용평론가인 이시이 다츠로(石井達朗) 선생님은 페이스북에 “그랑 프리를 받아 마땅한 작품이라 매우 기쁘다”라는 글을 남기셨다. 그리고 그는 젊은 무용가들에게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어 대부분의 출연자나 스태프도 역대 SAI 출신 무용가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이번 공연에 대한 SNS를 활용한 홍보는 경이로웠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매일매일 각 출연자들이 짤막한 영상 메시지를 내보내는데, 젊어서 그런지 그 내용이 자유롭고 재미있어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작품 <STUMP PUMP Tokyo>는 자연재해를 소재로 하고 있다. 2018년 9월 4일 간사이(関西)지방을 강타한 태풍 21호(아시아명: 제비)로 상당한 피해를 당했으며, 당시 주택 피해만 해도 10만호에 가까웠다. 특히 관광명소로 잘 알려진 구라마사(鞍馬寺)에서는 사찰 내 거목들이 쓰러지면서 본당으로 가는 길이 막혀 오랜 기간 들어갈 수 없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수많은 수목들이 쓰러져 버린 교토 구라마산(鞍馬山)의 처참한 광경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공연은 2019년 고베에서 초연된 이후 3년 만의 상연으로, 안무가인 다무라 씨는 4년 전의 대참사에서 부활한 교토 구라마절과 키치조지시어터의 특색을 살리려 했다고 한다. 교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그가 컴퍼니 DANCE PJ REVO 첫 도쿄 공연으로 선택한 작품은 <STUMP PUMP>였다. 'STUMP(쓰러진 나무를 베었을 때 생기는 그루터기)'와 'PUMP(들어올리다 혹은 일어서다)'를 뜻하며, 거기에 양 단어의 발음 'UMP'를 맞춰 만들어낸 조어라고 한다.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 (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극장에 들어가니 무대 뒤에서 앞까지 도로공사 중일 때 쓰는 고깔을 세워 임시로 낸 길이 있고, 우리는 그 길을 지나 객석에 앉았다. 객석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이미 마스크, 긴 팔 티셔츠, 바지, 장갑이 모두 검정 차림인 6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순간 연습실 장면인가 했으나, 뭔가 이상했다. 그들의 테크닉은 아주 능숙했지만 팔, 다리의 관절을 잘 굽히지 않고 몸통도 통째로 사용하는지라 대부분 직각적이고 기계적인 동작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이 감정이 배제된 무기질적인 동작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움직임에도 감정이 표현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느덧 객석의 불이 꺼지고, 느림과 빠름, 강약이 같이하면서 구성도 오밀조밀해지며, 서로 얽히는 밀접한 관계성도 드러난다. 같은 종류의 동작이건만 점점 그들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 (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무용수들이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고 있는 사이 한 명이 골판지 상자를 들고 나와 천천히 열어서 여자의 머리에 뒤집어 씌운다. 조금씩 뒷벽이 올라가면서 상자들이 보이면 한 명이 돌발적으로 넘어지더니 뒤로 빠르게 굴러간다. 이 동작을 계기로 전원 무대 쪽으로 던져지는 상자들을 받아서 무대에 쌓기 시작한다. 완성되고 보니 사선으로 높게 쌓여 있었다. 묵묵하게 옮기며 작업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상자들도 도형을 바꿔 간다. 무용수들은 쓰러졌다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나 똑같은 작업을 느리게 또는 빠르게 끝없이 반복한다. 쓰러짐과 일어남은 이 작품의 키워드이다. 돌발적인 쓰러짐 후 등을 바닥에 댄 채로 두 발로 밀기, 거꾸로 구르기, 슬로 모션으로 쓰러지기, 사람을 높이 들어올려 빠르게 돌다가 함께 쓰러지기, 상자를 향해 텀블링하기, 넘어지려는 사람 일으켜 세우기, 놀이처럼 상자 던지고 받기, 남의 머리에 상자를 거칠게 뒤집어 씌우기 등. 상자와 무용수들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성되는 다양한 쓰러짐과 일어남에 빨려 들어간다. 점점 2배속으로 빨라지더니 전원 뛰어다니면서 무대가 난장판이 되었다.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 (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얼마나 지났을까. 넋을 잃고 보고 있자니 어느덧 상자들이 뒤쪽으로 이동해 쌓여 있었다. 한 명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양팔을 들었다가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다 지쳐 쓰러지고나자마자, 갑자기 환한 조명 아래 거대한 상자더미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그 후에 펼쳐지는 끝없는 적막함... 이 때 나는 태풍의 위력에 경외심을 가져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장면 정말 장관이어서 내 입은 벌어진 채였다.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 (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서서히 무대 뒤쪽으로 모인 이들이 조용한 가운데 다시 상자를 쌓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밑에서 2층 난간으로 상자를 던져 그 위에 있던 사람들이 받아서 2층 난간까지 도달하면 3층 난간으로 던져 점점 높아지더니 3개의 고층 모형물이 완성되었다. 그 즈음 무용수들은 각자 걸어다니다가 멈춰서 상징적 제스처를 한다. 같은 상자 쌓기인데도 극장 구조를 잘 활용해서 색다른 감각으로 연출했다. 일상적 노동 작업은 감정이 없어 보였지만, 상자들이 날아다니면서 전체적으로 다이내믹하게 표현된 점도 좋았다. 짐 쌀 때 외에 별 필요성을 못 느꼈던 골판지 상자들이 이 작품에서 무대 소품이나 장치로 변신하는 완벽한 효과에 감동했다. 마치 조형미술 혹은 설치미술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 (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상자를 뒤집어쓴 사람이 나와 멈춰 서면, 한 사람이 공을 들여서 상자 세 개를 더 얹어 주고, 마치 안내라도 하는 듯 손전등으로 발 밑을 비춰 준다. 이 때 무용수들이 무대 뒤에서부터 천천히 줄지어 걸어나와 마주 보고 정렬, 들고 나온 조명기를 소중하게 내려 놓고는 퇴장, 손전등을 들고 있던 사람이 느리게 쓰러지는 것을 계기로 다시 무언가를 걸어 놓고 퇴장하면 상자를 뒤집어 쓴 사람도 쓰러졌다. 세 번째는 골판지로 만들어진 불탑을 들고나와 정성스럽게 내려놓고는 뒤로 쓰러지는 제스처를 반복하다 퇴장한다. 그 후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곤충 소리, 하나씩 켜지는 2열의 불탑등, 그 중앙을 비추는 손전등이 조명을 대신한다. 주된 움직임은 불탑 사이로 난 길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독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후반부는 의식적 움직임들이 주를 이뤄 죽은 자들 혹은 쓰러진 거목들에 대한 추모의식을 연상시켰다. 지금까지 한결같이 추상적으로 잘 표현되어서 그랬는지, 이 부분은 내게는 설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아쉬웠다.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STUMP PUMP Tokyo' 공연 장면 (c)이시다 미리카 (제공=DANCE PJ REVO/다무라 고이치로)

