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부흐빈더, 그와 함께 빈을 거닐다!”
[공연리뷰] “부흐빈더, 그와 함께 빈을 거닐다!”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1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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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부흐빈더 피아노 리사이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월 5일
Editor Mari Kim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 칼럼니스트 =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1946)가 누구인가? 프리드리히 굴다, 파울 바두라스코다, 외르크 데무스. 소위 빈 삼총사가 서거하고, 알프레드 브렌델이 은퇴한 상황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계열의 레퍼토리를 제대로 들려줄 최후의 거장이 아닌가?

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최초의 연주자였다. 작년 말 그의 75세를 기념하여 DG에서 발매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과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은 금자탑과 같은 기록이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우리나라 애호가에게도 무척 친숙한 것이 2017년과 2018년, 통영 국제음악당에서 베토벤 사이클을 연주했고, 2019년, 2021년 전국 순회 연주를 한 바 있다. 주로 베토벤의 작품을 위주로 연주하는 그는 이 공연에서는 All Schubert 프로그램으로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D.960>과 <즉흥곡 D.899>을 연주했다. 작년 리사이틀에서 앙코르로 <즉흥곡 D.899>의 4번을 들려주어 그의 슈베르트를 살짝 선보였고, 이번에는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훌륭한 슈베르트 피아노 연주를 구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접한 무대들 중에는 이모젠 쿠퍼와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의 <제20번 D.959> 정도가 떠오른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간 <즉흥곡 D.899>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다. 그는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가곡을 통해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예술혼을 자유롭게 발산했다. 마찬가지로 비교적 소규모의 춤곡, 미뉴엣, 왈츠, 랜틀러, 갤럽 등의 작품이 그의 예술 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역시 그가 사랑했던 가곡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소품에 능한 그의 재능이 피아노와 만나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보석인 여덟 곡의 ‘즉흥곡’을 낳았다.

이날은 첫 번째 네 곡을 연주했다. 보통 투명하고 유려하게 연주되기 마련인 첫 곡부터 다소 어눌한 어투로 시작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경과부에 부여한 변주와 악센트가 독특했고,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피날레를 담담하게 그렸다.

이어 두 번째 곡은 맑고 밝으면서 가벼운 터치로 연주했다. 시정(詩情)으로 가득한 세 번째 곡도 무척 좋았다. 아, 정말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이었다. 작품에 담긴 다채로운 뉘앙스를 섬세하게 살려내면서 미려한 피아니즘의 진수를 보여준 4번, 앞선 세곡의 연주에서 아껴둔 비기를 마음껏 펼쳐냈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간다’는 말이 실감되는 장면이었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슈베르트의 마지막 걸작에 대한 초월적 해석

제21번 소나타는 1악장의 도입부부터 슈베르트 작품에 대한 예상을 벗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빛깔부터 모호하고 무채색으로 둔중했으며, 끝없는 심연으로 침잠하는 연주였다. 그러다 곧 빠른 템포의 투명한 피아니시모의 고음과 파열하는 저음을 대비시켰다. 그것은 작품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하면서도 절실한 정서를 끄집어내었다. 급격한 템포의 변화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하였다.

슈베르트의 어느 작품보다 탄식조의 무거운 어조로 공허하면서 비통한 두 번째 악장은 리드미컬하고 담담하게 전개하였다. 스케르초 악장은 다른 어떤 연주들보다 극단적으로 가볍고 밝게 연주했다. 모종의 대비 효과를 노린 듯했으며, 슈베르트 음악이 담고 있는 의외성을 드러냈다.

마지막 악장에선 마치 연습곡을 연주하듯 빠른 템포로 종전과 완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고음부를 유난히 강조하면서 여전한 기술적 역량을 과시하듯 연주했다. 깊은 감정의 진폭과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대단원의 막을 장식했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사진=빈체로)

빈의 향기로 가득했던 앙코르 무대

여세를 몰아 앙코르로 들려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마지막 악장은 슈베르트 마지막 악장의 연장선상이었다. 쾌속으로 몰아붙이며 노익장을 과시하며, 폭발적인 기교지만 정연함을 잃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없었던 구조적인 형식의 아름다움을 넘치는 파워로 들려주었다.

이어진 두 번째 앙코르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빈의 저녁>은 "나는 빈에서 왔어!"라고 외치는 듯했다. 왈츠 특유의 흥취와 생동감 넘치는 리듬 그리고 오페레타 <박쥐>의 아름다운 노래가 콘서트홀에 울려 퍼졌다. 이런 연주를 과연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마법에 홀리듯 빠져든 시간이었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리사이틀을 마치고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리사이틀을 마치고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리사이틀을 마치고 팬 사인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빈체로)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리사이틀을 마치고 팬 사인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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