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욕망은 죽음을 부른다 -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텃밭킬러’
[공연리뷰] 욕망은 죽음을 부른다 -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텃밭킬러’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11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4.23-5.8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가 올해로 제 20회를 맞았다. 소극장 오페라는 관객과 가까이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르이며, 창작 오페라는 국내 오페라 수준을 높이고 관객층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유명한 아리아가 나오는 작품이 아니면 흔쾌히 티켓을 사지 않는 풍토에서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흥행몰이란 대부분 요원하다. 그 어려운 길을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는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걸어왔다.

지난해 <김부장의 죽음>도 그랬지만 올해도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한 블랙코미디 창작 오페라 작품이 공연되었다. 윤미현 대본, 안효영 작곡의 <텃밭 킬러>(4.23, 4.28, 5.7)가 그것이다. 2021 창작산실 창작 오페라 <장총>의 작곡가 안효영의 작품이라 기대감을 안고 객석에 앉았다.

<텃밭킬러>는 잔인하리만큼 바닥을 보여준다. 구둣방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주인공이다. 온종일 남의 텃밭을 털어와서 자식들을 먹이는 여인 골륨. 술에 찌들어 있는 아들, 그리고 철없는 두 손주. 아들과 손주는 골륨의 금니 세 개를 서로 탐내고, 금니를 차지하기 위해 결국 골륨을 살해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굉장히 상징적인 소재들을 사용한 작품이었다. 일단 구둣방이라는 장소가 그러했고 금니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골륨’이라는 이름이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연상하게 했다. 골룸의 흉측한 몰골, 혹은 절대반지를 품은 자라는 이미지를 골륨에게 투영하고자 한 것 같으나 솔직히 캐릭터 설정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어 보였다. 골룸은 절대반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반지에 대한 끝없는 탐욕 때문에 흉측해졌지만, 골륨은 가족에게 헌신하다 결국 비극을 맞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골륨에게 있어 그 반지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물론 다른 가족들에게 금니가 절대반지인 것은 맞다.

연출 역시 무대를 상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고자 했다. 사각형을 이용한 무대, 빨간 천으로 표현한 욕망, 빗소리와 일기예보로 극의 전개를 고조시키는 연출은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구둣방 지붕에 구멍이 뚫리고, 골륨의 금니가 절실해지며 마침내 폭우가 쏟아지는 날 가족은 파국에 이른다.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그렇지만 등장인물을 공감할 수 있는 입체적 캐릭터로 만들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이 작품은 오페라 버전 <기생충>으로 홍보된 바 있는데, 영화 <기생충>의 등장인물들은 나름 살아보려는 의지가 강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총체적으로 무기력할 뿐 살아보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상징적이라지만 실제로 구둣방에서 1만 원 쳐주는 금니 세 개, 그것만 바라보고 있다. 인물마다 금니를 탐하는 이유가 있으나 아주 일차원적인 욕망들이다.

작품에는 불필요한 자극적 내용이 많았다. 작품의 개연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시선을 끌기 위함 같았다. 아들의 이름은 ‘진로’이지만 주정뱅이일 뿐이라 도무지 진로가 보이지 않는다.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려 술을 마시게 된 것 같다. 전쟁이 트라우마나 병적인 증세를 표현하기 좋은 소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연령대라면 베트남전에라도 참전했던 70대여야 한다. 그의 아들들이 20대와 초등생인 것을 감안하면 어색한 설정이다.

20대 손자인 ‘청년’은 꿈도 희망도 없고 그저 여자만 밝힌다. 애인을 데려와서 욕정을 밝히는 노래와 대사를 거듭하는데, 욕망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해했으나 진부했다. 또 초등생 손자가 자위를 하다가 골륨에게 혼나는 장면도 나왔는데 이 손자의 이름도 ‘수음’이다. 이런 장면이 굳이 필요한가? 포경수술 이야기도 필요 이상으로 나온다. ‘노수페이스’ 잠바 사달라며 금니를 뽑아달라는 손자의 노래는 차라리 타당성이 있었다. 왜 등산복을 입고 학교에 가냐고 묻는 할머니의 질문에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어서”라고 답하는 수음의 노래는 관객을 처음으로 웃게 했다. 다시 말하면, 블랙코미디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다른 설정들에서는 웃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또 하나. ‘텃밭’의 상징적 의미는 구구절절한 노래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나 ‘텃밭킬러’라는 제목은 요새 말로 하자면 ‘설명충’같은 느낌이다.

안효영의 음악은 대체로 좋았다. 가족들이 골륨에게 금니를 달라고 외치는 장면, 진로가 도망간 아내로 추측되는 ‘쌍꺼풀’과 메추리 고기를 뜯으며 노래하던 장면의 음악들은 인상적이었다. 청년과 애인이 잠자리를 밝히며 부르는 중창도 음악적 완성도는 높았다. 현대적인 화성을 베이스로 하면서 민요나 가요스러운 멜로디가 적절히 녹아든 음악이었다. 골륨의 노래나 음악도 결코 구태의연하게 처절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에너제틱했다. 93세의 골륨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인물인지 음악으로 설명해 주었다.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텃밭킬러' 공연장면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골륨의 신민정이나 진로의 임희성은 음악적인 면과 연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임홍재(청년), 김문진(아가씨), 정찬혁(수음) 역시 모자람 없는 현실연기로 캐릭터를 살려냈다. 서사의 완성도는 떨어졌으나 성악가들의 고군분투로 박수 받을 만한 무대였다. 그러나 창작 오페라의 한계를 분명히 보인 작품이었다. 창작 오페라의 길은 여전히 비포장도로다.

'텃밭킬러' 출연진들 (사진제공=한국오페라인협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