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웅장한 스케일, 남성미 넘치는 대작 - 국립오페라단 ‘아틸라’
[공연리뷰] 웅장한 스케일, 남성미 넘치는 대작 - 국립오페라단 ‘아틸라’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1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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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공연장면(사진=국립오페라단)
'아틸라' 공연장면(사진=국립오페라단)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국립오페라단의 작품이 공연될 때마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명작들을 수준 높은 무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부코> <서부의 아가씨> <삼손과 데릴라>에 이어, 올해는 <아틸라>를 국내 초연했다(4월 7-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베르디의 초기작 <아틸라>는 <에르나니> <나부코> 등과 함께 베르디의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오페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부흥’이란 뜻을 지닌 리소르지멘토란 이탈리아 통일에 대한 염원을 의미하는데,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아틸라>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는 리소르지멘토를 가리켜 ‘재탄생’과 ‘재부활’이라고 말했다. 베르디는 정치적인 작품을 올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런 시도들이 모여 이탈리아 통일을 불러왔다고.

'아틸라' 공연장면(사진=국립오페라단)

연출자 잔카를로 델 모나코는 ‘황금 트럼펫’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드라마틱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이다. 그는 무대연출을 역사적 시대 재현이 아닌 해석에 주안점을 두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5세기 로마제국이나 훈족과 로마의 전투나 의상에 대한 해석은 판타지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고. 무대는 부서진 석조 기둥과 계단으로 폐허가 된 로마제국을 묘사했고, 클래식하면서도 전투 게임에 등장할 법한 출연진의 의상을 볼 수 있었다.

연출 잔카를로 델 모나코(사진=국립오페라단)

<아틸라>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흥행에 성공하기 쉬운 아름다운 사랑과 여성의 희생이 주된 내용이 아니기도 하고, 대본상 서사의 연결에 무리가 있기도 하다. 또한 연출자는 “이 작품에 어울리는 베이스나 바리톤 가수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베이스 성악가로서 아틸라는 탐나는 역이 아닐 수 없다.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적 아틸라를 상당히 고귀하고 입체적인 인물로 빚어냈다. ‘신의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전쟁을 지휘하면서도 꿈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 적국의 여인에게 자신의 칼을 내주는 호방함을 지니고 로마의 장군을 극진히 대우하는 야만족의 지도자. 천하를 호령했으나 믿었던 노예에게 배신당하고 결혼하려던 여인에게 죽임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 아틸라.

베이스 전승현은 그의 별명 ‘아틸라 전’답게 위엄 있고 명료한 소리로 훈족의 왕을 연기했다. 연출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라면 무대 중앙에서 노래하지 않고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노래하는 장면들이 많아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무대 중앙에서 에치오와 대립을 하거나, 암살 시도가 발각되었을 때 더 스릴 있게 움직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틸라역의 베이스 전승현(사진=국립오페라단)

바리톤 유동직은 로마에 대한 자부심과 야심 가득한 장군 에치오를 열연했다. 아틸라와 에치오의 이중창, 그리고 2막에 부르는 ‘영원한 영광의 정상에서’를 통해 베르디 작품 중에서도 손꼽을만한 드라마틱하고 매력적인 바리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에치오역의 바리톤 유동직(사진=국립오페라단)
에치오역의 바리톤 유동직(사진=국립오페라단)

오다벨라를 연기한 소프라노 임세경은 복수심에 불타는 여전사로서의 날카로운 결단과 절규를 쏟아냈다. 사실 원작 대본이 오다벨라의 복수심을 설명하기에는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녀가 보여준 폭발적인 가창력과 연기는 미흡한 서사를 커버했다. 테너 신상근 역시 열연을 펼쳤으나 워낙 다른 캐릭터들이 강렬하여 상대적으로 유약해보인 감이 있다. 베르디의 인물 설정을 개인 기량으로 뛰어넘기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오다벨라역(A)의 임세경(사진=국립오페라단)
오다벨라(A)역의 소프라노 임세경(사진=국립오페라단)

발레리오 갈리의 지휘로 연주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베르디 음악의 감동을 더했다. 국립합창단의 합창은 전율이 일만큼 작품에서 큰 몫을 해냈다.

지휘자 발레리오 갈리(사진=국립오페라단)
지휘자 발레리오 갈리(사진=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아틸라>는 1846년 3월 17일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서사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이탈리아의 통일을 부르짖던 관객들에게는 뜨거운 감동과 열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아틸라>가 계속 공연되려면 서사의 완성도를 높여줄 연출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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