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채혜린 기자 = 국립국악원은 전통공연예술의 부채를 중심으로 명인 명창의 예술세계와 그들의 이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를 지난 6월 29일(수) 개막, 오는 9월 25일(일)까지 예정으로 열고 있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무료.
명인 58명의 부채 80여점의 다양한 이야기
국립국악원은 판소리를 비롯해 전통춤, 연희, 무속 분야의 명인 명창 58명의 부채 80여점을 수집했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같은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이번 전시는 소품으로서의 부채를 넘어 다채로운 명인 명창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 준비했다. 부채에 담긴 글과 그림을 통해 명인 명창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대대로 이어지는 부채
고(故) 오정숙 명창(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은 아천(雅泉) 김영철 화백에게서 받은 사슴이 그려진 두 개의 부채 중 하나는 이일주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에게, 또 하나는 김소영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에게 물려주었다. 이일주 명창에게 물려준 부채는 다시 제자인 장문희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에게 이어져 스승의 마음을 담은 소리는 부채를 통해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줄타기 김대균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줄타기 예능보유자) 역시 그의 스승인 고(故) 김영철 명인(전 국가무형문화재 줄타기 예능보유자)의 부채를 물려받아 부채살을 손수 고쳐가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판소리 명창 채수정(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의 부친은 진도 출신의 서예가인 오당(梧堂) 채원식 선생이다. 오당 선생은 ‘청풍명월본무가(淸風明月本無價,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본래 값이 없어 한 푼을 내지 않아도 무한히 즐길 수 있다.)’라는 글귀를 적어 딸에게 선물하며 좋은 소리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길 바라는 그의 마음을 전했다.
예술이 담긴 부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한량무의 명인 고 임이조(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의 춤추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춤추는 모습이 마치 학과 같다”는 의미로 써준 ‘학무학(鶴舞鶴)’이라는 글을 써준 부채, 고 정재만 명인(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의 창작작품 <청풍명월>의 첫 공연에 쓰일 목적으로 직접 고안하여 아직까지 제자들이 사용하는 부채, <유관순 열사가>로 유명한 정순임 명창(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이 <유관순 열사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무궁화가 그려진 부채 역시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노래와 춤, 부채를 통한 예술인의 교유(交遊)
명인 명창과의 많은 교유로 유명한 아천(雅泉) 김영청 화백은 고 오정숙 명창의 소리를 들으며 부채에 그림을 그렸고, 고 이매방 선생(전 국가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승무 예능보유자)의 춤을 보고 학을 그려 선물하기도 했다. 전 동래야류 예능보유자인 중곡(曾谷) 천재동 선생은 같은 부산 지역의 김온경 명인(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동래고무 예능보유자)이 승무를 추는 모습을 부채에 담아 선물하기도 했다. 유영애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의 심청가를 들은 청봉(靑峰) 유기원 선생은 부채에 심청가의 눈대목인 추월만정(秋月滿庭)의 가사를 담아 선물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며 함께한 교유(交遊)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사람의 행복을 기원한 100년 부채, 그리고 8폭에 담긴 명창의 시간
남해안별신굿에서 무당은 이상세계를 담고 있는 부채를 들고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 큰무당 고 유선이 명인이 사용하고 고 정모연(남해안별신굿 초대예능보유자)과 고 고주옥(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으로 이어져 온 100년 넘은 부채가 전시되며, 신영희 명창(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은 그동안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8폭 병풍에 담은, 신영희 명창의 70년 소리 인생과 부채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병풍을 출품했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은 “명인 명창들의 이야기와 바람이 담겨있는, 그리고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소중한 부채를 전시를 위해 기증 또는 대여해 주신 모든 명인, 명창분들이 계셨기에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라면서 “명인 명창의 이상과 예술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예술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다.” 라고 기대했다.
한편 국립국악원은 이번 전시와 관련한 연계 특강을 오는 8월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