마지막은 무대 뒤가 올라가면서 박진감 있는 음악에 맞춰 군무가 쓰러지는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마치 영혼을 불태우듯 클라이막스에 달한다. 그들 사이에 거목을 상징하는 골판지로 만들어진 나무를 든 벌거벗은 남성도 조용히 등장했다.

출연진의 인사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이 작품 상연 시간은 110분이나 됐다. 갓 서른인 안무가가 이렇게 긴 작품을 깔끔하게 채워 나갈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안무가의 탁월한 연출력과 무용수들의 엄청난 체력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 전체 중에서 처음부터 80여분까지 안무가는 자신이 내건 키워드인 '쓰러진다=일어선다'라는 신체에 집중했다. 태풍에 쓰러진 거목들과 필사적으로 거기에 맞서는 생존 혹은 재건되는 모습이 골판지 상자를 활용한 설치미술 효과와 미니멀한 동작들(객석등이 켜진 채로 행해진 무기질한 동작, 상자들을 옮기는 무심의 노동, 다양한 형태로 쓰러졌다가 일어서는 동작)과 어우러져 역동적・추상적으로 아주 잘 표현되었다.

특히 안무가의 골판지 상자를 활용해서 무대를 꽉 채운 스펙터클한 연출은 무용 영역을 넘어선 스릴과 감동을 맛보게 해주었다.

DANCE PJ REVO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앞으로도 더욱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기를 기대하며 혼을 불사르는 듯한 춤을 보여준 출연자 전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무라 고이치로(田村興一郎)

1992년 니가타 출생. 애니메이션 댄스와 스트리트 댄스 컬처를 동경해 고교 시절 동아리에서 무용을 시작. 교토조형예술대학(京都造形芸術大学)에서 신체표현과 무대예술을 전공, 테라다 미사코(寺田みさこ), 이토 키무(伊藤キム)에게서 춤을 배웠다. 지금까지 안무작은 60편 이상. 교토에서의 창작 활동을 거쳐 현재 요코하마를 거점으로 활동중. 안무에 있어서 일상/마이크로에서 우주/마이크로까지 다루고, 그 독특한 감성으로 시작하는 세계관은 '미니멀 하드코어'라고 칭해진다. 또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의욕적으로 사회에 관여하는 자세나, 일본 컨템퍼러리 댄스에 있어서 문제의식 제기 등, 기성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작가성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수상경력

■아티스틱 무브먼트 인 토야마 2011 <링거> 특별상/제2회 자·고엔지 댄스 어워드 수상
■아티스틱 무브먼트 인 토야마 2013 <독수리와 소녀> 심사원상/제4회 자·고엔지 댄스 어워드 수상
■The 4th Dance Creation Award 창작부문 <독수리와 소녀> 2위 수상/해외 콩쿠르 추천상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EX2015 컴피티션Ⅱ 신인 안무가 부문 <독수리와 소녀> 장려상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2016 컴피티션Ⅱ 신인 안무가 부문 <사육사> 최우수 신인상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2018 컴피티션Ⅰ
<F/BRIDGE> 젊은 안무가를 위한 주일 프랑스대사관상/시비우 국제연극제상

■ SAI DANCE FESTIVAL 2021 COMPETITION <nostalgia> 최우수 작품상

국내외 초청 및 활동경력

■2018-2020년 NPO법인 DANCE BOX 어소시에이트 컴퍼니
■2020・2021・2022・2023년 세종문화재단 펠로우Ⅰ
■Dance New Air 2018댄스 쇼케이스에서는 같은 세대 젊은 안무가의 큐레이터로 취임
■2018년 Hong Kong Dance Exchange 2018 작품 상연(홍콩)
■서울무용센터×교토조형예술센터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2개월 체류 제작(한국/서울)

■2019년 Centre National de la Danse 3개월 체류 제작・작품 상연(프랑스/파리)
            KUNIO14 (스기하라 구니오(杉原邦生) 주재・연출・미술)에서 침묵극 <미즈노에키(水の駅)>(작:오타쇼고(大田省吾))연출 및 안무.

■2021년 시비우국제연극제/FITS2021 작품 상연(루마니아/시비우)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가 설립한 사이타마 골드 시어터 최종 공연 <미즈노에키> 안무.​

■2022년 THE CORONET THEATER JAPAN FESTIVAL 작품 상연 (영국/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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